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錫勳.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199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96년생이며 함경북도 종성군[1] 출신이다. 그는 1917년부터 1918년 12월까지 혼춘현 대황구촌에 있는 북일중학교에서 공부했고, 1920년 5월 16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 소속으로 대원 49명을 이끌고 함경남, 북도에서 군자금 및 독립군 모집 활동에 종사했다. 그해 12월 초순, 그는 노령의 강용관의 집에서 문창학, 최시능(崔時能) 등 15인과 함께 임시대한독립군 대원으로 참여했다.
강석훈은 1920년 12월 4일 대한독립군 제3대장을 맡아 문창학, 김학섭(金學燮) 등과 함께 신건원 수비대 및 경찰서 습격전에 참가했으며, 1921년 1월 5일 오전 1시에 일본 수비대와 경찰서 주재소를 습격하여 교전 40분만에 순사 5명을 사살했다. 이에 일제는 1923년 5월 26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의 궐석재판에서 사형을 언도했다. 하지만 그는 체포되지 않았고 1923년 상하이에서 개최된 국민대표회의에 참석했다. 이후 그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강석훈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각주
- ↑ 현재의 종성군은 각각 경흥군, 경원군, 온성군, 회령군으로 쪼개져서 군 자체가 폐지된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