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걸중상(乞乞仲象, 생몰년 미상)은 발해를 세운 제1대왕 장남 고왕 대조영, 제10대왕 선왕 대인수의 조상인 차남 대야발의 아버지로 걸사비우와 함께 고구려의 부흥 운동을 이끌었다. 629년경에 태어나 698년경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기록은 없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구당서》에는 걸걸중상이 했던 행적들도 모두 대조영이 했다고 기록되어 있어, 걸걸중상의 행적을 찾아보기 어려우므로 이후 나온 《신당서》나 《오대사》를 비교해가며 걸걸중상의 행적을 추측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걸걸중상이 어떻게 태어났으며 가족이 누가 있었는지는 명확히 알아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영주는 요서 지방에 위치하고 있는데 기미주로써 그 치소는 유성(柳城), 즉 오늘날의 랴오닝성 차오양시(朝陽, 조양)이었다고 한다. 이후 조문홰가 도독으로 파견되어 조문홰는 지방의 수령들을 무시했고, 이로인해 이진충이 반란을 일으켜 조문홰를 죽였다. 걸걸중상은 이 혼란을 틈타 말갈의 추장인 걸사비우와 함께 그곳을 벗어나려고 했다. 이것은 성공했으며, 곧 오루하를 경계로 수비를 굳혔다고 나온다.
신당서에서는 이 시기에 측천무후가 그들에게 각각 진국공과 허국공으로 임명했다고 나온다. 하지만, 서적의 내용을 보면 이후 서술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임명 이후 걸걸중상이 사망했기 때문에 흐지부지 된 것일수도 있다. 이는 신당서 등의 내용에서 볼 수 있는데, "중상이 병에 걸려 죽어, 중상의 아들 조영이 대신했다" 는 등의 내용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논란[편집 | 원본 편집]
성씨에 대해서 논란이 있는데 대씨라는 설과 걸걸씨라는 설이 있다. 《신당서》에는 사리걸걸중상(舍利乞乞仲象), 《오대사》에는 대걸걸중상(大乞乞仲象)으로 표기되었기 때문이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