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락원

지상락원(地上樂園)은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한때 사회 목표로 삼았던 이상향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국식으로 하면 '지상낙원'이지만, 두음법칙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어의 특성상 樂이 '낙'이 아닌 '락'이 되어 지상락원이라 부른다.

설명[편집 | 원본 편집]

사실 대부분의 국가들이 '온 국민이 적은 노력만으로 배불리 먹고 좋은 옷 입고 좋은 집에서 하고자 하는 일들을 즐기며 사는 삶'을 추구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물론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가 있어서 단 한번도 이 조건에 달성은 커녕 제대로 근접한 경우는 거의 없지만[1] 이것을 목표로 삼아서 국가를 운영하여 적어도 멀어지지는 않고자 하는 것이 대부분의 국가들의 기본 방침이다.

북한도 마찬가지라서 건국 초기부터 이러한 이상향을 실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대체로 북한의 '지상락원'이라고 일컫는 것은 초대 태조 수령 김일성1962년도에 발언한 "1964년에는 모두가 기와집에서 이팝(쌀밥)에 고기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사는 부유한 생활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라고 한 발언을 기준으로 삼는다. 참고로 저 중에서 '고기국'이라는 것은 '고기로 우린 국'을 의미하는 것으로 실제 고기가 들어 있지 않아도 고기로 국물을 우리기만 했으면 고기국이라고 한다.

현황[편집 | 원본 편집]

그러나 그 발언이 지켜지는 일은 없었다.

실상은 地上落(떨어지다 락)園

결과적으로 예고했던 1964년에 저런 삶이 이루어지지는 못하였으며, 심지어 그보다 한참 뒤에도 결코 지상락원은 찾아오지 못했다. 결국엔 저 발언을 한 당사자가 1994년 심근경색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참고로 당사자가 살아 있을적엔 오히려 점점 저 기준에서 멀어져갔다.

이후 아들도 희망찬 발언을 했지만 역시나 현시창. 근접은 커녕 더 멀어져서 2011년 아들도 마찬가지로 심근경색으로 사망하면서 역시 살아서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끝마쳤으며, 이번엔 손자도 마찬가지로 인민의 삶이 나아질 것이라 발언하고 있지만 역시 요원하고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만 높아지고 있다.

될 수 없는 이유[편집 | 원본 편집]

일단 애초에 상술했듯 지상낙원이라는 개념 자체가 현실적으로는 이루기 어려운 개념인 것은 사실이다. 다만 북한이 유독 근접조차 하지 못하는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다.

1차적으로는 단순하게 최고지도자인 김씨 일가가 국가 운영을 더럽게 못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초대 지도자인 김일성은 항일 게릴라를 조직하여 활동하고 소련군 장교로 복무할 정도로 일단 리더쉽만큼은 있었지만 그 외 능력의 부재로 철저히 말아먹었고, 그 다음 지도자인 김정일은 그런 김일성 밑에서 자라서 약간은 시국을 보는 눈 정도는 있었지만 제대로 된 리더쉽을 쌓을 기회 조차 없어 아예 김일성만큼의 리더쉽조차도 없어 제대로 말아먹었다. 그 다음 지도자인 김정은은 그런 김정일 밑에서 자라서 다른 능력도 능력이지만 리더쉽이라고는 진짜 손톱만큼도 없어 더 안좋아지고 있다.

부차적으로는 사실 북한 당국이 인민들의 삶을 고의적으로 빈곤하게 유지시켜 체제에 반항할 엄두조차 못내게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B.R. 마이어스의 책 '왜 북한은 극우의 나라인가' 중에서 이러한 사실을 엿볼 수 있는데 1977년 김일성이 동독의 에리히 호네커와 만났을때 "생활수준이 높아질수록 인민들은 사상적으로 더 나태해지고 행동은 더 산만해진다"라는 발언을 했다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즉, 인민들의 배를 불리면 점차 체제에 의문을 품게 되니 배부르지 못하게 제한하여 먹고사는데 급급하게 만들어 저항할 생각 자체를 못하게 하겠다는 뜻이라 볼 수 있다.[2] 실제로 북한은 시장(북한 식으로는 '장마당')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데 이는 시장의 활성화는 곧 민간 차원에서의 경제 활동을 활성화시키며 경제 활동이 활발해지면 점차 인민의 삶이 개선되어[3]가므로 역시 배가 부르기 시작한 인민이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4] 그리고 당연히 그런 인민들은 위에서도 몇차례 지적했듯 바로 체제에 의문을 품기 쉽게 된다.[5]

그나마 인민에게 분배 가능한 자원도, 체제유지를 위해 당에 충성하는 존재인 군대에게 우선적으로 지급하는 형국이라 일반 인민에게 돌아가는 건 거의 없다. 문제는 사실 군대도 말이 좋아 우선적으로 배급을 받는거지 군대가 받는 것도 거지같긴 매한 가지여서 군대가 인근 주민들을 털어가는 도적화가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 문제.

