공고급 순양전함

Kongo1944.png
공고급 순양전함 1번함 공고(金剛)
정보
함종, 함급 전함,
생산 1911~1915년
운용 기간 1913~1945년
이전 함급, 다음 함급 이전 함급: 카와치급 전함 (전함)
다음 함급: 아마기급 순양전함 (계획)
다음 함급: 후소급 전함 (실질적)
생산수량 4척 (모두 손실)
세부 제원 (공고 기준,1944)
기본배수량 36,600톤
전장 222m
전폭 31m
흘수 9.7m
속력 30노트 (56km/h)
항속거리 14노트 기준으로 19,000km
동력기관 4축 증기 터빈 136,000마력
승조원 2,367명
무장 356mm 45구경장 함포 8문(2x4)
152mm 50구경장 대공포 8문(1x8)
127mm 5인치 대공포 8문(2x4)
25mm 96식 기관포 122정
장갑 현측:76~203mm
갑판:25mm
포탑:229~254mm
탄약고:76~254mm
사령탑:229mm
기타 캐터펄트 1기
수상기 1기
출처:영어 위키백과의 일본 전함 공고 문서
일본어 위키백과의 공고 (전함) 문서

공고급 순양전함은 1913년부터 1945년까지 구 일본군 해군이 운용했던 순양전함이자 일본 해군 최초로 본격적인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이다.

개발[편집 | 원본 편집]

개발 배경[편집 | 원본 편집]

일본 해군은 러일전쟁쓰시마 해전에서 숫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극적으로 승리를 쟁취했다. 이 해전에서 이기게 되자 결과적으로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 일본은 전쟁에서 이겼지만, 자금이 거의 바닥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1년 뒤에, 전함의 대세가 드레드노트급 전함으로 바뀌게 되고. 일본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부랴부랴 건조하게 되지만 대부분 무용지물이었다.[1] 결국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오히려 역행하게 되자 해군 근대화 계획을 수립한 뒤, 영일동맹이 성립된 당시 일본은 영국의 빅커스사에게 순양전함 건조를 요청하고 의뢰했다.

1908년 최초의 순양전함 인빈시블급 순양전함

성능[편집 | 원본 편집]

문제점[편집 | 원본 편집]

자매함 목록[편집 | 원본 편집]

순번 함명 취역일 최후
1 공고 (金剛) 1913년 8월 16일 1944년 11월 21일
2 히에이 (比叡) 1914년 8월 4일 1942년 11월 13일
3 하루나 (榛名) 1915년 4월 19일 1945년 7월 28일
4 기리시마 (霧島) 1915년 4월 19일 1942년 11월 15일

같이 보기[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공고급 순양전함이 취역하기 이전에는 4척의 드레드노트급 전함들이 있었는데, 2척의 카와치급 전함과 2척의 사츠마급 전함이었다. 카와치급 전함은 2연장 12인치 주포탑 6기를 장착했지만, 비효율적인 설계때문에 협차나 일제사에 불리함이 많았고, 사츠마급 전함은 원래 드레드노트로 건조하려고 했지만, 비용 부족과 주포 수량 부족으로 인해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