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한

姜承翰.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09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63년생이며, 함경북도 명천군 서면 산성동 출신이다. 1919년 4월 면민 이학복, 이서규, 이현구 등을 불러 독립만세시위를 벌일 것을 제의했다. 이들이 찬동하자, 동지들을 규합하여 조선독립 만세기와 태극기를 제작한 뒤, 4월 14일 오후 1시경 명천군 서면 명남동 명동학교 뒤편 개울가에 모여든 300명의 군중과 함께 조선독립만세기와 태극기를 흔들며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19년 5월 29일 함흥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 공소했으나 1919년 7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1] 이에 불복해 상고하면서, 상고 취의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나의 행위는 조선민족으로서 정의인도에 기초하는 의사발동으로 범죄가 아니다. 그런데 제1심 및 제2심에서 받은 유죄 판결은 부당하여 복종할 수 없는 위법이 됨에 따라 상고한다.

그러나 1919년 10월 4일 고등법원에서 상고 기각되면서 옥고를 치렀다.[2]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