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택

高永澤.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17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99년 6월 24일 경성부 연지동(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지동)에서 출생했다. 1924년 1월 경성 장교정에 있는 공연규(孔兗圭)의 집에서 이정섭(李禎燮) 등과 함께 ‘조선인으로서의 사상에 기초하여 조선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비밀결사 내집당(內集黨)을 조직하였다. 내집당은 국내 각지의 부호들로부터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발송하고,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문서를 작성, 배포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명을 받아 일제 관공서를 폭파하는 걸 사명으로 삼았다.

고영택은 내집당 내무부장을 맡아 조합원과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였고, 한국인의 독립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국권회복에 관한 문건을 작성하여 인쇄하였으며, 관공서 폭파에 필요한 폭탄 제조법을 공부하여 시험하고, 각기 방면을 나누어 돌아다니면서 제반 설비를 진행하였다. 또한 조선총독부 경무국(警務局)에서 제작한 국내외 <국외불온단체분포도(國外不穩團體分布圖)>, <경비기관배치도(警備機關配置圖)> 등이 동양당석판주식회사(東洋堂石版株式會社)에 넘겨져 인쇄될 때 중간에 이를 빼내서 활용하였다.

1924년 8월 19일 천안경찰서에 체포된 고영택은 신문과정에서 분포도, 배치도 등을 본 순간 중국 땅 곳곳에서 한국인이 활동하고 있다는 생각에 매우 기뻤다고 진술했다. 1924년 10월 1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대정8년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10개월(미결구류일수 중 30일 본형에 산입)을 선고받았다.[1] 이에 불복해 공소했으나 1924년 10월 29일 취하하면서 형이 확정되었다.[2] 1925년 7월 30일 이정섭 등 동지 6명과 함께 형 집행 만기로 풀려났으며,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고영택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헀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