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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한 후 이화여전 교수로 부임하여 한국인 최초로 교장이 되었고, 해방 이후 종합대학 인가를 받아 이화여전을 이화여대로 개편한 사람이지, 학교를 설립한 사람이 아니다.}} 동상에도 계란이 투척되고 페인트로 범벅이 되어버렸다. 학생들이 본관을 점거하여 회의실에서 오도가도 못하게 된 평의회 위원들은 오후 7시 40분 평의원 1명이 화장실을 간다며 회의장을 빠져나와 귀가하였고, 이를 알게 된 학생들은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한 후, 보다 철저한 점거농성을 시작했다. ===7월 29일=== 날짜를 넘겨서도 학생들의 점거시위는 계속 진행되었다. 새벽 0시 30분경 서혁 교무처장과 교직원 1명이 학생들과 대화를 위해 자발적으로 회의장에 들어갔다. 그리고 회의장에 남아있던 연로한 평의원 2명에 대한 귀가를 요구했으며 학생들을 이를 받아들여 새벽 3시 45분경 평의원 2명이 귀가하였다. 오전 7시에는 대규모 경찰병력이 본관 주변으로 출동하였으며, 8시 15분경 경찰은 학생들에게 '''감금죄''', '''공무집행방해죄'''등을 언급하며 해산을 통보하였다. 경찰의 통보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시위는 계속되었으며 이날 여러 단과대학 학장, 부학장, 교수들 다수가 본관을 방문하여 학생들과 대화했으나 총장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7월 30일=== 회의실 내부의 요청으로 새벽 1시경 공기청정기가 회의실 내부에 설치되었다. 오전 4시 40분경에는 취침을 이유로 회의실 내부 소등이 이뤄졌고, 오전 10시경에는 평의원의 의료진 요청이 이어졌다. 약 15분후 신고를 접수한 119 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하였다. 10시 40분에는 서대문 경찰서장이 자신의 신원을 확성기로 밝히며 학생들의 해산을 통보했다. 결국 오전 11시 30분경 경찰병력이 현장에 진입을 개시하였고 일부 학생들이 진압에 투입된 여경들에 의해 끌려나오기도 했다. 경찰이 투입되며 회의실 안에 남아있던 교직원 및 교수들이 46시간만에 빠져나오게 되었다. 오후 1시 20분경, 경찰 기동대 병력이 학교 정문과 후문에서 철수하였다.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left; |{{youtube|Lo3UMxYFNW0}} |- ! 경찰과 대치하던 학생들이 다시 만난 세계를 합창하는 모습 |} 경찰과 대치하던 학생들이 기존 시위에서 흔히 불리던 민중가요가 아닌 아이돌 그룹 [[소녀시대]]의 데뷔곡인 [[다시 만난 세계]]를 경찰들 앞에서 부르는 등 달라진 시위 양상을 보여줬다. ===7월 31일=== 학생들의 시위는 계속 이어졌다. 이날 총학생회는 전날 벌어진 경찰측의 무리한 진압을 규탄하였으며, 평화적으로 시위를 하던 학생들을 폭력적인 방식으로 진압하였다고 주장했다. 또한 학교 내부의 문제를 경찰이라는 공권력을 투입하여 해결하려는 학교측의 대응을 비판했다. 특히 최경희 총장이 경찰력 투입을 요청하였음을 이유로 들며 최총장의 탄핵을 요구하는 [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09&news_seq_no=2965335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아울러 최총장이 임기내에 벌이는 사업들에 대해 학생들에게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독단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점과 1,600여명의 대규모 경찰들이 학교내부로 진입하도록 용인한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학생들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학교측은 학과설립이 목적에 부합하는 정당한 절차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갈등이 계속 되었다. ===8월 1일=== 이날 오후 1시에 ECC 이삼봉홀에서 최경희 총장 및 학교 관련자들이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최총장은 평의회를 중단하고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니 학생들 역시 시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자신의 소통부족을 인정하며 미래라이프대학 설립과 관련하여 익일인 2일부터 정기, 비정기적인 간담회를 포함한 폭넓은 의견수렴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간담회는 본관이 아닌 공개된 장소에서 진행할 것이고, 반대의견을 수렴하기는 하겠지만 이미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21&aid=0002199503 이사회에서 결론이 난 사항을 번복하는 것은 어렵다]면서 단과대학 설립의 의지는 여전히 견지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또한 본관을 점거한 학생들에 대해서는 징계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설립자 동상에 계란과 페인트칠을 한 사례와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시위참가자를 거론하며 외부세력 개입을 시사하였다. 또한 시위에 참여하려는 시민단체를 향해 학교내부 문제에 외부세력이 개입하는 것에 강하게 반대하였다. 기자회견을 지켜본 학생회는 ECC 이삼봉홀 앞에서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최총장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평의회 감금에 대해 이사회에서 결론을 내리고 평의회 의결만 남은 상황에서 총장과의 대화를 요구하는 것은 학생들의 절박한 최후의 수단이었음을 강조했다. 또한 점거로 인해 외부와 단절되어 회의실에 머물던 평의회 인원들에게는 어떠한 폭력적 행위도 없었으며 그들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였고, 평의원들에게 식사를 제공했음을 밝혔다. 