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근호

  • 1934년 01월 25일 전라북도 군산시 출생, 2008년 01월 30일 사망[1]
  • 학력: 군산고등학교, 중앙대학교 법학 학사/석사/박사수료
  • 약력: 중앙대학교 총학생회(회장), 전국학도호국단 중앙위원회(의장), 중앙대학교(학생과장), 중앙대학교 법학과(교수), 신민당(임시대변인), 민주통일당(창당위원/공천심사위원/대변인), 유네스코 국회대표(이사) 제8대 국회의원(군산시, 옥구군), 군산중,고등학교(총동창회장), 전라북도 군산시(제38,39대 시장)

개요[편집 | 원본 편집]

前 군산시장이다.

선거 이력[편집 | 원본 편집]

  • 1971년 : 제8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신민당 소속으로 전라북도 제2선거구(군산시,옥구군) 국회의원 당선(44,412표, 49.98%)
  • 1973년 : 제9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민주통일당 소속으로 서울특별시 제6선거구(마포구,용산구) 국회의원 낙선
  • 1978년 : 제10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민주통일당 소속으로 전라북도 제2선거구(군산시,이리시,옥구군, 익산군) 국회의원 낙선
  • 1988년 : 제13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전라북도(군산시) 선거구 국회의원 사퇴
  • 1996년 : 제15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전북(군산시갑) 선거구 국회의원 낙선
  • 1998년 :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전라북도 군산시장 낙선
  • 2002년 :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전라북도 군산시장 당선(44,275표, 46,75%)

사건사고[편집 | 원본 편집]

  • 과거 제8대 국회의원 시절 실미도 사건이 일어나서 국회에서 해당 사건을 추궁하는데 참여했다가 10월 유신 이후 군 헌병대 끌려가서 모진 고문을 당했다 한다.
  • 강 시장은 2002년 11월부터 2003년 5월까지 사무관(5급) 승진대상자들에게 수 천만원을, 그리고 2003년 11월 사무관 승진대상자 A씨로부터 관사에서 3천만원을 받는 등 총 1억 6천만원이 넘는 뇌물을 받은 혐의로서 검찰은 위 혐의 외에도 상당수 공무원들이 승진을 빌미로 강 시장에게 금품을 제공하려 했고 심지어 일부 공무원들은 금품을 마련하고자 공무원연금공단에서 대출까지 받은 것이 밝혀졌다. 강 시장은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에서 2004년 10월 27일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지만 결국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혐의로 구속되었다. 1심 전주지법 군산지원 형사합의부(재판장 황적화)는 "인사관행과 시장의 막강한 권한, 형식적 인사위원회 등으로 미뤄볼 때 승진 대가로 뇌물을 받은 게 판단된다"며 강 시장에 대해 징역 4년에 추징금 1억6천500만원을 선고하였다. 이에 강 시장은 항소를 했고 2심 판결이 내려지기 전인 2005년 4월 8일 군산시장 직을 사직하겠다고 밝히며[2] 2006년 지방선거 때까지 송웅재 부시장이 시장 권한대행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강 시장이 광주고등법웝 측에 병 치료를 위해 구속집행정지를 요청하였고 광주고법 측에선 이를 받아들여 1~3월까지 치료를 받게 했다. 2심 광주고등법원 형사2부(재판장 김관재)는 강 시장에 대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추징금 1억6500만원을 선고했다. 3심 대법원 판결까지 가지 않은 것을 봐서는 강 시장 측에서 2심의 형량을 받아들이고 상고하지 않은 걸로 보인다.[3]

바깥 고리[편집 | 원본 편집]

  1. '실미도 폭로' 강근호 전 군산시장 별세 연합뉴스. 2008.01.30 14:05
  2. 2004년 구속되고 나서 군산시공무원직장협의회에서 강 시장에 대해 자진사퇴하라고 강하게 요구했기에 결국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다
  3. 2심에서 집유를 받았는데 괜히 상고를 해서 형량이 낮아지기는 커녕 집유가 취소될 수도 있는 리스크도 우려되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