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京守.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916년 8월 1일 전라남도 제주군 구우면 귀덕리(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에서 출생했다. 제주공립농업학교 2학년에 재학하고 있던 1931년 3월, 학교 당국은 졸업 사정회에서 학교 행사에서 덴노의 칙어를 낭독할 때 묵념하지 않은 김원요(金源堯)를 제적 처분하고, 황민화 교육과 한인 학생 차별 대우에 불만을 제기하던 양두옥(梁斗玉)·신창진(愼昌珍)을 유급 처분하였다. 이에 분노한 양치삼(梁致三) 등 9명이 교무실에 들어가 학우들에 대한 부당한 조치에 항의했다가 전원 경찰에 구금되었다.
이 소식을 접한 고경수는 동기생 10여 명과 함께 교장 관사로 찾아가 따지기로 하고 관사로 갔으나 교장은 외출 중이었다. 이에 그들은 교장 부인을 상대로 항의하였고, 관ㅏ의 기물을 부쉈다. 마침 교장을 만나기 위해 왔던 제주도립병원 원장 지바(千葉)가 경찰에 신고하였고, 고경수, 홍성옥(洪成玉)·오화국(吳化國)·양공팔(梁公八)이 체포되었다. 1931년 8월 3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공소했으나 1931년 10월 2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출옥 후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 1935년 7월 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고경수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