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갑영

姜甲永.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907년 6월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덕교리에서 출생했다. 이명은 '강현영(姜顯永)'이다. 1931년 무렵엔 경상남도 부산부 영주정 16번지 박영수의 방에 머물렀다. 그는 평소 일제의 식민통치에 반감을 품고 민족 의식을 길렀다. 그러던 1931년 8월 26일 부산의 전영진 집에서 박귀선, 이인형 등과 함게 격문을 인쇄, 배포하기로 했다. 이들은 등사판을 가지고 와서 '노동자'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격문을 작성하였다.

불공평한 현 사회를 근본부터 파괴해야 한다. 전 자본가와 경찰에 대하여 싸울 혁명적 노동자를 선두로, 농민, 소시민 등 모든 압박을 받는 층은 당당한 동맹을 조직하여 조선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여야 한다.

이들은 격문 수십부를 인쇄, 출판한 뒤, 부산부 내의 공장 노동자 및 여러 사람에게 배포했다. 이 일로 1931년 9월 24일 체포되었고, 1931년 11월 14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공소하여 1932년 3월 2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1] 출옥 후 노동조합 운동에 참가하여 김상혁과 함께 전남 일대의 노동조합 건설에 힘을 기울였다. 1945년 7월 19일 산청군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강갑영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2016년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