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출생주의자들의 수행모순" 문단 관련 토론
편집 분쟁이 발생해 토론을 열게 되었습니다. 사족으로 현재 작성된 "수행모순" 문단의 내용이 잘못되었다면, 반론을 덧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해당 문단의 내용 전체를 갈아엎는 방향으로 수정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Liebesfreud (기여∙토론) 2020년 11월 27일 (금) 20:05 (KST)
타인의 기여분을 삭제하는 것이 저어되어 그대로 두고 반론을 추가하는 선에 그친 것이지만, 본인 심기에 거슬린다고 일방적으로 반론 자체를 무단 삭제하는 횡포를 부린다면 저도 배려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 엉터리 비판 자체를 삭제하는 쪽으로 가겠습니다. 현재 해당 비판 항목은 소극적 공리주의자와 친죽음주의(번역 출처: 이한 교수)의 수행적 모순을 제시한 후 본인만의 괴상한 비약을 통해 마치 자신이 반출생주의자의 수행 모순을 발견하여 전문적인 비판을 행하고 있는 양 둔갑하고 있지만 본질은 얕은 이해에서 비롯된 참사거나 비판을 가장한 막연한 조롱입니다. 소극적 공리주의자나 친죽음주의자는 고통의 최소화를 위해 왜 자살하거나 학살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 수행상의 모순이 생깁니다. 하지만 비판 항목에서 수행 모순이라고 우기는 것들은 엄밀한 의미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반출생주의자가 출산하거나 출산하도록 장려할 때에나 그러한 '모순'이 발생하는데, 제시하는 것들은 그런 것과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즉 쓸데없이 장황할 뿐 시작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엉터리 비판이고, 이렇게 독자적인 비판조차 용납될 수 있다면 이에 대한 반론 역시 존치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함에도, 내로남불격으로 반론 전체를 지속적으로 무단 삭제하고 조롱하는 것은 목적이 불순하다는 것을 자인할 꼴이며 선을 넘었습니다. 따라서 반론을 끝까지 무단 삭제한다면 목적이 의심되는 엉터리 비판 자체를 삭제하는 쪽으로 가겠습니다. --Kill586 (토론) 2020년 11월 27일 (금) 20:59 (KST)
- 일단 편집에 잠깐 참여했던 저는 '반출생주의'와 '수행모순'의 정의에 대해 잘 모릅니다. 어느 부분에서 비약이 발생했는지에 대한 간단한 요약과 '반출생주의'와 '수행모순'의 정의를 확인할 수 있는 출처를 제시해주시면 더 원활한 토론 진행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오늘 밤 중으로 관련 내용에 대해 더 검색해 보겠습니다. --Liebesfreud (기여∙토론) 2020년 11월 27일 (금) 20:59 (KST)
- https://www.civiledu.org/m/938 엄밀한 의미로 수행적 모순이란 용어는 이론의 여지가 없이 명백히 모순되지 않는 한 함부로 써선 안 되며 먼저 모순임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비판 항목은 밑도 끝도 없이 앞서 말한 소극적 공리주의 등 다른 사례를 갖다 댄 후 '내가 보기에 너희가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안 나서는 게 왠지 이거랑 비슷한 느낌이니 아무튼 수행적 모순이다'라는 식으로 얼렁뚱땅 비약한 후 그 비약을 다시 근거로 삼아 재차 비약하는 식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반출생주의에 대한 것은 문서 내 베너타의 논리 항목이나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서평을 참고 바랍니다. 아무래도 위키만으론 한계가 있으니 이번 기회에 해당 서적을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Kill586 (토론) 2020년 11월 27일 (금) 21:27 (KST)
- 철학과 관련된 문헌을 많이 접해 보지 않아 논리와 (용어를 비롯한) 표현을 따라가는 것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제가 "출산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문구를 삭제한 것은 해당 문단이 지나치게 편향적으로 보일 수 있음을 우려한 결정이었으며, 일단 어느 정도 개념을 이해하기 전까지 본 문단과 반론 문단의 수정 및 삭제에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이해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제공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Liebesfreud (기여∙토론) 2020년 11월 27일 (금) 22:19 (KST)
- https://www.civiledu.org/m/938 엄밀한 의미로 수행적 모순이란 용어는 이론의 여지가 없이 명백히 모순되지 않는 한 함부로 써선 안 되며 먼저 모순임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비판 항목은 밑도 끝도 없이 앞서 말한 소극적 공리주의 등 다른 사례를 갖다 댄 후 '내가 보기에 너희가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안 나서는 게 왠지 이거랑 비슷한 느낌이니 아무튼 수행적 모순이다'라는 식으로 얼렁뚱땅 비약한 후 그 비약을 다시 근거로 삼아 재차 비약하는 식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반출생주의에 대한 것은 문서 내 베너타의 논리 항목이나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서평을 참고 바랍니다. 아무래도 위키만으론 한계가 있으니 이번 기회에 해당 서적을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Kill586 (토론) 2020년 11월 27일 (금) 21:27 (KST)
'한국에서의 대두' 문단 전체 삭제의 필요성
논지부터 요약하자면
1. 해당 문단 자체가 데이비드 베너타 등이 정립한 반출생주의 사상과 전혀 연관이 없으며
2. 반출생주의가 한국에서 '대두' 되었다고 볼 수 없는 점.
입니다.
