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샤

미야가와쵸의 키미하 게이코의 모습

게이샤(芸者(げいしゃ), 영어: Geisha), 내지는 게이기(芸妓)는 전통악기 연주 및 무용, 시 짓기를 하는 일본의 전통 예능인이자 기생으로 게이코(芸子)라고도 했다. 보통 연회나 행사가 있을 때 호출되어서 공연을 해 분위기를 띄우고 손님들의 접객을 해주기도 했다.

에도 시대때는 남성 게이샤와 여성 게이샤가 있었고 오이란에게 밀렸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오이란 문화가 퇴색하면서 게이샤가 인기를 끌게 되었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게이샤의 역사는 오래되어 헤이안 시대부터 여성 예능인에 대한 기록이 있었다.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게이샤가 등장하게 된건 1589년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아나기쵸에 유곽을 설립, 후일 아나기쵸의 유곽은 시마바라 유곽으로 넘어갔다. 유곽에서 예능과 매춘, 접객이 활성화가 되자 오이란들도 손님의 흥을 돋구기 위해 북치기 및 샤미센 연주가같은 예능인들을 부른 것이 게이샤의 시초이다. 단 당시 게이샤들의 성별은 남성들이였다.

여성 게이샤의 역사는 다음과 같은데 시간이 흐르면서 유곽이 거대해지고 관리 등 상류층의 전유물이 되어가자 유곽 근처에는 저렴한 매춘을 하거나 간단한 접객만을 할 수 있는 찻집들이 생겨났다. 이 찻집에서 매춘을 하는 여성들을 산챠죠로로, 춤이나 연주를 하는 여성 예능인을 "오도로키" 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 오도로키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수가 늘어나 시마바라 유곽의 게이샤(남성)처럼 자신들을 게이샤라 자칭했고, 1700년대에는 아예 여성 게이샤가 남성 게이샤를 압도해버림으로서 현대의 여성 예능인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당시 게이샤도 매춘을 했기에 유녀와 큰 분간이 없었지만 막부에서는 본격적으로 게이샤의 매춘을 법으로 금지하면서 게이샤는 예능 전문, 유녀는 매춘 전문으로 갈라서게했다. 게이샤의 오비가 일반 기모노처럼 뒤로 가 있는 것도, 치장이 절제되어있는 것도 화려함을 파는 것이 아닌 오로지 춤으로만 미를 부각시켜야한다는 이유였다. 1750년대에 유곽 문화의 침체기로 오이란들 대다수가 게이샤로 넘어가면서 허울뿐인 존재로 전락했다.

그러나 19세기에 게이샤가 대중화되면서 게이샤의 매춘 문제가 물위로 올라왔는데 유곽 문화처럼 가난한 가족이 딸을 게이샤의 마을인 하나마치에 팔거나 게이샤의 후원자들이 단나로 불리면서 후원이라는 이름으로 게이샤에게 성접대를 강요, 심지어 게이샤의 처녀성을 사는 미즈아게같은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제2차 세계 대전까지 지속되다가 어린 소녀들을 하나마치에 파는 행위와 처녀성을 사고파는 행위를 금지, 게이샤를 보호하는 법을 만들고 어기는 자들을 처벌함으로서 매춘 문제를 없애버렸다.

특징[편집 | 원본 편집]

마이코의 모습
외형
흔히 매체의 왜곡 때문에 게이샤는 화려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화장과 온갖 장식, 화려한 기모노를 입은 게이샤는 수습 단계인 "마이코"이다. 정식 게이샤는 마이코보다 화장도 수수하고, 화려한 무늬도 별로 없는 기모노를 입었다.
게이샤가 되는 법
과거나 현재나 게이샤의 마을인 하나마치(꽃마을)에 가 몇 년간 수련을 받으면 된다. 과거에는 초등학생 정도의 어린 나이에 수련을 시작하여 데뷔했다. 그러나 의무교육, 노동연령, 아동노동 금지 등의 법이 제정된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현재는 학업, 성장, 게이샤의 사회적응 문제 때문에 의무교육과정(중졸)을 마친 만 15세 이상의 소녀라야 게이샤 훈련을 받을 수 있다.
게이샤의 세부 역할
  • 타치타카(立方) : 춤을 추는 게이샤
  • 지타카(地方) : 나카우타와 샤미센, 노래를 부르는 게이샤로 게이샤 중 최고 위치.

오해[편집 | 원본 편집]

게이샤는 매춘부 내지는 고급 매춘부이다.
매춘부는 유녀라는 직종이 있으며 고급 매춘부는 오이란(타유)라고 했다. 초창기의 여성 게이샤는 유녀에서 파생되었고 유녀와 분간이 없었기에 게이샤도 매춘을 했거나 유녀 중에서도 게이샤로 넘어가는 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에도 시대 중기부터 게이샤의 매춘을 법적으로 금지. 게이샤와 유녀는 완전히 갈라서게 되었다. 외형 차이도 심해서 게이샤는 수습 계급인 마이코만 화장과 화려한 기모노, 장식을 했지 정식 게이샤는 단순한 기모노를 입었으며 오비가 등뒤로 향해있었다. 이는 게이샤의 매춘을 금지하면서 성적 매력을 부각시키면 안되기 때문에 단순하게 한 것. 그러나 메이지 중기부터 유녀와 요시와라 유곽의 인기가 떨어지고 게이샤와 하나마치의 인기가 오르자 게이샤의 후원자들이 매춘을 하는 문제가 생겨나 없어졌을 게이샤의 매춘 문제가 물위에 올라왔고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게이샤 보호법을 만들어 처벌하는 식으로 엄격히 금지해 매춘 문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실제 《게이샤의 추억》은 게이샤의 미즈아게를 유우죠의 미즈아게와 혼동해 게이샤가 전문 매춘부인 것처럼 서술하는 오류를 범하는 바람에 이와사키 미네코가 분노해 《게이샤, a life》라는 반박 및 해명글이 담긴 책을 내놓았다.
게이샤는 여자만 있다.
원래 게이샤는 남성들이 주류였으며 여성 게이샤는 한참 뒤에 나타났다. 당시 여성 예능인은 게이샤가 아닌 오도로키로 불렸는데 1700년대에 이르러서 여성 게이샤들의 수가 남성을 압도함에 따라 게이샤는 여성 예능인을 가리키는 말로 변질되었다.

게이샤인 인물[편집 | 원본 편집]

  • 아야베 나오(綾部ナオ): 일본 정치인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외할머니. 다만 친외할머니는 아니다. 본처인 나오가 아이를 낳지 못하자 고이즈미 마타지로(小泉又次郞)는 이시카와 하츠(石川ハツ)를 첩으로 들였고, 하츠는 준이치로의 어머니인 고이즈미 요시에(小泉芳江)를 낳았다.
  • 이와사키 미네코: 일본 최고의 게이샤라는 이명을 가진 인물로, 소설 및 영화 《게이샤의 추억》의 주인공 치요의 모델이다.

대중매체[편집 | 원본 편집]

관련 문서[편집 | 원본 편집]

유사직종
위키피디아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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