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계양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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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계양산성
계양산성.jpg
건축물 정보
주소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 산 10-1 외
대지면적 62,863 m2
문화재 정보
종목 사적 제556호
지정일 2020년 5월 22일

개요[편집 | 원본 편집]

인천광역시 계양구의 진산인 계양산 정상부(395m)의 동쪽에 자리한 산봉우리(202m)(성산이라고도 한다) 정상를 둘러싸고 있는 산성으로 전체적으로는 산 정상부를 둘러싸고 있는 테뫼식 산성이나 동남쪽에 골짜기를 끼고 집수정을 설치한 포곡식 산성의 형태를 일부 가진 형태의 산성이다.

삼국사기삼국유사에는 이 성과 관련한 기록이 없으나 조선시대의 기록인 동국여지지나 증보문헌비고에서는 둘레 1,937척(약 580m)이고 삼국시대에 쌓은 석축성이라 기록하고 있다. 현대에 들어와서 측정한 성의 둘레는 약 1,184m로 조선시대의 기록보다 길게 측정되긴 하였으나 삼국시대에 쌓은 성이라는 것이 오래 전부터 전해져 왔던 것으로 보인다.

계양산 일대는 인천 북쪽지역에서 가장 높은 지점으로 삼국시대 무렵에는 바다가 인근까지 들어오는 지역에 해당하였다. 따라서 이 지역은 김포평야 일대까지 한번에 감시할 수 있는 감제고지의 역할과 함께 경기만 일대를 통해 상륙하는 외부 세력을 방어하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으로 돌을 쌓아 만든 협축식 성벽인 것으로 보이나, 일부 경사가 급한 구간의 경우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쌓은 편축법이나 삭토법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조사 결과[편집 | 원본 편집]

2003년 8월 선문대학교 고고연구소 주관 발굴을 시작[1]으로 2020년 5월 31일까지 총 10차에 걸친 시굴조사 결과 전체적으로는 성벽 일부가 돌무더기의 형태로만 확인되고 있으나 발굴조사 결과 1개의 성문(북문)과 3개의 집수정, 치성 터, 건물터, 구들장의 흔적 등이 발견되었다.

특이한 것은 출토 유물인데 보통 성곽 자리에서 발견되는 기와 이외에도 중국의 자기, 통일신라 당시의 줄무늬병 토기 등이 발견되었으며 일부 기와는 백제계 뿐 아니라 고구려계통의 토기편까지 발견되어 여러 세력이 이 성을 지배하였던 흔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4차 발굴조사에서는 논어가 적힌 목간유물이 발견되기도 하였는데 백제나 신라의 유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치성은 석재로 만든 치성뿐 아니라 목재로 만든 치성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성 내에서 토기를 직접 만들어 구운 가마터와 건물지, 장대지 등이 발견되었다.

기타[편집 | 원본 편집]

  • 본래 계양산성은 1992년 5월 15일에 인천광역시 기념물 10호로 지정되었으나 이후 산성의 시굴조사 및 복원 등을 통하여 2020년 5월 22일 국가지정 문화재인 사적 제556호로 지정되었다.
  • 성 북쪽 산자락 아래에는 계양산성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각주

  1. 1~3차는 선문대 고고연구소 주관, 4~10차는 겨례문화유산연구원 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