제가 다른 토론에서 논란이 된 문단에서 '반출생주의 옳다는 사람들, 실은 삶에 대해 툴툴대는 것 뿐' 이라고 하는 논거가, 사실 '한국에서의 대두' 문단에서 전부 그러한 서술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과거부터 존재는 해왔으나 터부시되던 담론이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재조명되는 것은 이 시기 청년 세대의 실업 문제 같은 경제적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현실 여건상 자식에게 물려줄 재산이 없고, 더 이상 자식에게 노후 부양을 기대할 수 없다면 자식을 낳지 않는 편이 예비 부모 입장에서나 태어날 자식 입장에서나 더 나을 수 있다.'
'위선적인 기성 세대에 대한 분노와 사회에 대한 절망도 현상의 원인이라 볼 수 있다. 특히 한반도 사상 최고 경제 호황의 혜택[25]을 누린 민주화·운동권 세대는 정의를 부르짖으며 군사독재 정권을 타도했으면서도, 자신들이 기득권에 다가가자 자신들에게 유리한 적폐는 답습하고 권위주의·전체주의 요소를 유지하는 면모를 보였다. 또한 청년 세대에 대한 갑질·성범죄와 투기 같은 추태가 가장 자주 보고되는 세대이며, 그러면서도 베이비붐을 겪은 세대답게 '그래도 결혼은 하고 손주는 보여야 효도[26]지.' 같은 식으로 청년 세대의 절망에 공감을 하지 않는 면이 있다.'
'그 어떤 악질의 독재자, 범죄자나 사회 주류에게 멸시당하는 장애인, 정신질환자, 성소수자 등의 소수 집단도 결국 물질적·유전적·정신적 흙부모에 의해 강제로 세상에 태어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현대에 들어 3D 업종 수요로 인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면서도 밥그릇 문제 때문에 혐오받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도 결국 따지고 보면 그 나라의 흙부모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난민 문제 또한 마찬가지다. 결국 흙부모가 만악의 근원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30]'
'설령 부모가 별 미련이나 큰 고통 없이 죽더라도 남겨진 자식은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힘들어질 공산이 큰데, 국가유공자의 유가족조차도 제대로 대우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가 어떤 형태로 남겨진 자녀를 괴롭힐지는 아무도 모르고, 이에 대한 완전한 방비도 불가능하다.
또한 이미 세계 대전이 두 번이나 터진데다, 국제 정세와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생각했을 때 앞으로도 전쟁과 국지도발[31]로 인해 우리의 후손이 참화를 겪을 가능성은 결코 낮지 않다.'
이와 같은 서술들은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를 '현세의 물질적 조건'에서 찾는데, 아무리 이 문단에서 지나가는 식으로나마 '부자의 아이도 마찬가지다' 라고 하더라도, 마치 반출생주의에서 출산을 기피해야 할 이유를 "현재의 삶의 나쁘기 때문" 이라고 해석할 수 있게 만드는데, 이는 데이비드 베너타와 같은 반출생주의 논증에서는 주장되지도 않은 사항이고 오히려 그러한 반출생주의 논증을 오해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베너타 식 반출생주의 논증은 의무론적인 차원에서 '고통을 가하지 않을 의무는 있으나, 행복을 부여할 존재자를 만들 의무는 없다'는 비대칭성에서 나온 결론이며, 여기에는 태어난 자, 태어나게 한 자의 물질적 조건 문제는 전혀 무관한 것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국가에서 어떠한 사회적 문제가 없으며 국가와 사회와 부모가 태어난 아이를 향해 무한히 행복을 지원한다고 하더라도 데이비드 베너타 식의 주장에서는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나라의 국민 또한 아이를 낳지 않을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구절절히 불행한 삶의 조건을 툴툴대는 것은 반출생주의 이론과는 무관한 것이며, 반출생주의를 오해하게 만들기 때문에 전적으로 삭제해야 합니다. 제가 괜히 자칭 반출생주의자들은 삶에 대해 툴툴대기만 할 뿐... 같은 소리를 한 건 아닙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이 반출생주의(최소한, 데이비드 베너타 류의 반출생주의)를 오해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어쨌든 한국에서 반출생주의가 대중화된 원인이 맞다고 한다면야, 이 서술들을 모두 존치할 만한 이유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한국에서 반출생주의가 "대두" 되었다고 할 만한 이유는 없습니다.
법학자 이한이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를 번역하고, 소소하게 화제가 된 것을 제외하면(그마저도 이를 잠시나마 소개한 것은 주요 언론 중에서는 [1]뿐이며, 나머지는 시사인 등 한국 주요 언론이라 하기에는 작은 군소 언론들 몇 군데 뿐입니다) 이 이후로 반출생주의에 대한 격한 사회적 논의가 일어난 적도 없으며(페미니즘이 여전히 지지자에 의해서든, 페미니즘의 혐오자에 의해서든 지속적으로 불판이 지펴지고 언론 및 정치권에서 그 불꽃이 커지는 것과는 별개로) 언론과는 별개로 강고하게 반출생주의를 주장하는 대형 커뮤니티라도 있으면 모를까, 그나마 커뮤니티에 가까운 디시인사이드 반출생주의 마갤은 극히 정전갤로서 자신의 삶에 대해 툴툴대는 사람 몇 명만이 있을 뿐 반출생주의 이론을 소개하거나 사유하거나 반추하지조차도 않습니다(제가 괜히 자칭 반출생주의자들은 삶에 대해 툴툴대기만 할 뿐... 이라는 소리를 하는 게 아닙니다) 따라서, 해당 서술은 한국에서의 반출생주의 위상을 과장한 서술로서 삭제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