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노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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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특]](묵돌)의 등장===
===[[묵특]](묵돌)의 등장===
'''[[묵특]]'''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었다. [[묵특]]은 [[두만(흉노 선우)|두만]](頭曼) [[선우]]의 아들이었다고 전해진다. 두만은 [[묵특]]보다 그의 애첩의 소생, 그러니까 [[묵특]]의 이복동생을 후계자로 세우고 싶어했다. 한편으로는 [[월지]]가 힘 좀 세다고 짜증나게 구는 걸 좀 정리하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월지]]가 인질을 요구하자 그는 아들 [[묵특]]을 [[월지]]에 볼모로 보낸다. [[월지]]는 볼모를 죽이려고 할 것이니, 보기 싫은 큰아들도 죽이고, [[월지]]를 손봐줄 명분도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묵특]]'''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었다. [[묵특]]은 [[두만(흉노 선우)|두만]](頭曼) [[선우 (유목군주)|선우]]의 아들이었다고 전해진다. 두만은 [[묵특]]보다 그의 애첩의 소생, 그러니까 [[묵특]]의 이복동생을 후계자로 세우고 싶어했다. 한편으로는 [[월지]]가 힘 좀 세다고 짜증나게 구는 걸 좀 정리하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월지]]가 인질을 요구하자 그는 아들 [[묵특]]을 [[월지]]에 볼모로 보낸다. [[월지]]는 볼모를 죽이려고 할 것이니, 보기 싫은 큰아들도 죽이고, [[월지]]를 손봐줄 명분도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두만의 예상대로 [[월지]]는 [[묵특]]이 도착하자마자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묵특]]은 천리마를 훔쳐타고 흉노로 돌아오는 데에 성공한다. 이 일로 [[묵특]]은 아버지의 신뢰를 얻어 만여 명의 병력을 지휘하게 된다. 그러나 [[묵특]]은 아버지가 살아 있는 한 안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두만의 예상대로 [[월지]]는 [[묵특]]이 도착하자마자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묵특]]은 천리마를 훔쳐타고 흉노로 돌아오는 데에 성공한다. 이 일로 [[묵특]]은 아버지의 신뢰를 얻어 만여 명의 병력을 지휘하게 된다. 그러나 [[묵특]]은 아버지가 살아 있는 한 안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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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묵특]]이 부하들 앞에서 자신의 애마를 향해 명적을 쏘았다. 부하들은 머뭇거렸고, [[묵특]]은 자신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며 머뭇거린 부하들을 죄다 참수해버린다. 그 다음에는 자신의 연지, 즉 부인을 향해 명적을 날린다. 그의 아내는 곧 고슴도치가 되었지만, 아직도 머뭇거리는 부하들이 있었다. [[묵특]]은 망설인 자들을 참수한다.
그러던 어느 날, [[묵특]]이 부하들 앞에서 자신의 애마를 향해 명적을 쏘았다. 부하들은 머뭇거렸고, [[묵특]]은 자신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며 머뭇거린 부하들을 죄다 참수해버린다. 그 다음에는 자신의 연지, 즉 부인을 향해 명적을 날린다. 그의 아내는 곧 고슴도치가 되었지만, 아직도 머뭇거리는 부하들이 있었다. [[묵특]]은 망설인 자들을 참수한다.


그리고 기원전 209년, [[묵특]]은 마침내 사냥터에서 아버지를 향해 명적을 쏜다. 그의 부하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선우]]를 향해 활을 쏘았다. 두만은 벌집이 되어 사망하였다. 그는 계모와 이복동생을 차례로 죽이고 스스로 [[선우]]의 자리에 오른다.
그리고 기원전 209년, [[묵특]]은 마침내 사냥터에서 아버지를 향해 명적을 쏜다. 그의 부하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선우 (유목군주)|선우]]를 향해 활을 쏘았다. 두만은 벌집이 되어 사망하였다. 그는 계모와 이복동생을 차례로 죽이고 스스로 [[선우 (유목군주)|선우]]의 자리에 오른다.


그리고 [[묵특]]은 오르도스 상실 이후 위축되었던 흉노의 세를 무서운 속도로 불려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묵특]]은 오르도스 상실 이후 위축되었던 흉노의 세를 무서운 속도로 불려나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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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리장성]]을 양국의 경계로 삼는다.
* [[만리장성]]을 양국의 경계로 삼는다.
* 한과 흉노는 형제의 의를 맺는다.
* 한과 흉노는 형제의 의를 맺는다.
* 한나라 공주를 흉노 [[선우]]에게 시집보낸다.
* 한나라 공주를 흉노 [[선우 (유목군주)|선우]]에게 시집보낸다.
* 한은 매년 흉노에게 옷감과 비단을 보낸다.
* 한은 매년 흉노에게 옷감과 비단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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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노 선우]]가 이끄는 북흉노는 북몽골초원에서 한에 대항했다. 이 분열기 이후 흉노는 초원에서 그 중심적인 지위를 잃어버린다. 흉노가 쇠퇴하면서, 기원전 1세기경 처음 나타났던 [[선비 (유목민)|선비]]가 강성해졌다.
[[포노 선우]]가 이끄는 북흉노는 북몽골초원에서 한에 대항했다. 이 분열기 이후 흉노는 초원에서 그 중심적인 지위를 잃어버린다. 흉노가 쇠퇴하면서, 기원전 1세기경 처음 나타났던 [[선비 (유목민)|선비]]가 강성해졌다.


