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원

姜晩元.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0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910년 3월 25일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에서 출생했다. 서울에서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재학하던 그는 1930년 2월 17일 중앙고등보통학교 생도 폭행에 연루되어 경성 종로 경찰서의 조사를 받았다.[1] 그리고 1930년 10월 22일, 조경인, 손상범 등과 함께 교장에게 다음과 같은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1. 퇴학자 및 무기정학자를 복교할 것.

2. 학생에게 동창회의 자치권을 반환할 것.

3. 친일 교사를 배척할 것.

교장이 거부하자, 그들은 동맹휴교를 단행하기로 하고, 강만원의 하숙집 등에서 수차례 협의한 끝에 10월 24일 전교생을 등교시켜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고자 하였다. 학교 당국은 이날을 임시휴교일로 발표하였으나, 그날 아침 오전 8시경 600여 명의 학생이 등교하여 친일 교사를 묶고 서무실의 집기 및 유리창 등을 파괴했다.

강만원은 이 일로 인해 일경에 체포되어 1931년 4월 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건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이후 서울에서 조용히 지내다 1998년 7월 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강만원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으며, 2012년 유해를 국립서울현충원 212실 104호에 안장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