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마도진 만호성지

강진 마도진 만호성지
마도진성.jpg
마도진 성벽
건축물 정보
소재지 전라남도 강진군 마량면 마량리 988-5번지 일대
대지면적 4,237 m2
문화재 정보
종목 전라남도 기념물 제179호
지정일 1999년 12월 30일

마도진(馬島鎭) 만호성지(萬戶城址)

개요[편집 | 원본 편집]

전라남도 강진군 마량면 마량항 일대에 설치되어 있던 수군 기지인 마도진의 방어시설로 이 지점은 고흥에서 해남 방향으로 향하는 조운선들이 지나는 길목에 해당하는 지점 중 한 곳이었다. 이 조운선들을 약탈하는 왜구를 막기 위하여 고려시대 수군 진지가 설치되었으며 현재의 성곽은 조선 연산군 5년(1499년)에 쌓은 진성에 해당한다.

현존하는 성벽의 총 연장은 730m정도로 성내에는 당시 만들어진 우물이 남아있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마도진에 관한 가장 이른 기록은 1425년 마도 부만호가 조선용 목재와 상납품을 마련하려고 바다로 나갔다가 1척이 침몰하여 격군과 사공 등 28명이 익사하였다는 기록이다.

강진의 만호는 탐진포만호가 최초이며 1425년 완도군 군외면에 있던 마도진을 강진으로 옮기면서 원래 마도진이 있던 지역을 고마도라고 불렀으며 강진은 섬이 아닌 육지임에도 기존 마도진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연산군 당시 성을 쌓기 이전까지는 선박이 정박하는 포구 정도 수준이었으나 성벽 축성 이후에는 본격적인 진성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종4품 만호가 배치된 만호진이 되었다.

마도진은 축성 이후 불과 6개월이 지난 뒤인 1500년 2월 마도왜변으로 왜구의 침입을 받아 만호 및 군인 11명이 죽고 27명이 부상당하고 병장을 노략질 당하는 피해를 입기도 하였었다.

이 마도진의 위치는 당시 전라우수영과 전라좌수영의 중간지점에 위치하여 군진 설치 당시에는 좌수영 소속이었으나 시간거리상으로 우수영이 더 가깝다 하여 우수영 소속으로 그 관할을 변경하게 되었다.

이후 1894년 갑오개혁 당시 각 군영을 통폐합하여 군무아문의 소속으로 일원화하는 과정에서 수군진이 모두 폐지되었으며 이 때 마도진도 함께 폐진되었다.

이후 1940년대 일제강점기까지만 하여도 성벽 전체가 거의 완전하게 남아있었으나 현재는 대부분이 무너지고 서북쪽 성벽 일부만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성곽현황[편집 | 원본 편집]

현재는 성문터와 성벽 일부만 남아있으나 본래 둘레 890자(척도가 정확하지 않다), 높이 5.6m의 성벽과 여장 300개, 옹성 2개소, 치성 4개소가 있었다.

성에는 남문과 북문 2개의 문이 있었으며(19세기 고지도 기준) 동헌, 내아 , 객사, 사령청, 이청, 군기고, 화약고, 장청, 환향고 등이 있었다. 다만 현존하는 건물은 없으며 현재 마량교회가 자리한 지점이 객사와 내아 자리로 추정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기타[편집 | 원본 편집]

  •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과 명나라 제독 진린의 연합함대가 왜군을 물리친 곳으로 기록되어 있다.
  • 임진왜란 당시 마도진에 배속된 군선은 전선, 병선, 방선, 사후선 각 1척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일부 기록에서는 전선 대신 구선(龜船)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거북선이 이쪽에 배속되어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