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문트 바우만

Zygmunt Bauman, fot. M. Oliva Soto (6144135392).jpg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1925년 ~ 2017년)은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이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925년 폴란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폴란드 침공 당시 소련으로 집을 옮겼다. 그 후, 폴란드 인민 공화국군의 정치장교로 들어가 베를린 전투등을 치르면서, 용맹의 십자가 훈장(Krzyż Walecznych)을 추서 받았다. 그리고 덤으로 소령까지 올랐는데, 이게 그 당시 육군에서 최연소(19세)로 올라온 케이스였다.

여튼, 그 후에 폴란드 망명 정부 인사들을 족치는 정보기관에서 근무[1]하면서,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사회학을 듣게 된다. 그 후 반시오니스트임에도 불구하고 군에서 불명예 제대 당하고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강사를 하다 안토니오 그람시등의 영향으로 공산주의에서 멀어지다, 폴란드 내부에 분 반유대주의로 폴란드 시민권을 잃고 영국 리드 대학교에서 교수직을 줘서 영국에 망명하게 되었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세계적인 학자 반열에 오른 것은 홀로코스트를 다룬, 어찌보면 홀로코스트를 간접적으로 당하고 반유대주의를 당한 유대인이지만, 유대인의 눈으로 보지 않은 '현대성과 홀로코스트'(Modernity and the Holocaust) 라는 책으로 인해서이다. 이 책에서 그는 홀로코스트를 한낱 나치의 일탈이 낳은 사건이 아니라, 유럽 문명의 이성과 기술합리성이 낳은 사건으로 보고 있다. 즉, 모더니즘 자체가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보고 있다. 이 책으로 그는 이탈리아 사회학회가 선정하는 아말피 상을 수상하게 되고 세계적인 학자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여튼, 현 폴란드 정부에서 폴란드 인민 공화국 시절때의 이슈들이 있지만, 문화 훈장 금장(Medal „Zasłużony Kulturze Gloria Artis”)을 수여받았다. 리드 대학교에는 당연히 연구소가 설립되었고, 덤으로 폴란드에 있는 대학으로부터도 명예 박사 학위를 받을뻔 했지만, 폴란드내의 반공산주의 + 반유대주의의 바람으로 이를 거부하게 된다.

물론, 합리성과 홀로코스트에서 다뤘다시피 홀로코스트를 모더니즘과 합리성의 산물로 보는지라,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팔아먹기를 시체팔이로 보고 있었다.

액체 근대[편집 | 원본 편집]

포스트모더니즘 후의 후기 근대성을 가리키는 말로, 기존의 고체(Solid)적인 근대성이 이제 액체(Liquid)와 같이 되어 불확실한 후기 근대성을 표현하는데, 후기 근대성을 설명하면서 지그문트 바우만이 처음 액체 근대란 말을 써서 액체 근대라고도 한다. 즉, 예전엔 고체(Solid) 같았던 사회가 액체화 되면서 사람들이 불확실성이 가득한 사회에 빠지게 되었다는 건데, 이 액체 근대는 결속 끊기, 회피, 손쉬운 도주, 절망에 찬 추격의 시대, 즉 개인이 매우 유동적인 삶에 처하게 되는 사회라고 설명하고 있다.

각주

  1. 이슈화된 후에 The Guardian와의 인터뷰에선 그냥 나이도 젊은데 멋 모르고 서류 작업만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