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FP 사업

한국형 전투기사업(KFP: Korea Fighter Program)은 1983년부터 시작된 대한민국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 선정사업이다.

사업목표[편집 | 원본 편집]

제5공화국 이후 3저 호황으로 대한민국의 경제력과 외환보유고가 높아짐에 따라, 노후화된 국군의 장비들을 현대화된 장비로 교체하는 율곡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당시 대한민국 공군의 주력기는 F-5와 F-4가 주축이었는데, 이중에서 숫적으로 주력의 위치를 차지하는 F-5를 대체하고, 당시 북한의 공군기들을 압도할 수 있는 최신예 전투기를 1992년부터 1998년까지 총 120대를 도입한다는 내용의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대규모의 무기도입 사업이었다. 사업 초기에는 명칭을 FX사업으로 진행하려 했으나, 동시기에 진행된 일본의 FSX사업[1]이 미국 의회의 반발을 사는 등 진통을 겪게되자, 비슷한 뉘앙스의 사업명칭이 불똥을 맞을까 우려하여 KFP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후보기종[편집 | 원본 편집]

워낙 거대한 이권이 걸린 사업이었던만큼 세계 유수의 방산업체들이 앞다퉈 자사의 기체들을 예비입찰하면서 경쟁이 시작되었다.

미국 맥도넬 더글라스[2] F/A-18 호넷
미국 제너럴 다이내믹스[3] F-16 팰콘
미국 노스롭[4] F-20 타이거샤크
프랑스 다소 미라주 2000
영국 독일 이탈리아 파나비어[5] 토네이도 IDS

1차 입찰에서 미라주와 토네이도는 탈락[6]했고, 미국의 3개 기종이 본격적인 경쟁에 들어갔다. 그러나 노스롭의 F-20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이 직접 참관하는 시험비행에서 기체를 몰던 조종사가 G-lock에 빠지면서 추락하는 추태를 보이는 안습 전설을 작성하면서 광탈하였고, 이후 남은 F-18과 F-16을 저울질 한 결과, 최종적으로 F-18이 결정되어 도입을 앞두고 있었다. 특히 F-18은 당시 F-16이 운용하지 못했던 신형 중거리 미사일인 AIM-120 암람을 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크게 작용하였다.

반전[편집 | 원본 편집]

도입기체가 F-18로 결정되고 도입을 진행하려던 순간, F-18의 제작사인 맥더넬 더글라스는 갑자기 기체의 단가를 40% 이상 높여버리면서 사업이 표류하게 되었다. 이에 당시 청와대국방부는 이러한 뒤통수 작전에 어이를 상실하여 강하게 반발하였다. 물론 환율상승, 인건비, F-18의 해외판매 부진으로 인한 단가상승 등 가격인상 요인은 다양했지만 도입직전 가격을 일방적으로 통보당한 셈이어서 우리로선 인정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당시 대한민국이 책정한 예산은 약 44억 달러 정도였는데, F-18의 가격상승은 120대 기준으로 66억 달러 이상의 예산이 필요했고, 44억 달러 예산에 맞추려면 도입수량은 80대 수준으로 크게 낮출 수밖에 없어서 결국 사업을 재검토하였고, 그 사이에 F-18에 밀렸던 F-16에 AIM-120 암람이 통합되면서 F-18의 우위가 사라지게 되었다. 결국 1991년, 정부는 KFP사업의 도입기체를 F-16으로 변경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기체변경 과정에서 이런저런 잡음이 있었는데 자세한 내용은 후일담 항목에 서술.

F-16 도입[편집 | 원본 편집]

총 52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한 이후 1991년 10월부터 1단계로 12대의 F-16 전투기를 미국에서 직도입하였고, 2단계로 36대를 라이센스 생산하는 한편, 3단계부터는 주요부품을 국산화해 72대의 F-16을 생산, 2000년 4월까지 사업목표인 총 120대를 성공적으로 도입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라이센스 생산업체였던 삼성항공[7]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예정되었던 KTX-2사업[8]이 백지화 되는 등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면서 정부에 강하게 유감을 표했고, 2002년 완료될 KFP사업은 당시 김대중 정부의 결단으로 삼성항공측의 불만과 정치적인 부담을 덜어내려는 의도에서 추가로 20대의 KF-16을 도입하기로 결정하면서 2006년 4월, 140번째 기체가 공군에 인도되어 KFP 사업은 마무리 되었다.

후일담[편집 | 원본 편집]

사실 공군은 쌍발기인 F-18을 적극적으로 원했었다. 물론 공군의 의도대로 F-18을 도입하기로 결정하면서 매끄럽게 흘러가나싶던 사업이 F-18의 가격인상이라는 변수를 만나면서 가시밭길을 예고했다. 충분치 않은 예산 상황에서도 북한에 비해 숫적인 우위도 갖추길 원했던 정부의 입장과 안정적인 쌍발기를 원했던 공군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결과적으로 F-18 가격인상 이후 사업을 재검토하는 사이에 F-16은 블록 52로 업그레이드되면서 AIM-120 암람을 운용할 수 있게 되었고, 기체가격에 요지부동이었던 F-18과 다르게 F-16의 제작사인 제너럴 다니내믹스는 대한민국 정부가 기체선정을 쉽사리 발표하지 않는것에 애가 탄 나머지, 우리측이 제시한 작전요구성능에 포함되지도 않은 AGM-88 HARM과 같은 민감한 무장[9]을 통합시켜 주겠다고 제안했고, 여기에다 미공군은 운용하지 않던 하푼 대함미사일도 통합시켜 주겠다면서 적극적인 자세로 사업에 임했다. 여기에 대한민국의 차세대 고등훈련기 개발사업에 동참할 것과 항공기술 발전에 필요한 다양한 기술지원을 약속하는 등 파격적인 조건을 연달아 제시하였다.

결과적으로 예산범위 내에서 120대의 목표수량 달성은 물론이고, 애초에 제시하지도 않았던 추가적인 무장과 각종 기술지원 등의 조건을 흡족하게 생각한 정부는 최종적으로 F-16을 KFP사업의 도입기종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물론 결정 당시에도 공군은 끈질기게 쌍발기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지만, 기종선정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태우는 당시 공군참모총장이었던 정용후 대장을 병원에 감금(...)[10]시키고, 국방부장관을 경질하는 등 강압적인 수단으로 공군의 불만을 입막음하였다. 이후 불명예 전역을 당한 정용후 총장이 이러한 청와대의 불법행위를 폭로하면서 감사원이 KFP사업 과정을 점검한 결과, 무려 118건에 달하는 비위가 적발되면서 전직 군 고위관계자 6명을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 고발, 현역 장성 8명을 포함한 군장교 53명에 대하여 국방부에 징계를 포함한 인사조치 권고를 하는 등 파장이 상당했다.

각주

  1. 현재 일본이 보유한 F-16의 자체 개량형인 F-2의 근간이 된 사업이었다.
  2. 현재 보잉에 인수됨.
  3. 현재 록히드 마틴에 합병됨.
  4. 노스롭 그루먼
  5. 영국, 독일, 이탈리아가 지분을 가진 합작회사
  6. 사실 5공화국의 정통성 측면에서 미국측에 상당한 약점을 잡혔던 전두환 및 신군부 입장에서는 미국의 비위를 맞춰야 했기에 유럽제 기체는 그저 들러리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7. 현재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합병됨
  8. 고등훈련기 도입사업으로 현재의 T-50에 해당한다.
  9. AGM-88은 미국 외에 수출된 전례가 없는 고급 무장이었다.
  10. ‘셀프’ 전역사, 경향신문, 2019년 5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