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의 십자가

개요[편집 | 원본 편집]

황병구, 이은수, 황병준, 양희송, 권준, 전성민, 남상욱 등이 멤버로 있던 서울대 아크로 찬양모임에서 1991년에 작사, 작곡한 민중찬양. 최초의 보수 교회 민중찬양이다. 이전까지의 민중찬양이 신정통주의, 민중신학 노선에 근거하여 발표되었다면 이 곡은 완전히 다른 노선인 복음주의 계열에서 나온 최초의 민중찬양이라는 점을 특기할 수 있다.

찬양팀의 멤버들은 서울대에 다니는 보수 교회[1]의 청년들이었는데, 당시 온누리교회를 중심으로 막 시작되던 경배와 찬양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1991년에 강경대 열사 구타 사망 사건을 필두로 일련의 공안 사건들이 터지는 것을 보면서, 신학적으로는 보수 복음주의 신학을 표방하면서도 진보적 역사의식을 품게 된 보수 교회 청년들이 모여서 결성한 찬양팀이 바로 이 서울대 아크로 찬양모임. [2] 서울대 캠퍼스에서 중앙도서관과 행정관 및 학관으로 둘러싸인 아크로폴리스에 정기적으로 모여서 찬양을 했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뒤에 조직을 정비하여 '뜨인돌'이라는 이름으로 개편을 했지만, 이 곡을 발표할 때는 그냥 서울대 아크로 찬양모임이라 했기에 이름을 소급하여 쓰지는 않는다. 그러나 두 찬양팀은 같은 팀이다.

보수적 신앙 노선에 근거했기에 기존 민중찬양과는 달리 '예수의 피' 같은 보수 복음주의적 모티프가 나타나고 있으며, '복음의 기를 들자'와 같은 직설적인 선교적 메시지도 나타나고 있다. 기존 민중찬양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시어들. 다만 구체적인 현실 상황이 묘사되지 않고 지나치게 추상적인 시어만을 활용했다는 한계도 지적할 수 있다. IST 계열에서 이야기하는 '종교의 모호성과 이중성'이 드러나는 사례이다.

여담으로 당시 이 노래를 발표할 때 서울대에서 찬양제를 한다기에 경배와 찬양 스타일을 기대하고 찾아왔던 수많은 사람들을 충공깽에 빠드렸다고 카더라. 이후 이 아크로 찬양모임은 뜨인돌이라는 노래운동으로 진화하였으며, 이후 아크로 찬양모임 출신 멤버들은 보수적 신앙을 가지고 진보적 역사의식과 사회 개혁을 추구하는 '복음주의권'의 활동가로 활발하게 사역 중이다. 양희송은 청어람 ARMC의 대표이고, 황병구는 하나누리 대표로서 성서한국 전국대회를 비롯한 다양한 복음주의권 행사의 기획과 진행을 담당하고 있으며, 전성민은 목사 안수를 받지 않은 채 구약학자로 활동하고 있다.

가사[편집 | 원본 편집]

참고로 Am코드이다.

(BPM 65로 천천히, 형제(남자 교인)들만)
찢겨진 산하 위로 겨레의 눈물 굽이치고

(형제, 자매(여자 교인)들 함께 한 번 더 반복)
형제여 우리는 잠들어 있었는가
예수의 이름이 멸시받고 짓밟혀도
(BPM 120, 행진곡풍으로) [3]
형제여 일어나라 일어서라 내 형제여
겨레의 역사 위에 이제 복음의 기를 들자
(BPM 88, 약간 느리게)
주여 우리의 눈물 씨앗 되어 새 땅에서 피어나게
예수의 피 안에서 하나 되어 서게 하사
겨레의 십자가 지게 하소서
우리 여기 있나이다 우리를 보내소서
우리 싸움 야훼의 싸움 마치는 그 날까지

각주

  1. 황병구는 송죽교회, 양희송은 온누리교회,그리고 그 외는 주로 사랑의교회
  2. 당시 상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투쟁의 한길로 항목 참조
  3. 두 해 전인 1989년에 나온 윤민석의 애국의 길 3절과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