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인성

처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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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 정보
주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아곡리 산43번지
문화재 정보
종목 경기도 기념물 제44호
지정일 1977년 10월 13일

개요[편집 | 원본 편집]

경기도 용인시 남사면 아곡리에 있는 성으로 흙으로 성을 쌓아 올린 토성이다. 고려 당시에는 처인부곡으로 불리던 곳이었으며 2차 몽골 침략 당시 처인성 전투에서 고려의 승장 김윤후가 몽골군 총사령관 살리타이를 활로 사살한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전체적으로 사다리꼴 모양의 토성으로 조선시대 처인현 시기에도 읍치가 있던 곳으로 사용되었으며 최초 축성은 고려 시대 축성설과 백제 토성 설 등이 있었으나 발굴 조사 결과 일단 통일신라시기와 고려시대의 기와조각 등이 섞여나와 일단 통일신라시대에 축성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의 구조는 대체로 남서쪽이 높은 편이고 현재 출입구가 있는 북동방향의 성벽이 다소 낮은 형식이며, 내부에 단차를 두어 2중구조와 유사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고려 당시의 상황[편집 | 원본 편집]

이 자리는 고려시대 당시 처인부곡이 있던 특수 천민집단으로 고려 수주(水州)[1]에 속한 지역이었다. 인근에 경기도 광주에서 평택 방향으로 향하는 교통로[2]가 자리하고 있으나 처인성 자체는 주 교통로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지점이었다.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군량미를 보관하는 군창이 이 처인성에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3] 주 교통로에서는 약간 떨어져 있지만 군사적으로는 후방 보급기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자 처인부곡의 중심 처소 역할을하는 부곡사(部曲司)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2차 침공을 해 온 몽골군은 쾌속 남진하여 남경(현 서울)을 함락하고 경기도 광주산성을 공격[4]하였으나 실패하였으며, 이후 남하하여 안성을 거쳐 호남과 영남지역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진격로 주변 주민들이 피난을 와 있고 군량미가 보관되어 있는 해당하는 처인성을 공격하여 중간 보급(이라 쓰고 약탈이라 읽는다)을 하기 위해서 처인성을 공격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처인성 전투에서 총사령관인 살리타이가 전사하면서 몽골군이 철수, 몽골의 2차 침략이 끝나게 되었다.

이후 처인부곡은 처인현으로 승격하였으며, 처인현이 용구현과 통합되는 조선 초까지 일대의 읍치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타[편집 | 원본 편집]

  • 처인성은 1970년대 문화재 지정 당시 성벽 일부를 복원한 것을 제외하면 수목이 우거지고 민묘가 자리하는 등 상당히 방치되어 있었으나 2019년 용인시에서 대대적인 정비사업을 진행하여 성 주변의 수목을 정리하고 성벽과 주변 산책로 등을 정비하여 단장하였다.
  • 1999~2000년 당시 철제대모와 철모, 칼, 창과 같은 무기 등이 출토되었으며 이러한 유물들은 성이 전투와 관련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라 할 수 있다.

각주

  1. 지금의 수원, 용인, 화성 일대를 관할
  2. 현재의 45번 국도과 거의 일치
  3. 이 지명은 바로 인근의 남사면 창리라는 지명으로 남아있다
  4. 현재의 남한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