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폴란드 공화국
Rzeczpospolita Polska
Flag of Poland.svg
국기
Herb Polski.svg
국장
Poland (orthographic projection).svg
국가
나라 정보
수도 바르샤바
공용어 폴란드어
정부유형 의원내각제
양원제
다당제
대통령 안제이 두다
총리 도날트 투스크
입법부 폴란드 의회
상원
세임(하원)
인구 40,820,272 명
인구밀도 약 123 명/km2
면적 312,685 km2
기타 정보
화폐 즈워티
ISO 616, PL, POL
도메인 .pl
국제전화 +48

우주에 갈수없다 카더라

폴란드는 중부 유럽에 있는 나라다.

수도는 바르샤바.

역사[편집 | 원본 편집]

쭉 보다보면 평행이론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그것도 한국과 비슷한 시기에 수많은 침략을 받았고 비슷한 시기에 나라가 강점당하기도 했다. 역사상으로도 공인된 가장 많은 침략을 당한 나라 중 하나이다. 근대 시대에는 나라가 5번이나 쪼개져 사라지기도 했다. 이때문에 미국에서는 아일랜드, 폴란드, 한국이 한 그룹 내에 묶여서 불릴 정도다. 그래도 그나마 폴란드는 셋 중에서 취급이 가장 나은 편인데, 적어도 다른 나라를 공격했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1]

고대[편집 | 원본 편집]

중세[편집 | 원본 편집]

폴란드는 리투아니아동군 연합을 맺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왕국을 형성했다. 이를 통해 폴란드는 유럽의 깡패로 돌변하면서 전성기를 누렸다.

근대[편집 | 원본 편집]

현대[편집 | 원본 편집]

1918년 폴란드는 파리 강화 회의의 결과로 독립하게 된다. 볼셰비키와의 전쟁(폴란드-소비에트 전쟁)을 통해 벨라루스와 서부 우크라이나 지역 상당수를 획득하며 동부 국경을 확정했다. 이후 독립과 구국의 영웅이었던 피우수트스키가 독재정치를 펼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리투아니아, 체코슬로바키아, 독일, 소련 등 많은 이웃나라들과 충돌을 일으켰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폴란드의 상황은 극적으로 바뀐다. 독일히틀러1933년 폴란드에 불가침조약을 제의, 폴란드는 이를 수락하면서 양국간 평화관계(?!)가 성립된다. 그러나 히틀러는 독폴 불가침조약으로 시간을 번 이후 호시탐탐 영토를 늘릴 생각을 하였고, 오스트리아체코슬로바키아를 흡수하는데, 폴란드는 이 순간 동맹국 프랑스를 저버리고 체코슬로바키아 분할에 가담하여 자그마한 영토(톄신 지방)를 체코슬로바키아로부터 강탈하였다.

그러나 작은 영토를 획득한 대가로 독일은 대놓고 단치히 회랑을 요구가 아닌 협박했고 폴란드는 이를 단호히 거절하였다. 이에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 시작되며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다. 독일군의 총공격에 폴란드군은 용감히 맞섰지만, 결국 독일과 밀약을 맺었던 소련이 참전하면서 1달만에 전 국토가 유린되고 정부는 영국으로 망명한다. 이후 폴란드 영토는 독일과 소련이 분할하였으며 수많은 폴란드인들이 침략자들에 의해 희생되었다. 특히 소련에 의해 폴란드 고위층 및 지식인이 집단학살당한 카틴 학살은 오늘날까지도 폴란드인의 공분을 사고 있다.

이후 폴란드 영토는 1944년 소련군의 하계 대공세(바그라티온 작전)와 뒤이은 추가공세 속에 완전히 해방되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에 독일과 야합한 침략자인 소련으로부터의 해방이 진정한 해방일 리 없었다. 소련은 폴란드 자유주의 및 우파 진영을 철저히 탄압하고 영국의 망명 정부를 인정하지 않으며 사회주의 괴뢰 정권을 수립하였다. 이 과정에서 폴란드는 동부 영토를 소련에 빼앗기고 반대급부로 독일의 동부 영토를 획득했는데, 이 과정에서 수도 바르샤바가 국토의 중심부가 아닌 동쪽으로 치우쳐지게 된다. 그러다가 1956년 비에루트가 사망하면서 변화의 물결이 찾아왔고, 포즈난 항쟁과 고무우카의 집권기를 거치면서 소련의 영향력에서 상당히 벗어나기는 하였지만 고무우카는 후에 권위주의적인 지도자로 변모하면서 인민들의 지지를 잃게 되었고 1970년의 파업으로 기에레크에 의해 사실상 쫓겨나게 된다. 기에레크는 집권 후에 경제개방정책을 펼치면서 인민들의 지지를 받게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차관을 들여보냈고, 그 차관이 후에 폴란드 사회주의 정부의 숨결을 끊어놓게 된다.

