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宗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902년 12월 30일 전라남도 제주도 신좌면 함덕리(현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1930년 김두성(金斗性)·김일준(金日準) 등 동지들과 함께 동리의 영향력 있는 부녀자 한승렬(韓承烈) 등 다수에게 야학(夜學)을 통하여 한글을 가르치면서 민족 사상을 고취하였다. 1931년 1월 19일 제주도 신좌면 함덕리에서 도쿄에서 항일운동을 하던 한영섭(韓永燮)의 유해가 향리로 돌아와 장례식이 치러졌다. 이때 김두성, 김일준, 양구문 등과 함께 장례식에 참석한 그는 "불평등한 사회를 파괴하여 무산계급의 자유를 건설하려 한 그대는 죽었어도 그대의 주의정신(主義精神)은 동지마다 계승하여 분투할 것이니 안심하라"는 내용의 기(旗)를 제작하고 추모비를 세워 "차디찬 흰빛 밑에 눌리인 무리들아, 고함쳐 싸우라고 피뿌린 동지였다"라고 비문을 썼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31년 8월 5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1] 이에 불복하여 공소하였고, 1931년 12월 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2] 1965년 2월 2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고종건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외부 링크[편집 | 원본 편집]
- 국가기록원 - 독립운동관련 판결문
- 독립유공자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