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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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 일반 일간 신문
판형 타블로이드배판
창간 1946년 10월 6일
언어 한국어
웹사이트 http://www.khan.co.kr

경향신문》(京鄕新聞)은 대한민국에서 발매하는 중도 ~ 중도좌파 성향 일간 조간 신문이다.[1] '경향'이라는 말은 우르비 에트 오르비(Urbi et Orbi), 즉 "도시(교황청)와 전 세계에게"라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표어에서 비롯되었다.[2][3]

본사는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길3에 소재해 있으며, 현재 진보 언론 중 열독률 1위로 진보성향의 대표적인 언론으로 간주되고 있다. 2009년 한국기자협회의 언론인 대상 여론조사에서 공정성 부분에서 경향신문이 1위를 차지했으며, 신뢰도와 영향력으로는 각각 2위, 6위로 꼽혔다.

1 역사[편집]

1946년 5월,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으로 조선정판사 사옥과 그 시설 일체를 미군정이 압수하여 가톨릭에 넘겨줌으로써 1946년 10월 경성천주교 재단에서 복간했다. 초기에는 가톨릭 계열 언론사로 이승만의 단정 노선에도 매우 비판적이었으며, 김구의 남북협상론은 비현실이라 주장했다.[4] 반면, 미소공위좌우합작에 많은 기대를 걸기도 했다.[4] 또한 미군정에 협조적이면서도 옳지 않는 일에는 날카롭게 비판도 하고 책임을 물기도 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후 친 민국당, 친민주당적 노선을 견지했다. 제1공화국 기간 내내 국무총리부통령을 지낸 장면(張勉)을 정치적으로 지지하였다. 이때문에 1958년 이승만과 자유당으로부터 정간처분을 당하기도 했다.(경향신문 필화 사건 참조.) 1959년 이후 자유당 독재체제가 굳어지자 반독재 노선을 분명히 했으며, 장면 부통령 피습사건 이후 비판의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장면의 인척인 한창우가 사주로 취임하였고, 경향신문은 제2공화국 기간 내내 장면을 비판적으로 지지하였다.

5·16 쿠데타 이후 민간에게 불하되면서 종교 성향을 띠지 않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비판적 논조가 거슬린다며, 경향신문 주요 인사 교체, 주가와 판권매각으로 정수장학회와 여러 대기업의 소유가 되었으며, 당시 언론통폐합으로 합쳐진 MBC와 함께 친군부 성향 언론사로 변질되었다. 문화방송 계열사이던 1980년만 해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의 장기 집권을 유럽의 좌경화로 표현하는 등 친군부,반공주의적 논조를 보였다. 이러한 경향신문의 반(反) 민주적이고 친독재정권 성향의 논조 때문에 1987년 6월 항쟁 당시 경향신문에 대해 분노한 시위 군중,시민들이 지방 배송을 위해 서울역 앞에 쌓여 있던 경향신문을 대량으로 소각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었다.[5] 이후 1990년에 한화그룹에 매각되었다가 1998년에 사원주주회사로 독립한 이후부터는 진보와 개혁세력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여러 사설, 칼럼, 기사 등에서 진보 성향을 띠는 신문이 되었다.

2 특성[편집]

한화그룹으로부터 분리한 이후로는 진보 성향이 강한 신문이 되었다. 그 덕분에 보수적 성향의 신문이나 방송사와 마찰이 많이 늘어난 편이며, 때때로 진보성향이 강한 기자들의 기사가 논란거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한국의 진보지인 한경오의 한 축을 담당하는 신문. 다만 한겨레신문과는 달리 민족해방주의, 친북 성향은 거의 없다.

한화그룹으로부터 분리된 이후에는 재정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신문사이기도 하다. 직원 평균 연봉이 3,000만원도 안 되며, 가장 돈이 많은 신문사인 조선일보와 비교했을 때 절반밖에 안 된다. 또한 신문사의 영향력과는 별개로 유료 부수 판매량은 그보다 여론 형성 영향력이 떨어진다고 평가받는 국민일보만도 못하다.

3 관련 사이트[편집]

4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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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의 일부는 한국어 위키백과경향신문 문서 15470031판을 원출처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