또한 최총장이 언급한 외부세력 개입에 대해서도 시위 참가자들 모두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이며 어떠한 정치적 이슈도 없고, 외부세력 개입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또한 회의장에 고립된 평의회 의원들에 대해서도 어떠한 인격적 모독은 없었으며, 오히려 학생들을 포위한 대규모 경찰병력들에 의해 학생들이 공포심을 느꼈으며, 경찰의 진압 자체가 폭력적인 과잉진압이라고 주장했다. ===8월 2일=== 본관 농성이 지속되는 가운데, 재학생과 졸업생 100여명이 시위에 가세하여 학교 정문에 반납 도장을 찍은 졸업증서 사본 수백장을 붙였다. 또한 '''학생을 탄압하는 이화여대, 우리는 이런 학교를 졸업하지 않았다'''고 쓰인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이들은 학교의 부끄러운 행태에 반대하는 후배들을 응원하기 위하여 이런 일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시위중인 학생들 역시 전날 최총장이 모든 일정을 중지하고 학생들과 대화하겠다는 기자회견에 대해서도 애매한 태도가 아닌 확실한 전면 폐지를 요구하며 시위를 계속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이화여대 교수협의회는 성명을 통해 보직자 및 일부 관련자들을 제외하고 대다수 교수들조차 미래라이프대학 설립에 관한 내용을 통보받지 못했다면서 학교측의 독단적인 사업진행을 비판했다. 인문대학 교수들도 성명을 발표하고 학교의 내부구조를 바꾸는 중대한 사항임에도 대다수 평교수들은 물론이고 학과장들도 그 내용을 알지 못하는 학교측의 일방적인 결정에 대해 비판하였다. ===8월 3일=== 오전 9시 개최된 긴급교무회의에서 문제의 핵심인 미래라이프대학을 설립하지 않기로 의결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가 나왔다. 학생들의 반대시위가 시작되고 6일이 지난 시점에서 결국 학생들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결정한 것. 의결후 정오무렵 최총장은 본관앞에 나와 진심으로 죄송하다, 학교의 발전과정에서 발생한 일을 너그럽게 이해해주기를 바란다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2&aid=0000621491 발언]을 하였다. 이어 학생들이 농성하고 있는 본관에 들어가 대화를 하려고 하였으나 학생들은 내부적으로 논의를 해보겠다며 총장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고 본관문을 닫았다. 본관 진입을 기다리던 최총장은 10여분을 기다리다가 발길을 돌렸으며, 이후 학생들은 [[교육부]]가 철회를 수용하는 내용의 정식공문을 공개하기 전까지는 농성을 풀지 않겠다며 확실한 계획폐기를 요구했다. 이날 교육부는 [http://www.moe.go.kr/web/100026/ko/board/view.do?bbsId=294&pageSize=10¤tPage=0&encodeYn=&boardSeq=63981&mode=view 보도자료]를 통해 이화여대의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철회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1&aid=0002743859 밝혔다]. 이화여대로 인해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은 추가로 선정하지 않으며, 기존에 선정된 9개 대학의 사업은 차질없이 진행되도록 지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학생들은 총장의 직인이 찍힌 정식 철회공문을 공개하라며 농성을 지속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더하여 경찰력을 요청하여 학생들에 대한 과잉진압의 책임을 물어 최총장의 사퇴운동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기에 교수들까지 총장 사퇴론을 거론하며 최총장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9&aid=0003779082 압박]하였다. 교수들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1,600여명의 경찰력을 동원하여 공포감을 조성하고 대내외적으로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킨 책임을 물었으며, 경찰 요청과 관련하여 거짓해명을 하여 명예를 실추시켰음을 최총장 사퇴의 이유로 들었다. ===8월 4일=== 학생들의 본관 점거는 지속되었다. 이날 오후, [[강신명]] [[경찰청장]]은 브리핑을 통해 서대문 경찰서에서 채증한 자료를 바탕으로 감금을 주동한 학생들에 대한 사법처리 방침을 시사했다. 학생들은 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처벌은 없을거라고 공언하던 최경희 총장의 입장이 뒤집혔다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2719077 총장 사퇴]를 더욱 강하게 주장하며 농성을 이어나갔다. 양측의 입장차이가 극명하여 점점 [[치킨 게임]]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8월 5일=== 이날 최총장은 오전에 서대문경찰서를 방문하여 학생들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1&aid=0002744454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경찰은 탄원서는 법원에서 처벌수위를 조절할 때 참고할 뿐이며 신고된 사안에 대한 수사는 지속한다는 입장이다. 학생들은 여전히 최총장 사퇴를 요구하며 본관점거를 지속했다. 이런 일련의 사태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학교 내부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요구로 단과대학 설립 폐지가 이뤄져 사태가 원만하게 해결되나 싶었는데 왜 강신명 경찰총장이 나서 학생들 처벌을 언급하냐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56&aid=0010347644 비판]하였다. 