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수

姜琪秀(이명: 姜璂秀).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00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98년 11월 26일 경상남도 산청군 도산면 소이리에서 출생했다. 1919년 무렵 함안읍 금융조합 서기로 재직하던 그는 고종의 인산에 참배하기 위해 경성에 올라왔다가, 3.1 운동에 참가한 뒤 기미독립선언서를 휴대하고 함안면으로 돌아왔다. 이후 조한휘, 이찬영 등 인사들과 모임을 갖고 함안에서의 독립ㄹ만세시위를 준비했다. 이들은 대산면 한문교사 한지호와 연락을 취해, 3월 19일 함안읍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이후 태극기를 제작하고 독립선언서를 다량 등사했다.

1919년 3월 19일 정오경, 강기수 등 주동자들은 봉성동에 모인 수백명의 군중에게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나눠주고 독립만세를 고창했다. 오후 2시가 되자 군중은 3천여 명으로 불어났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주재소로 행진했다. 이때 출동한 마산경찰서와 현지 일경들이 무력으로 해산시키려 하자, 군중은 주재소로 들어가 공문서를 파기하고 건물을 파괴했다. 이후 등기소, 우체국, 일본인 소학교를 차례로 파괴했다. 그러나 긴급 출동한 마산 중포병대대의 무력 진압으로 인해 해산되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19년 5월 19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0년 8월 산청군 단성읍에서 개최된 단성청년회의 창립총회에 참가하여 사교부장에 임명되었고, 총무 등의 직책을 맡아 청년회를 이끌며 청년계몽운동을 주도했다. 그러다 일경에 재차 체포되어 1922년 6월 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0개월을 받았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강기수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