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영

姜壽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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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10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906년 5월 19일 경상남도 진주군 진주면 옥봉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1924년 축구 단체인 4257단을 창설했다. '4257'은 단군기원에 따라 서기 1924년이 단기 4257년인 것에 착안한 것으로, 축구를 통한 체력 향상이 애국, 애족이라는 신조를 내세웠다. 1927년 진주청년회에 참가한 뒤 1928년 1월 진주청년회가 해체되고 진주청년동맹으로 조직을 전환하기로 결의한 자리에서 진주청년동맹 준비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8년 3월 말에 개최된 경남청년연맹 제1회 중앙위원회에서 서무부 위원으로 선임되었으며, 4월 29일 경남청년연맹 정기대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고, 다음날 경남청년연맹 제1회 집행위원회에서 선전부장으로 선출되어 경상남도 청년운동에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1928년 5월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1928년 6월 29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 공소했으나 1928년 7월 8일 공소 취하하여 옥고를 치렀다.[1]

1929년 2월 23일 부산형무소에서 만기 출옥하였고, 그해 3월 17일 진주청년동맹 위원장에 선출되었고, 4월 12일 조선청년총동맹 간친회에서 조선청년총동맹 준비위원회의 준비위원으로 선임되었다. 이후 진주에서 조용히 지내다 1971년 7월 2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강수영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