폴란드 사회주의 정부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후반기 오일쇼크가 닥쳐오면서부터이다. 레흐 바웬사의 자유노조 운동이 결실을 맺기 시작했고, 동구권의 맹주 소련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폴란드에서도 마침내 민주선거를 통해 타데우시 마조비에츠키의 민주주의 정부가 수립되었다. 이후 폴란드는 유럽 연합북대서양 조약 기구에 가입하며 빠르게 서구 세계에 편입되고 있다.

지리[편집 | 원본 편집]

폴란드는 독일, 러시아, 리투아니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슬로바키아, 체코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이중 러시아와 접하는 부분은 러시아 본토가 아니라 소련 해체 후 러시아의 월경지가 된 칼리닌그라드주다.

지형[편집 | 원본 편집]

북쪽으로는 발트해를, 중간에는 평지와 구릉지가, 남쪽에는 카르파티아 산맥을 맞대고 있다.

기후[편집 | 원본 편집]

폴란드는 해양성 기후와 대륙성 기후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 그 덕분에 날씨는 대체로 온화하다. 특이하게도 폴란드는 6계절(초봄, 봄, 여름, 가을, 초겨울, 겨울)을 가지고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유난히 초봄과 초겨울이 드러나는 편이라고 한다.[2]

정치[편집 | 원본 편집]

1990년대 체제전환 이후 바웬사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와 바웬사 정부이후에도 지속되는 긴축정책과 고실업등의 문제로 우파세력과 사민주의(구 공산당)세력이 번갈아서 집권하는 구도였지만 2000년 대선과 2001년 총선에서 연달아 승리한 SLD가 부정부패 문제와 지속되는 고실업 문제의 여파로 2005년 총선과 대선에서 연달아서 10%대의 득표율을 확보하는데 그치며 수권정당으로써 기능을 상실하고 우파세력(시민강령과 법과 정의당)이 번갈아서 집권하는 구도로 전환되었다.

행정구역[편집 | 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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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편집 | 원본 편집]

경제[편집 | 원본 편집]

사회[편집 | 원본 편집]

폴란드는 폴란드어를 사용한다. 독일이나 프랑스와 달리 폴란드의 각 방언은 거의 차이가 없으며 문제없이 대화할 수 있다.

주 민족은 폴란드인이다. 유럽에서 보기드문 단일민족국가로 전 인구의 98%가 폴란드인이다. 소수민족은 우크라이나인, 독일인, 벨라루스인, 카슈브인, 실롱스크인이 있다. 원래는 다민족국가였으나 2차대전을 계기로 단일민족국가로 변했다.

문화[편집 | 원본 편집]

건축[편집 | 원본 편집]

스포츠[편집 | 원본 편집]

누가 유럽 아니랄까봐 축구에 환장하며 80년대에는 FIFA 월드컵 4강까지 진출한 전통의 강호이며 다크호스였다. 90년대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고 2000년대 초반 반등하여 2002, 2006년에 연달아 본선에 진출했다. 그러나 두 대회 연속으로 개최국을 만나는 불운 속에 02년에는 한국과 포르투갈,[3] 06년에는 독일과 에콰도르에 패하며 16강 진출에 실패했고 이후 2010, 2014년 대회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다.

독일과는 영원한 숙적. 이 둘의 관계는 대한민국일본 국가대표팀의 관계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FIFA 순위라면 몰라도 상대전적에서는 확실히 일본 대표팀을 압도하는 것과는 달리 이 쪽은 2014년까지 18전 6무12패로 절대 약세를 보여왔다. 다 이긴 경기도 버저비터로 무승부가 되어버릴 만큼 독일에 대해서는 지독히 대전운이 없었으나 드디어 2014년 10월 12일, 사상 첫 승을 따내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 나라 출신 유명 축구선수들도 많은 편. 주로 자국 리그나 분데스리가, 에레디비지에서 활약하는 경우가 많다. 간혹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폴란드 출신 이민자나 귀화 선수가 활약하는 경우도 있다. 루카스 포돌스키미로슬라프 클로제가 이런 경우.

다음은 폴란드 출신의 유명 축구 선수들.

남자 배구에서도 꽤 좋은 성적을 낸다. 폴란드 남자 배구 국가대표팀은 1974년, 2014년, 2018년에 FIVB 세계 배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였다.

예술[편집 | 원본 편집]

음식[편집 | 원본 편집]

음악[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사실 이들 중 가장 불행했던 것은 아일랜드다. 한국은 삼국시대고구려남북국시대발해가 지금은 중국 땅인 만주 지역을 영토로 삼았고, 다른 나라로부터의 방어 전쟁이긴 했지만 임진왜란 당시 조선일본을 상대로 승리했기 때문이다.
  2. seul.msz.gov.pl/ko/poland korea relation/about poland/
  3. 2002년 폴란드는 조 2위로 16강에 진출한 미국을 대파했지만 그 전에 이미 탈락이 확정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