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제3공화국

프랑스 공화국
République française
1870년 - 1940년
Flag of France (1794–1815, 1830–1974).svg
국기
프랑스 공화국 문장.png
국장
French Republic 1939.svg
표어
Liberté, égalité, fraternité
자유, 평등, 박애
국가
나라 정보
수도 파리
공용어 프랑스어
국교 세속주의
정부유형 의원내각제
다당제
양원제
대통령 아돌프 티에르(초대)
알베르 르브룅(마지막)
총리 쥘 아르망 뒤포르(초대)
필리프 페탱(마지막)
입법부 프랑스 국민의회
상원
하원
기타 정보
화폐 프랑스 프랑(₣)

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어: Troisième République française, IIIe République)은 보불전쟁으로 프랑스 제2제국이 붕괴된 1870년 9월 4일부터 1940년 7월 10일, 제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게 패배하면서 형성된 비시 정권이 선포되기 전까지 유지되었던 공화정 체제였다.

이러한 제3공화국은 형성 초기인 1870년과 1871년 사이에 전쟁에 대한 책임을 물어 황제 나폴레옹 3세를 폐위시켰으나, 이후에도 계속 국가를 지키기 위한 전쟁을 수행했다. 하지만 이미 스당 전투에서 황제가 끌고 나간 주력 야전군이 전멸당한 탓에 끌어올 수 있는 병력은 극히 모자랐고, 결국 전쟁의 패전은 코앞까지 다가오고 말았다. 이로 인해 제3공화국 체제에 반발하여 파리 코뮌이 들어서고, 왕당파가 준동하는 등의 정치적 혼란이 제3공화국 사회를 지배하게 되고 말으며, 결국 프랑스는 전쟁에서 패배했다. 그리고 프로이센 왕국은 베르사유 궁전에서 그들이 독일 제국으로 재편되었음을 선언했으며 프랑스의 알자스로렌 지역을 프랑스로부터 빼앗아가고 만다.

이 때문에 아돌프 티에르파트리스 드 마크마옹이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있던 1880년대에는 왕당파가 득세한 의회가 다시 부르봉 왕정복고을 고려하기에 이르렀으나 국왕의 권력을 어느 정도로 제한할 것인지, 또 왕위의 후계를 부르봉 본가가 아닌 오를레앙 가문에 넘겨줄 것인지 등과 같은 의견 차이는 해결되지 않았고 갈등만 불거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공화파는 왕당파를 정계에서 축출하는 데 성공했고, 공화정은 프랑스의 향구적인 정체로 굳어지게 된다.

이렇게 내부의 불안정을 정리한 제3공화국은 당대에 유행하던 신제국주의 조류에 편승했고, 인도차이나 지역을 완전히 손에 넣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형성하는 것을 시작으로 1880년대부터 시작된 아프리카 분할에 참가해 서아프리카 지역의 넓은 영토를 식민지로 삼는데 성공했고, 곧이어 마다가스카르, 폴리네시아 등의 지역들을 모두 식민화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한편으로 제3공화국은 교육과 정교분리, 동맹파업과 노조결성의 자유를 명시한 법률을 제정하고, 인민들에게 평등하고 보편적인 선거권을 보장하는 등의 대대적인 사회개편을 수행했고, 이에 따라 민주주의가 강화되었으며 프랑스인들의 삶의 질이 한결 나아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렇기에 당대의 프랑스인들은 이 시기를 벨 에포크(Belle Époque, 좋았던 시절)라 통칭하며, 현대 프랑스인들이 사고관념을 정립했던 시기였다고 기억하게 된다.

하지만 이 시기부터 극심한 빈부격차 등에 의한 의한 극단적인 양극화와, 이로 인해 발생한 소위 악당법으로 대표되던 자유를 침해하는 검열, 마녀사냥, 정치군인들의 준동, 극단주의의 발호, 우생학의 유행과도 같은 심각한 사회 문제 역시 불거지기 시작했으며, 이로 인해 프랑스 제3공화국은 서서히 흔들리게 된다. 그리고 이런 사회혼란이 대대적으로 드러난 것은 찍은 것은 역설적으로 원수 독일과의 대결에서 프랑스가 대승을 거둠으로서 나타났으며, 이로 인해 여러 사회적 격변이 일어나게 된다.

결국 1940년 7월 11일, 나치 독일침략 도중, 의회로부터 헌법개정권[1]을 이양받은 정치군인 페탱비시 정권을 선포하면서 프랑스 제3공화국은 멸망하게 된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국민방위정부, 패전, 그리고 파리 코뮌[편집 | 원본 편집]

왕당파와의 투쟁[편집 | 원본 편집]

벨 에포크, 제국주의, 그리고 불안[편집 | 원본 편집]

대전쟁[편집 | 원본 편집]

전후의 양극화와 혼란 속에서[편집 | 원본 편집]

또 한 번의 대전쟁파멸[편집 | 원본 편집]

정치[편집 | 원본 편집]

경제[편집 | 원본 편집]

외교[편집 | 원본 편집]

제도[편집 | 원본 편집]

문화[편집 | 원본 편집]

군사[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현 프랑스 정부에서는 당시 페탱파 정치군인이었던 막심 베강 장군이 의회에 자행한 쿠데타 위협 등의 이유를 들어 이 당시에 페탱에게 부여한 헌법개정권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