단순 비교[편집 | 원본 편집]

상술한 김일성이 제시한 지상락원의 조건인 '기와집에서 이팝(쌀밥)에 고기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사는' 삶을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보면 안습하기 그지없다.

우선적으로 숙명의 상대 대한민국과 비교하자면 기와집은 사실 요즘은 그다지 좋은 집으로 쳐주지 않는다(...). 한국은 집이 무슨 집이냐 하는 것 보다는 수도와 전기, 가스 보급등이 제대로 되는 것을 집의 기본으로 친다. 그 외 디자인이나 크기 정도는 꽤나 부차적인 문제이다. 참고로 고시원은 비록 평수는 좁지만 수도와 전기 및 가스 공급이 원활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인터넷도 공급해준다. (여기에 돈 좀만 더 쓰면 적당한 평수의 고시원을 잡을수도 있다) 현재 북한 집들은 평양 같은 부유지역 몇 곳을 제외하면 당연히 인터넷은 커녕 식수나 가스, 전기는 크게 기대할 수 없다(...).

쌀밥은 이제는 한국에서 식사의 기본으로 자리잡은지 오래이다. 오히려 쌀의 소비량이 줄어들고 각종 밀이나 육류 제품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제발 쌀 좀 먹어달라고 캠페인을 하는 지경(...)이며, 북한에서는 쌀이 부족해 필수로 다른 곡물과 섞어 먹을 수밖에 없는 콩밥 등의 잡곡밥들이 한국에서는 웰빙식이라며 취향으로 먹는 판국이다.

고기국이라는 것도 상술했듯 북한의 고기국은 고기 없이 고기로 우린 국물만 있어도 고기국으로 치는데, 참고로 의외로 한국도 그런 고기국이라는 것을 구경하기 힘들다. 외냐하면 저런 허접한 고기국은 어디서도 취급 안하기 때문. 한국의 각종 급식 시스템에서는 '법적 의무로' 고기를 반드시 편성해야 한다. 모든 급식 시스템들은 모든 영양소를 적당량만큼 골고루 공급하는 것이 의무이며 여기엔 지방과 단백질도 포함되어 있고 지방과 단백질을 공급할 수 있는 수단은 고기이기 때문. 따라서 동네 교회에서 운영하는 노숙자 무료 급식소에서도 고기는 반드시 나온다. 만약 한국에서 북한의 고기국을 먹으라고 내주면 지나가던 거지도 거들떠도 안 볼 것이다(...). 오히려 먹는거 갖고 장난치지 말라고 한소리나 안들으면 다행

비단옷의 경우도 사실 한국에서는 비단이 부의 척도가 아니게 된지 오래 되었다. 이미 실크는 대량생산 시스템이 짜여져 있어 단가가 저렴해졌고 이제는 스판덱스다 고어택스다 하는 신소재가 더 주목을 받고 있다. 방한, 방수 소재로 만든 노스페이스 패딩이 학생들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았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다른 국가들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북미나 서유럽, 오세아니아 등은 아예 진짜 지상낙원에 상당히 근접한 상태이며, 이 외에도 많은 아시아 국가들도 북한보다는 잘 산다. 물론 찾아보면 아프리카, 남미, 중동 등 북한에 견줄만한 가난한 삶을 사는 국가들이 여럿 있긴 하지만, 이들 국가들은 대부분 지역 자체가 철저히 낙후되어 있고 정치적으로도 쿠데타와 내전이 자주 일어나는 등 상당히 불안한 지역이라는 변명거리라도 있지, 북한의 주변국가들 중 저런 제 3세계 국가들에 견줄만큼 낙후되거나 불안정한 국가가 단 하나도 없음을 고려해본다면 그냥 북한 당국이 병신이라서 못한다는 결과만 다시금 확인될 뿐이다.