이화여대 사태로 인해 기존에 사업에 선정된 [[동국대학교]]와 [[인하대학교]] 등 다른 대학의 학생회도 학교측에 사업진행에 관한 의문을 제기하는 등 [http://news.joins.com/article/20405257 여파]가 확산되고 있다. ===8월 7일=== 학생들의 본관점거는 6일에 이어 지속되고 있다. 학생들은 최총장에게 8월 9일 오후 3시까지 사퇴를 요구하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5&aid=0003636246 최후통첩]을 보냈다. 만일 최총장이 이에 응하지 않으면 8월 10일, 재학생과 졸업생이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또한 거듭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과 최총장 퇴진운동에 참여한 교수들에 대해 어떠한 처벌이나 불이익도 가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며 강하게 압박했다. 이에 대해 학교측은 대화로 문제를 풀자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8월10일=== 학생들이 제시한 총장 사퇴기한인 8월 9일을 넘겨서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예고한대로 이날 오후 8시부투 수많은 인파가 집결<ref>경찰 추산 3,500명, 학생측 추산 20,000명</ref>한 가운데 총장 사퇴를 요구하며 대규모 [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270452 집회]를 열었다. ===8월 11일=== 학생들의 대규모 집회에도 불구하고 학교측은 여전히 대화를 통해 해결하자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였고, 총장 사퇴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대학교의 교수들 역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학과장들은 학교측과 학생들에게 중재안을 제시하며 학생들에게 학업으로 복귀하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학생들은 최총장 사퇴가 있기 전까지는 본관 점거를 풀지 않겠다고 맞서고 있고 2학기가 시작되면 지방에서 상경하는 학생들까지 결집할 수 있기에 시위 장기화에도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한편 동국대학교 학생회도 학교측의 평생교육 단과대학사업이 학교측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사항이라며 이를 규탄하는 단체행동을 벌이겠다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1&aid=0002869722 밝혔다]. ===8월 12일=== 그동안 중재자 역할을 하면서 적극적인 사태 개입을 자제하던 이화여자대학교 교수회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69&aid=0000158007 총장의 적극적 사태해결 노력이 없으면 사퇴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날 서혁 교무처장을 비롯한 이화여대 처장단 10명이 사태의 책임을 지고 전원 보직에서 물러났다. 최총장은 학생측과 대화를 시도했으나 학생측은 서면 대화를 고수하여 협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8월 15일=== [[광복절]]인 이날은 학생들이 본관을 점거한지 19일째를 맞았다. 여전히 최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학생측과 사퇴를 거부한 최총장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앞으로 얼마 남지않은 2학기 개강을 앞두고 학사일정 차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학생측과 최총장 모두 부담이 커지는 입장이라서 중재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요약: 리브레 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로 배포됩니다(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리브레 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글이 직접 작성되었거나 호환되는 라이선스인지 확인해주세요. 리그베다 위키, 나무위키, 오리위키, 구스위키, 디시위키 및 CCL 미적용 사이트 등에서 글을 가져오실 때는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여야 하고, 만약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라는 증거가 없다면 그 문서는 불시에 삭제될 수 있습니다.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 | () [] [[]] {{}} {{{}}} · <!-- --> · [[분류:]] · [[파일:]] · [[미디어:]] · #넘겨주기 [[]] · {{ㅊ|}} · <onlyinclude></onlyinclude> · <includeonly></includeonly> · <noinclude></noinclude> · <br /> · <ref></ref> · {{각주}} · {|class="wikitable" · |- · rowspan=""| · colspan=""| · |} {{lang|}} · {{llang||}} · {{인용문|}} · {{인용문2|}} · {{유튜브|}} · {{다음팟|}} · {{니코|}} · {{토막글}} {{삭제|}} · {{특정판삭제|}}(이유를 적지 않을 경우 기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드시 이유를 적어주세요.) {{#expr:}} · {{#if:}} · {{#ifeq:}} · {{#iferror:}} · {{#ifexist:}} · {{#switch:}} · {{#time:}} · {{#timel:}} · {{#titleparts:}} __NOTOC__ · __FORCETOC__ · __TOC__ · {{PAGENAME}} · {{SITENAME}} · {{localurl:}} · {{fullurl:}} · {{ns:}} –(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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