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형

崔垣亨.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901년 3월 13일 경상남도 사천군 서포면 맥사리에서 출생했다. 일찍이 경성에 올라와서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재학하던 그는 4학년이던 1919년 3.1 운동이 발발하자 이에 참가했다. 이후 기미독립선언서를 간직한 채 고향인 사천으로 내려와 해인사 지방학림의 학생이던 최범술에게 전달했다. 최범술은 독립선언서를 동학들과 함께 1만여 매를 인쇄해 서부경남 일대에 배포했으며, 송지환·신영범의 집에서 태극기 수백 매를 만들어 곤양면과 서포면 등지의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1921년 일본으로 유학한 뒤 도쿄에서 노동자로 일하던 그는 1937년 한국 민족의 궐기를 호소하는 지하잡지 <민족이여 일어나라>를 동지 장재성과 함께 발간하여 국내외 동지들에게 배포했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이를 조국 독립의 호기로 여기고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고자 일본에서 귀향하려던 한 소녀를 통하여 고향 친구이며 자산가인 정재홍(鄭在洪)에게 독립운동 자금 5천원을 송금해 달라는 밀서를 보냈다. 그러나 이 일이 발각되었고, 1942년 2월 일본에서 체포된 뒤 경남 경찰서로 압송되었다. 1942년 6월 9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 1945년 2월 8일 대전형무소에서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최원형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4년 10월 21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유해를 안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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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