기원후 79년에는 [[반초]]가, 89년에는 두헌이 대대적인 흉노 정벌을 감행하여 흉노를 대파했다. 이 때 흉노 일축왕을 비롯하여 21만명이 한에 투항했다고 한다.<ref>김호동, 아틀라스 중앙아시아사, 사계절, 근간</ref> 91년에는 경기(耿夔)가 이끄는 한군이 금미산에서 북흉노를 대파했다. [[선우]]의 모친을 비롯하여 5000명이 전사한 참담한 패배였다.
기원후 79년에는 [[반초]]가, 89년에는 두헌이 대대적인 흉노 정벌을 감행하여 흉노를 대파했다. 이 때 흉노 일축왕을 비롯하여 21만명이 한에 투항했다고 한다.<ref>김호동, 아틀라스 중앙아시아사, 사계절, 근간</ref> 91년에는 경기(耿夔)가 이끄는 한군이 금미산에서 북흉노를 대파했다. [[선우 (유목군주)|선우]]의 모친을 비롯하여 5000명이 전사한 참담한 패배였다.


북흉노는 서진하여 일리 강 유역으로 이주한다. 이 때 이주하지 않은 흉노 잔여 세력 10만여 락(천막)이 선비로 흡수되었다는 기록이 눈에 띈다.<ref>김호동, 아틀라스 중앙아시아사, 사계절, 근간</ref>  일리 강 유역에서 천산 산맥에 이르는 영역에 자리잡은 북흉노는 오랫동안 그 세력을 유지했다. 2세기 전반기까지 흉노는 일부 서역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현대의 [[카자흐스탄]] 지역에 분포하고 있었다. 한 조정과 서역의 패권을 놓고 계속해서 경쟁을 벌이면서 접촉을 했던 것도 확인된다.
북흉노는 서진하여 일리 강 유역으로 이주한다. 이 때 이주하지 않은 흉노 잔여 세력 10만여 락(천막)이 선비로 흡수되었다는 기록이 눈에 띈다.<ref>김호동, 아틀라스 중앙아시아사, 사계절, 근간</ref>  일리 강 유역에서 천산 산맥에 이르는 영역에 자리잡은 북흉노는 오랫동안 그 세력을 유지했다. 2세기 전반기까지 흉노는 일부 서역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현대의 [[카자흐스탄]] 지역에 분포하고 있었다. 한 조정과 서역의 패권을 놓고 계속해서 경쟁을 벌이면서 접촉을 했던 것도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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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
흉노의 대군주는 [[선우(單于)]]라고 불렸다. 선우는 연제(戀鞮) 씨족에서 배출되었으며, 전통적으로 호연, 란, 수복 등의 씨족에서 연지, 즉 아내를 맞아들였다. 후한 대에는 구림씨족이 추가된다. 이들 인척씨족의 수령들은 "골도후(骨都侯)"라고 불리며 선우를 보좌하고, 휘하의 유목집단들을 감찰, 재판했으며, 한과의 교섭을 담당했다고 한다.
흉노의 대군주는 [[선우 (유목군주)|선우(單于)]]라고 불렸다. 선우는 연제(戀鞮) 씨족에서 배출되었으며, 전통적으로 호연, 란, 수복 등의 씨족에서 연지, 즉 아내를 맞아들였다. 후한 대에는 구림씨족이 추가된다. 이들 인척씨족의 수령들은 "골도후(骨都侯)"라고 불리며 선우를 보좌하고, 휘하의 유목집단들을 감찰, 재판했으며, 한과의 교섭을 담당했다고 한다.


흉노는 영역을 크게 좌방, 중앙, 우방으로 나누었다. 동쪽의 좌방은 좌방왕장, 서쪽의 우방은 우방왕장들이 관리했다. 이렇게 영역을 삼분하는 것은 후대의 유목제국들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특성이다. 좌방은 고조선과 예맥, 상곡(上谷)에 접했으며, 우방왕장은 상군(上郡)을 겨눈 위치에 놓였으며, [[월지]], 저, 강과 접했다고 한다. 중앙은 선우정(單于庭), 즉 선우의 직접 지배 영역이었으며, 운중(雲中)과 대(代)에 접하였다.
흉노는 영역을 크게 좌방, 중앙, 우방으로 나누었다. 동쪽의 좌방은 좌방왕장, 서쪽의 우방은 우방왕장들이 관리했다. 이렇게 영역을 삼분하는 것은 후대의 유목제국들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특성이다. 좌방은 고조선과 예맥, 상곡(上谷)에 접했으며, 우방왕장은 상군(上郡)을 겨눈 위치에 놓였으며, [[월지]], 저, 강과 접했다고 한다. 중앙은 선우정(單于庭), 즉 선우의 직접 지배 영역이었으며, 운중(雲中)과 대(代)에 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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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은어로서의 사용==
==인터넷 은어로서의 사용==
신라왕족 흉노설을 근거로 [[백제]]=[[전라도]](사실 백제는 [[서울]] 지방을 근거지로 발전한 정권이다), [[신라]]=[[경상도]], 신라의 시조가 흉노이니 경상도는 흉노(족) 라는 편협하고 자의적인 역사인식을 가진 지역 패권주의자들 혹은 반 영남 정서를 가진 네티즌들 사이에서 한때 회자되었던 [[지역드립]]이다.
신라왕족 흉노설을 근거로 [[백제]]=[[전라도]](사실 백제는 [[서울]]지방을 근거지로 발전한 정권이다), [[신라]]=[[경상도]], 신라의 시조가 흉노이니 경상도는 흉노(족) 라는 편협하고 자의적인 역사인식을 가진 지역 패권주의자들 혹은 반 영남 정서를 가진 네티즌들 사이에서 한때 회자되었던 [[지역드립]]이다.


이미 과거의 글에서나마 볼 수 있는, 약발이 다 된 [[드립]]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 드립을 치는 경우가 아주 간간히 보인다.
이미 과거의 글에서나마 볼 수 있는, 약발이 다 된 [[드립]]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 드립을 치는 경우가 아주 간간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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