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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한의 물자와 군사적인 도움으로 호한야는 흉노를 다시금 통합할 수 있었다. 실제로 기원전 36년 질지가 전사한 전투는 서흉노와 한나라 군대 사이에서 일어난 전투였다. 이 전투로 서흉노는 와해되었고, 호한야는 흉노를 재통합할 수 있었다. 통합이 이루어진 이후에도 BC 33년 호한야는 재입조해 대대적인 물자 지원을 얻어갔다. 한의 재정에 큰 부담이 될 정도. [[왕소군]]의 이야기도 호한야 선우의 시절에 나온 것이다. | 여튼 한의 물자와 군사적인 도움으로 호한야는 흉노를 다시금 통합할 수 있었다. 실제로 기원전 36년 질지가 전사한 전투는 서흉노와 한나라 군대 사이에서 일어난 전투였다. 이 전투로 서흉노는 와해되었고, 호한야는 흉노를 재통합할 수 있었다. 통합이 이루어진 이후에도 BC 33년 호한야는 재입조해 대대적인 물자 지원을 얻어갔다. 한의 재정에 큰 부담이 될 정도. [[왕소군]]의 이야기도 호한야 선우의 시절에 나온 것이다. | ||
호한야의 통합 이후 약 100년 동안 흉노는 안정기에 들어선다. 심지어 한 때 최전성기에 버금가는 세력을 회복하기도 했다. [[왕망]]이 즉위하여 [[신나라|신]]을 건국하며 주변국에 대한 예우를 격하한 일이 있었는데 | 호한야의 통합 이후 약 100년 동안 흉노는 안정기에 들어선다. 심지어 한 때 최전성기에 버금가는 세력을 회복하기도 했다. [[왕망]]이 즉위하여 [[신나라|신]]을 건국하며 주변국에 대한 예우를 격하한 일이 있었는데, 이를 계기로 서역과 초원에서 들끓은 신에 대한 반감을 이용하였던 것. 그러나 후한 건국 이후에는 다시 세력이 위축된다. | ||
===재분열=== | ===재분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