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Utolee90 (토론 | 기여)님의 2017년 2월 16일 (목) 11:42 판 (→‎어린 시절: 들여쓰기 오류)
황교안 (2016년 9월 6일)
미스터 국가보안법

황교안(1957년 4월 15일 ~ )은 박근혜정부의 세 번째 국무총리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됨에 따라 2016년 12월 9일부터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 있다.

생애

약력

  • 1957년 4월 15일 서울 출생
  • 광성중학교 - 경기고등학교 -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졸업
  •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 수료
  • 대한민국의 검사
    • 1981년 제 23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13기 수료)
    • 청주지검 검사
    •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 대검찰청 공안3과장
    • 대검찰청 공안1과장
    • 서울지검 컴퓨터수사부장
    • 서울지검 공안2부장
    •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 (2005년 국정원·안기부 도청사건 수사 지휘)
    • 통영지청장
    • 창원지검 검사장
    • 대구고검 검사장
    • 부산고검 검사장
  • 2011년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변호사
  • 2013년 3월 법무부장관 임명 (박근혜정부)
  • 2015년 6월 18일 국무총리 임명 (박근혜정부)
  •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권한대행

어린 시절

황교안은 1957년 4월 15일, 서울 용산구 서계동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황교안의 부모님은 북한 출신이었으며, 아버지는 황해도 지역 지주였으나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땅을 모두 잃어버리고 월남하였다. 이후 황교안의 부친은 자녀들의 표현에 따르면 안 해 본 일이 없다.고 할 정도로 다양한 일을 하였고, 말년에는 고물상을 하였다고 한다. 비록 황교안은 학비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는 일은 없었으나 매우 빈곤한 삶을 살아왔다고 한다. 황교안은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후에도 법무법인 태평양의 고문변호사가 되기 이전에는 재정적 여유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기사에 언급된 일화에 따르면 해외선교를 가거나 수련회를 가더라도 신도들을 이끌고 관광을 가거나 맛있는 음식을 사줄 수 없을 정도였고, 태평양 고문 변호사가 되었을때 "내가 이제 (성도들에게) 밥은 사줄 수 있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황교안은 어린 시절부터 차분하고 조용하며 겸손한 성품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더쉽이 있어 또래들이 잘 따랐다고 한다.[1]

중고등학교 때부터 법조인의 꿈을 꾸었으며, 재수 끝에 1977년, 성균관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에 부친이 사망하였다. 1980년 담마진을 이유로 병역 면제가 되었고, 1981년 제 23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이후 사법연수원을 제 13기로 수료하였다. 1983년, 검사시절, 형수의 중매로 부인 최지영씨를 만나 결혼하였다. 여담으로 평소 연세대 영문과 학생을 만나고 싶어했는데 딱 맞는 여성이 나와서 기뻐했다고...[2]

검사 시절

  • 검사로 재직하는 도중 1994년 3월 발생한 조계사 폭력사태의 담당 검사로서 사건을 진두지위하였다. 이 때문에 황교안은 (사건 처리의 타당성은 별론으로 하고)불교계와 악연을 맺은 것으로 평가된다.[3]
  • 검사시절에 국가보안법 해설서를 펴낸 것으로 유명하다. 황교안이 펴낸 국가보안법 해설서는 공안 수사의 교과서 격으로 활용되었고, 이 때문에 황교안은 ‘미스터 국가보안법’, ‘공안통’으로 유명하다. 이 점 때문에 야권에서는 상당히 거부감을 느끼는 인물이기도 하다.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조국 교수는 황교안에 대하여 법지식을 일관되게 기성체제, 기득권, 강자 옹호 및 반대자와 약자 억압에 사용했던 사람이라고 비판하였다.[4]

장관 시절

20년 가까이 공안검사로 활약한 황교안은 2011년 부산고검 검사장을 마지막으로 공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2013년에 박근혜정부의 첫 법무부장관으로 기용되었다. 법무부장관 재직 시절 주요 업적으로는 마을변호사제 도입, 통합진보당 정당해산결정 등이 있다.

국무총리에 임명된 후에는 특별한 활약 없이 조용하게 지낸 편이다. 뭔가를 나서서 주도적으로 하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는 성격이라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어깃장을 놓는다던가 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이렇게 박근혜 정부에 협조적이었던 사람이 대통령 탄핵 가결 이후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는 것에 대해서 야권에서는 약간 언짢게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히려 나서서 일을 벌이지 않으니 비교적 안정적인 국정운영이 가능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종교

독실한 기독교(침례교) 신자이다. 서울 양천구 목동 소재 성일교회를 50년 동안 다니고 있다. 성일교회는 1967년, 황교안의 큰 누나 방에서 시작된 개척교회이다. 황교안의 독실한 신자로서의 면모는 검사로 재직할 당시에도 변함이 없었는데, 임지에 신우회가 없다면 매번 새로이 신우회를 만들었고, 심지어 창원에서 근무할 당시에도 주말에 올라와서 예배에 참석하였다고 한다.[5]

군 복무

담마진으로 인해 징집 면제 판정 받았다. 이 때문에 ‘두드러기로 면제받은 놈’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이에 대하여 황교안 측에서는 군면제가 될 당시 황교안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가난하기 그지 없는 처지였는데 소위 을 써서 군면제를 받는 것은 불가능한 처지였고, 본인도 군 입대에 대하여 강한 의지를 보이던 상황이었으며, 담마진 치료는 면제 판정 이후로도 17년 동안 치료받아야 했을만큼 중대한 상황이었음을 이유로 (국방의 의무를 다하지 못 하였음은 국민과 국가에 죄송스럽지만)고의 병역 기피로 보는 것에 대해서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6]

취미

취미는 색소폰 연주이다.

가족

가족으로는 5살 연하의 부인 최지영과 1남 1녀가 있다. 최지영 또한 남편과 마찬가지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복음성가 가수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나사렛 대학교 상담센터 교수도 겸임하고 있다. '위대한 유산'이라는 복음성가 앨범을 낸 적도 있다.

틀:대한민국의 총리

각주

  1. 참고 기사, 팩트올, 2017. 02. 08.
  2. 참조 기사, 팩트올, 2017.2.10.
  3. 황교안 해부5/종교편향 논란과 종교인 과세 등에 대한 시각, 팩트올, 2017.02.16.
  4. 황교안 해부5/종교편향 논란과 종교인 과세 등에 대한 시각, 팩트올, 2017.02.16.
  5. 참조기사, 팩트올, 2017.02.13.
  6. 참조 기사, 팩트올, 2017.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