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春三.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58년 5월 3일 황해도 해주군 청운방 사리 마치동(현 황해남도 청단군 영산리)에서 출생했다. 1894년 동학당에 입당해 보부상 접주로 종사했으며, 동학 농민 혁명이 실패로 끝난 후에는 숨어지내다가 1907년 정미 7조약으로 대한제국군이 강제 해산되자 목천 부사 박정빈의 의병에 가담했다. 그는 박기섭 의진의 중대장인 심노술이 거느린 의병들과 더불어 평산군 서쪽부터 해주군 사이에 걸쳐서 일본군과 교전해 상당한 전과를 거뒀다.
그러다가 1909년 일제가 남한 대토벌 작전을 감행했을 때 대다수 의병대가 소멸되었지만, 그만은 끝까지 일본군에 대적해 1910년 해주 근처 여묵 원야(餘默 原野)에서 일본군을 습격해 타격을 입혔고 그해 가을 해주 동촌 청단시 쟈라기 벌판에서 적군과 교전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1913년 5월 일본 헌병대에게 급습을 받고 체포된 뒤 천단시 학곡(學谷)에서 총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강춘삼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