기타[편집 | 원본 편집]

당연하지만 북한의 지도층은 정말 지상락원을 제대로 만끽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김씨 일가는 유달리 돋보일 정도로 살을 뒤룩뒤룩 찌우는 편인데 이는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로 일했던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일이 지도자는 풍채가 좋아야 한다며 김정은을 살찌웠다 했다고 한다.[6]

각주

  1. 굳이 찾는다면 1970-80년대 미국이 지상낙원에 가까웠다. 중산층의 평균 소득이 상당히 높았고, 소득격차가 심각하지도 않았다. 평균 1가구당 1~2대의 차를 보유했고, 나름 의료시스템도 안정화되어 있었다. 또한 나우루의 경우 자원이 고갈되기 전까지는 오직 자원빨로 일하는 법 마저 까먹을 만큼 일을 안해도 잘 먹고 잘 사는 지상낙원을 실현했다.
  2. 이는 의외로 로마 제국 시절부터 전해져내려온 대중 통제 기법(정확히는 군대)의 일환이다. 즉 사람은 너무 배가 고파도 딴 마음을 품고 반대로 너무 배가 불러도 딴 마음을 품는다는 것으로 따라서 대중을 길들이기 위해서는 적절한 채찍과 당근이 필요하다는 이념이 그것이다. 하지만 상술했듯 김씨 일가는 나라 관리하는 방법이 개판이기 때문에 그저 인민이 배가 부르지 못하게만 할 뿐 배가 고프지 않게 되는 건 제대로 조절을 못하였다. 한마디로 당근은 안주고 채찍질만 하는 격.
  3. 시장이 인간의 삶을 개선시킨다는 게 이해가 안갈텐데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옥수수 농사를 지어서 가진게 옥수수뿐인 인민과 어업을 해서 가진게 생선뿐인 인민이 있다. 원칙적으로는 이들은 각각 옥수수와 생선만 먹고 살아야 한다. 물론 한 가지만 줄창 먹으면 영양 불균형으로 건강해질 수 없다. 하지만 일정한 기준 아래 서로의 생선과 옥수수를 교환하면 좀 더 다채로운 식사가 가능해지고 이는 영양 불균형을 해소시킬 수 있다. 더불어 요리 재료의 가짓수가 더 늘어나니 좀 더 다양한 요리를 즐길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겨우 2개의 식품만 거래해도 이렇게 삶이 좋아지는데 수십, 수백가지 물품이 거래가 되기 시작하면?
  4. 아닌게 아니라 탈북자등 중에는 의외로 이런 식으로 돈 좀 만진 집안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참고로 앞서 시장을 금지하고 있는데 무슨 시장으로 돈을 벌었냐 하면 답은 간단하다. 암암리에 시장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북한 당국도 원칙적으로만 금지하는거지 실질적으로는 통제가 어려워서(일단 시장이 있으면 자기네들도 먹고 살기 좋아지니까. 그리고 일종의 '당근'으로 약간 풀어주어서 불만이 누적되지 않게 하는 효과도 있다) 아주 가끔 퍼포먼스 식으로만 규제를 할 뿐 대부분은 알아도 모르는척, 봐도 못본척 신공으로 넘겨서 시장이 유지되고 있다.
  5. 바로 이웃은 대한민국만 해도 60~ 70년대에는 군사정권 쿠데타가 일어나도 그러려니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였지만, 바로 이 군사정권이 민심을 사려고 경제를 발전시키면서 국민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자 곧바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여러 피칠갑을 거쳐 지금의 민주주의 체제를 쟁취할 수 있었다. 그나마 어느 정도는 자유를 보장해줬던 한국의 군사정권도 이렇게 됐는데 하물며 억눌리고 억눌려서 불만이 쌓일대로 쌓인 북한이 이렇게 되면?
  6. 뚱뚱한게 뭐가 좋아보이냐고 할 수 있는데 그건 요즘 오히려 너무 먹어서 살을 빼는 게 트렌드인 한국의 기준에서 그런거고(...) 모두가 다같이 못먹고 못사는 사회에서 뚱뚱하다는 것은 그만큼 잘 먹는다는 의미, 즉 먹을 것을 충분히 구할만큼 힘이 있는 존재라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론적으로도 모두가 못먹고 못사는 사회라면 적어도 뚱뚱한 사람은 밥심이 있어 못먹고 사는 빼빼마른 사람보다는 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