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어 문제

게티어 문제(Gettier Problem)는 철학자 에드먼드 게티어(Edmund Gettier)가 1963년에 학술지 『Analysis』에 게재한 논문정당화된 참인 믿음은 지식인가?(Is Justified True Belief Knowledge?)」에서 제시된 인식론의 난제 혹은 역설이다.[1]

개요[편집 | 원본 편집]

어떤 사람이 주어진 명제안다는 것의 필요충분조건을 제시하기 위한 시도가 근 수 년간 이루어진 바 있다. 그 시도들은 대개 다음 형식과 유사하게 제시될 수 있다:

(a) S가 P를 안다 iff. (i) P가 이다 (ii) S가 P를 믿는다 (iii) S가 P를 믿는 것이 정당화된다. [...]

나는 (a)의 조건들을 만족시키는 것이 곧 S가 P를 안다는 명제가 참이 되기 위한 충분 조건을 구성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a)가 거짓임을 논하겠다 [...]

나는 (a)에 제시된 조건들이 어떤 명제에 관하여 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사람이 그 명제를 안다는 것은 거짓인 사례 두 가지를 제시해보겠다.

지금 위 인용문을 다 읽었다면, 당신은 20세기 후반 인식론의 역사를 바꿔어 놓은 논문의 1/8 정도를 이미 읽은 셈이다.

분량이 불과 2.5쪽에 불과하지만 인식론이라는 오래된 철학 분야를 뒤흔들어놓은 논문. 전문은 이 링크에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짧은 논문에서 제기된 문제는 21세기 현재까지도 큰 파급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이 논문 하나 말고 저자인 에드먼드 게티어가 남긴 저작은 거의 없지만 그 이름은 철학사에 영원히 남게 되었으며, 개인적으로는 종신 교수 자리를 얻어서 지금도 아주 잘 산다고 전해진다.

상세[편집 | 원본 편집]

앎의 JTB 조건[편집 | 원본 편집]

게티어는 플라톤의 『테아이테토스』 및 『메논』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앎" 혹은 "지식"의 전통적인 정의가 "정당화된 참인 믿음"이라고 파악한다. 각 조건의 상세는 다음과 같다:

  • 명제 P가 참이다: 말 그대로 명제 P가 거짓이 아니라는 얘기.
    • 이때 "참"의 정의에 관한 연구는 형이상학의 주제 가운데 하나인 진리론에서 이루어진다.
  • 주체 S가 명제 P를 믿는다: 말 그대로 어떤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주어진 명제를 믿는다는 얘기.
    • S가 P를 믿는 것이 정당화된다: "인식적 정당화(epistemic justification)"은 그 자체로 인식론의 논란거리 가운데 하나다. 다만 현 맥락에서는 일단은 "S가 P를 믿는데 적합한 증거가 있다" 정도로 이해해도 된다. 다만 다음 두 가지 단서가 붙는다:
      • (ㄱ) 실제론 거짓인 명제에 대한 믿음도 정당화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티코 브라헤천문학은 거짓으로 밝혀졌지만 충분한 증거와 충실한 과학적 방법에 따라 이루어졌으므로 "정당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2]
      • (ㄴ) 만약 S가 P를 믿는 것이 정당화되고, P가 Q를 함축하며 S가 P로부터 Q를 도출해낸다면, Q를 믿는 것도 정당화된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은 죽는다"를 믿는 것이 정당화된다면, 그 논리적 함축인 "철수는 죽는다"를 믿는 것도 정당화된다.[3]

위 세 가지 조건("justified", "true", "belief")의 앞 글자를 각각 따서 만든 준말이 이른바 지식의 "JTB 조건"이다. 하지만 게티어는 이런 JTB 조건에 대한 직관적인 반례가 있다고 주장한다.

반례 1[편집 | 원본 편집]

스미스와 존스가 입사 시험을 보고 있는 중이다. 그 와중에 스미스는 면접관이 존스를 뽑을 거라고 말하는 것을 엿들었다. 그리고 스미스는 존스의 호주머니에 동전이 10개 들어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스미스는 이렇게 생각했다:

(ㄱ) '일자리를 잡는 사람의 호주머니 안에는 동전이 10개 있다'

그런데 사실 알고 보니 면접관이 실제로 뽑기로 결정한 사람은 스미스였다. 그리고 스미스 자신은 몰랐지만 스미스 호주머니 안에도 동전이 10개 들어 있었다. 이때 명제 (ㄱ)은 JTB 조건들을 다 만족시키는 것 같다.

