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종칠금

일곱
놓을
일곱
사로잡을

일곱 번 놓아주고 일곱 번 사로잡는다는 의미로, 상대방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거나 상대방이 마음속 깊이 복종하여 숙이고 들어오길 기다린다는 의미이다.

유래[편집 | 원본 편집]

정사 삼국지》와 《삼국지연의》에 모두 등장하는 고사로, 제갈량유비 사후 남쪽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몸소 정예병을 이끌고 정벌에 나서 만왕 맹획을 상대로 수 차례 그를 사로잡았다가 놓아주기를 반복하면서 마침내 맹획이 마음속 깊이 감복하여 제갈량에게 진심으로 항복하였다는 내용이다.

정사[편집 | 원본 편집]

漢晉春秋曰 : 亮至南中, 所在戰捷. 聞孟獲者, 爲夷、漢所服, 募生致之. 旣得, 使觀於營陳之閒, 問曰 : 「此軍何如?」 獲對曰 : 「向者不知虛實, 故敗. 今蒙賜觀看營陳, 若祇如此, 卽定易勝耳.」 亮笑, 縱使更戰, 七縱七禽, 而亮猶遣獲. 獲止不去, 曰 : 「公, 天威也, 南人不復反矣.」 遂至滇池. 南中平, 皆卽其渠率而用之. 或以諫亮, 亮曰 : 「若留外人, 則當留兵, 兵留則無所食, 一不易也; 加夷新傷破, 父兄死喪, 留外人而無兵者, 必成禍患, 二不易也; 又夷累有廢殺之罪, 自嫌釁重, 若留外人, 終不相信, 三不易也; 今吾欲使不留兵, 不運糧, 而綱紀粗定, 夷、漢粗安故耳.」
— 촉서 제갈량전

진수가 기록한 정사 삼국지 촉서 제갈량전에 수록된 내용으로, 한진춘추의 일화가 삽입되었다. 한진춘추의 내용에 따르면 제갈량이 남중(南中) 정벌에 나서 싸우는 곳마다 이겼다. 당시 남중을 장악하고 있던 만왕 맹획에게 지역의 한족과 이민족들이 모두 복종한다는 사실을 파악한 제갈량은 전투를 치러 맹획을 사로잡은 후 촉군의 진영을 보여주면서 다음과 같이 물었다. "우리 군이 어떠하오?” 맹획이 대답했다, “이전에는 허실을 몰랐기 때문에 패했소. 지금 허락을 받고 영진을 살펴보니 다만 이 정도라면 쉽게 이기겠소.” 이에 제갈량이 웃으며 그를 풀어주고 다시 싸웠다. 이렇게 일곱번 풀어주고 일곱번 사로잡기를 반복하면서도 제갈량은 여전히 맹획을 보내주려 했다. 마침내 맹획이 떠나지 않으며 말했다, “공은 천위(天威)를 지닌 분이니, 우리 남인(南人)들은 다시 배반하지 않겠습니다.”

남중이 평정되자 촉은 점령지에 현지인을 임용했다. 이에 후사가 걱정스러워 군중의 누군가가 현지인을 임명하는 연유를 물으니 제갈량이 답하기를 “만약 외인(外人-남중 바깥의 사람, 즉 중국인)을 남겨두면 응당 군사도 남겨야 하는데, 군사를 남기면 먹을 것이 없으니 이것이 첫 번째 어려움이요. 게다가 이인(夷人)들이 이제 막 상하고 격파되어 그 부형(父兄)들이 죽었는데, 외인들이 남아 있으면서 군사가 없으면 필시 재앙과 우환이 생길 것이니 이것이 두 번째 어려움이요. 또한 이인들이 누차 폐살(廢殺)하는 죄를 지어 스스로 자신의 죄가 중함을 꺼림칙해 하는데, 만약 외인을 남겨두면 끝내 서로 믿지못할 것이니 이것이 세 번째 어려움이오. 지금 나는 군사를 남기지 않아 운량(運糧)할 필요를 없애고, 강기(綱紀-기강,법령)를 대략적으로만 정해 이인과 한인들이 대체로 편안케 하려 하오.”

연의[편집 | 원본 편집]

삼국지연의》에서는 칠종칠금의 고사에 소설적 상상력을 더해 제갈량의 남중 정벌의 핵심적인 내용으로 묘사하고 있다. 제갈량은 맹획을 상대로 농락하듯 전투를 치를때마다 그를 사로잡았고, 사로잡힌 맹획에게 진심으로 복종하는지 여부를 물어본 후, 맹획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패배를 인정하지 않자 스스럼없이 그를 풀어주었다. 주변 사람들은 이를 의아하게 생각했으나 제갈량의 참군으로 종군하던 마속만이 제갈량의 의중을 파악하였고, 제갈량과 대화를 나누면서 남만인들은 단순히 사로잡아 복종시키는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고, 결국 그들의 마음을 굴복시켜 스스로 항복하게 하여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는 장면이 나오며, 이에 제갈량은 마속을 더욱 신임[1]하게 되었다.

여담[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이후 마속이 관련된 읍참마속의 고사를 생각해보면 연의 작가 나관중의 치밀한 복선이 깔려있는 장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