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형진

高衡鎭.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9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96년 9월 28일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면 진내리에서 출생했고, 1919년 당시 전라북도 전주군 이동면 화산리에 거주했다. 신흥학교에 재학중이던 1919년 3월 기독교 인사 및 기전학교 학생들과 함께 신흥학교 지하실에서 밤을 새우며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제작, 인쇄하며 3월 13일 전주장날에 전개할 만세시위를 준비했다. 3월 13일 거사 당일, 채소 부대로 위장한 가마니 속에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넣어 남문 장터까지 무사히 운반하였으며, 정오경 남문에서 울려 나오는 인경소리를 신호로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였다. 신흥학교, 기전여학교 학생, 천도교, 기독교 신자 150여 명이 남문시장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고창할 때, 고형진은 시민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배포했다. 시민과 장꾼들은 이에 홍으해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며 대화동을 거쳐 우체국까지 행진했다가 일본 경찰과 헌병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이로 인해 체포된 그는 1919년 8월 2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1] 이에 불복하여 공소하였고, 1919년 9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6개월로 감형되었다.[2]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으나 1919년 10월 30일 고등법원에서 상고 기각되었다.[3] 1976년 4월 1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7년 고형진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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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