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중

姜宇中.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2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924년 6월 8일 경상남도 부산부 부평정에서 출생했다. 창씨명은 미요시 마사오(三好政雄)이다. 동래고등보통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0년 11월 23일 부산, 마산, 진주 및 인근 지역 학생들이 모인 제2회 경남 학도 전력 증강 국방 대회에 참가했다. 이 대회에서 동래고등보통학교의 우승이 확실했지만 일본인 학교인 부산중학교가 1위가 됐다. 이에 동래고등보통학교의 김영근 교사와 학생들이 단체로 항의하자, 일본인 심판 노다이(乃台)는 "심판의 판정은 신성하고 절대 불가하므로 판정에 따르라"며 일축했다.

이에 격분한 동래고등보통학교와 부산제2상업학교 학생들은 운동장 밖으로 나가 정렬한 뒤 보수동으로 내려오며 '황성 옛터'와 한국의 민요를 부르며 행진했고, 뒤이어 노다이의 집으로 몰려가 돌 세례를 퍼부었다. 이에 부산헌병대가 투입되어 귀가하는 학생들을 검거했는데, 그 중에는 강우중도 있었다. 그는 이 일로 며칠간 헌병대에서 심문받았고, 퇴학 처분을 받았다. 이후 부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67년 1월 26일에 사망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21년 강우중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2021년 8월 24일 서울지방보훈청은 강우중의 배우자인 문재금씨에게 대통령표창을 전수했다.[1]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