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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姜日求.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09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성은 진주 강씨이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910년 9월 23일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에서 출생했다. 부여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의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만주와 일본을 돌아다니다 1931년 8월 귀향했다. 이후 최재봉이 경영하는 조선일보 부여지국에서 일하면서 구룡면 금사리 야학교 교사를 겸임했다. 이 시기 사회과학 서적을 구독하면서 사회주의에 경도되었고, 1931년 10월 5일 구룡면 금사리 산중에서 동지들과 함께 공산주의연구협의회를 결성하고 교양부를 담당했다.

1933년 3월 23일 적극적인 사회주의 운동실천을 위해 공산주의연구협의회를 해체하고 공산주의자협의회를 결성한 뒤 평의원으로 활동했다. 공산주의자협의회는 각 부락에 야학을 개설하여 연극, 강연 등을 개최해서 농민의 계몽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그해 4월 중순경에는 '칠모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야학운영과 사회주의 사상 보급에 힘썼다. 그러나 5월 부여군 장암면의 야학담당자로서 활동하던 중 일경에 체포되었다.

1935년 11월 25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에 5년을 선고받았다.[1] 이후 소련 영사관에 자주 출입하다가 체포되어 조사받기도 했다. [2] 이후 대전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0년 5월 2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강일구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2010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각주

  1. 독립운동관련 판결문
  2. 경종경고비 제13087호, '사상에 관한 정보 8' <소련 주총영사관 출입자 검거의 건>(1938년 1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