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선

姜悌銑.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13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88년 6월 25일 황해도 신천군 남부면 부청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일찍이 중국으로 망명했고, 1926년 정의부 산하 지방조직인 제7구장으로 선임되어 봉천성 해룡현 북산성, 양수하자, 가하천자 등 13개소의 부락을 맡아 군자금 및 교육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했다. 1927년 음력 2월 유하 지방 총관 김우근(金宇根)의 명령을 받들어 유수하자 주민 100여 명으로부터 봉표소양(奉票小洋) 1,300원을, 7월 3일에는 11가구에서 77원 등 의무금(義務金)을 모집헀다. 그해 음력 10월 말 정의부 유하지방 검무원(檢務員) 김병철(金炳哲), 군인 안기원(安基元), 의사(議士) 송일성(宋一成)의 명령으로 대동구에서 학교교육비, 지방비, 지방교육비로 27가구로부터 1,438원을 모금하여 김병철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1928년 2월 27일 봉천성 해룡현 북성자 남문 밖 조선인민회 지부 서기 신행범(愼行範)의 집에서 철령 일본영사관 경찰에게 체포되어 3월 중순 신의주경찰서로 인계되었다. 1928년 5월 7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대정 8년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신희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29년 2월 8일 출옥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강제선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