  • (ㄱ)은 참이다:
    • 스미스가 뽑히게 되며, 스미스 호주머니에 동전에 10개가 있기 때문이다.
  • 스미스는 (ㄱ)을 믿는다.
  • 스미스가 (ㄱ)을 믿는 것은 정당화된다.
    • (ㄱ)은 스미스의 또다른 믿음인 '존스가 일자리를 잡게 되었으며, 존스 호주머니에는 동전 10개가 있다'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된 것이다. 그리고 이 믿음은 사장의 말을 엿들었다든지 동전 10개를 확인해봤다든지 하는 증거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

하지만 직관적으로 스미스가 (ㄱ)을 안다고 보는 것은 개념상 오류인 것 같다. 따라서 JTB 조건에 대한 반례가 성립한다.

반례 2[편집 | 원본 편집]

스미스는 존스가 포드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을 자주 봤고 최근에 차를 얻어탄 적도 많아 존스한테 포드 차가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스미스 친구 중에 방랑벽이 있어 요즘 소재를 전혀 듣지 못한 브라운이라는 친구가 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스미스가 어쩌다 이렇게 생각했다:

(ㄴ) '존스가 포드 차를 갖고 있거나, 혹은 브라운은 지금 바르셀로나에 있다'

그런데 사실 존스는 포드 차를 얼마 전에 막 팔았다. 그리고 사실 어쩌다 보니 브라운은 정말로 바르셀로나에서 여행중이었다. 이때 명제 (ㄴ)은 JTB 조건들을 다 만족시키는 것 같다.

  • (ㄴ)은 참이다:
    • 존스가 포드 차를 갖고 있다는 것은 거짓이지만, 브라운이 지금 바르셀로나에 있다는 것은 참이기 때문이다.
  • 스미스는 (ㄴ)을 믿는다.
  • 스미스는 (ㄴ)을 믿는 것이 정당화된다:
    • 존스한테 포드 차가 있다고 믿는 것은 충분한 증거가 있으므로 정당화된다. "p다. 그렇다면 p 혹은 q다."는 타당한 연역추론이다. 이때 p 자리에 "존스한테 포드차가 있다", q 자리에 "브라운이 지금 바르셀로나에 있다"를 대신 집어넣으면 (ㄴ)이 도출되므로, (ㄴ)은 정당화된다.

하지만 직관적으로 스미스가 (ㄴ)을 안다고 보는 것은 개념상 오류인 것 같다. 따라서 JTB 조건에 대한 또다른 반례가 성립한다.

영향[편집 | 원본 편집]

그저 사소한 개념적 퍼즐 혹은 말장난이라고 보일 법한 이 사안은 시간이 갈 수록 점점 큰 파급력을 낳기 시작했다. 왜냐면 위와 같은 반례를 차단하기 위하여 JTB 조건을 강화하거나, 혹은 JTB 조건 외의 제4의 조건을 추가할 때마다 예측하지도 못했던 온갖 부적합한 귀결들이 튀어나오는 불상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에 해당 난제는 그냥 학계에서 게티어 사례(Gettier Case) 혹은 게티어 문제(Getteir Problem) 같은 말로 통한다. 게티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 십년에 걸친 이런 몸부림의 역사는 현대 인식론 관련 교과서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

관련하여 연구가 하도 오래, 그리고 많이 이루어진 나머지 21세기 현재에는 게티어 문제와 관련된 담론들을 "게티어학(Gettierology)"라고 부르며 아예 쉰 떡밥으로 간주하는 시각도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게티어 문제로부터 '인식적 정당성', '지식' 같은 여러 인식론적 개념들 자체에 관하여 전혀 새로운 인식론적 시각들과 논쟁들이 촉발되었다는 점만큼은 대부분이 인정하는 점이다.

각주

  1. Edmund L. Gettier, "Is Justified True Belief Knowledge?" Analysis, Vol. 23, pp. 121–23 (1963)
  2. 현대에는 '인식적 정당화에 대한 오류가능주의(fallibilist) 전제'라고 자주 불린다.
  3. 현대에는 '인식적 폐쇄성(epistemic closure) 원리'로 자주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