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 (탈것)

가마는 조그만 모양의 탈것이다. 지금은 자주 쓰이지 않으며 주로 조선 시대나 그 이전에 쓰였다. 물론 느리지만 자동차 뒷좌석처럼 편히 갈 수 있기에 양반이나 높으신 분들이 많이 이용했다. 보통 사람 2명이나 4명이 가마를 들고 가는데 2명이 들고 갈 경우 엄청나게 힘들다.[1]

구조[편집 | 원본 편집]

가마의 구조는 크게 몸체와 손잡이로 나뉜다. 네모난 상자 모양의 몸체는 한 사람이 안에서 앉을 수 있을 만큼 넓은데 조그만 집 모양이며 위쪽은 지붕으로 덮혀 있다. 아래쪽에는 두 개의 긴 손잡이를 끼우는데 이 손잡이 두개가 몸체를 지탱하는 것이다.

가마싸움[편집 | 원본 편집]

경상북도 의성에서는 이 가마를 이용한 놀이가 있는데 그 놀이가 바로 "가마싸움"이다. 가마싸움은 아이들이 편을 가른 뒤 바퀴가 달린 가마를 앞세워서 상대편의 가마를 먼저 빼았거나 부수면 이기는 놀이인데 가마를 부수는 등 너무 위험하고 폭력적이어서 그랬는지 이 놀이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종류[편집 | 원본 편집]

누가 타는지에 따라 가마의 이름과 종류도 다양했는데 임금이 타는 가마는 "연" 또는 "가교"라고 불렸고 공주가 타는 "덩", 상례 때에 쓰는 "삿갓가마", 종 2품 관리가 타는 "초헌", 종 1품의 관리가 타는 "평교자", 물건을 운반하는 "채여" 등이 있었다.

한국에서의 가마[편집 | 원본 편집]

한국에서는 역사적으로 마차나 전차보다는 가마를 많이 썼다. 이는 오랑캐의 침략을 불편하기 위해 마차도로를 잘 닦아놓지 않아서 고르지 못한 길 때문에 바퀴달린 탈것이 통행하기 어려웠고, 또한 길이 좁아서 말같은 거대한 가축이 이동하기 불편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퀴가 아닌 사람 발로 움직이고, 말에 비해 체구가 작은 사람의 동력으로 움직이는 가마가 성행했다. 이후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일본에서 마차를 마개조한 인력거가 들어와 가마를 대신하게 되었다.

다른 언어 표현[편집 | 원본 편집]

같이 보기[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한 명은 가마를 들고 가고 한 명은 가마 속의 사람을 업고 가는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