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민공화국

Chirho (토론 | 기여)님의 2021년 1월 23일 (토) 08:41 판 (→‎남긴 것)

朝鮮人民共和國 / 약칭 인공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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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9. 6. ~ 1945. 10. 1. 얼마나 관심도 없는지 사람들이 표에도 편입시켜주지 않았다.

선포와 각료(명목상)

패망해 본진이 털려버린 조선 총독부가 당시 여운형의 5개 제약을 승낙한 이후, 여운형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건국준비위원회가 조선인민공화국을 좌우합작의 관료로 성립하며 만들어졌다.

당시 관료는 주석 이승만, 부주석 여운형, 국무총리 허헌, 내무부장 김구, 내무부장 대리 허헌, 외무 김규식, 재무 조만식, 군사 김원봉, 경제 하필원, 농림 강기덕, 보건 이만규, 교통 홍남표, 보안 최용달, 사법 김병로, 사법대리 허헌, 문교 김성수, 선전 이관술, 체신 신익희, 체신 대리 이강국, 노동 이위상, 서기장 이강국, 법제 최익한, 기획 정백 등으로 이루어졌다.

보면 알듯이, 대부분의 권력이 좌파 세력에 중심되어 있다. 그러니까 망하지...더 심각한 것은 저 중 일부는 당사자가 하겠다고 한 적도 없었음에도 건국준비위원회측에서 멋대로 결정했다는 점이었다.

배경

해방 직후 한반도는 그야말로 무정부 상태가 되었다. 한반도를 통치하던 일본인 관료들 및 친일파들은 황급히 일본으로 나르거나 잠적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아직 상하이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이렇게 비어 있는 한반도에 남아 있던 여운형과 박헌영 등의 몇몇 독립운동가들이 한반도에 마땅한 정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설립한 건국준비위원회가 선포한 것이 바로 조선인민공화국인 것이다.

조선인민공화국의 역사는 무지하게 짧다. 게다가, 현 한반도 내 정치구조인 대한민국과 북한 양쪽으로부터 정당성 또한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 이래저래 쩌리 취급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이름을 처음 보면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이렇게...)을 이야기하는 줄로 착각할 것이다(...). 이렇게

조선인민공화국은 사실 상당히 급조한 국가였다. 각료도 여운형을 중심으로 그나마 말이 통하는 사람들을 건준위가 멋대로 정한 것이었으며(따라서 당시 한반도에 없었던 김일성 등 지금의 북한쪽 인사들은 거의 들어 있지 않았다) 개중에 건준위 자체가 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좌파 계열 인사들이 주축이 된 곳인만큼 좌파 인사들의 비중이 더 높았다.

이렇게 날림으로 건국을 한 까닭은 바로 한반도의 독립 상황과 연관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의 종결은 한민족이 스스로 이루어낸 것이 아니라 지배국인 일본이 거듭된 병크와 패전으로 자멸하여 연합국에게 항복함으로서 간접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승전국'인 소련과 미국은 자연스럽게 동북아시아를 '일본을 대신하여' 통치하려 들었다. 따라서 외세에게 좌지우지되는 한 제대로 된 독립을 쟁취할 수 없을 것이라 여긴 독립운동가들은 매우 바빠졌고 이는 여운형과 추종자들도 예외가 아니였다. 따라서 여운형과 추종자들로 이루어진 건준위는 이들이 한반도에 발을 딛기 전에 서둘러 건국을 마무리해야했다. 때문에 준비 기간은 급박할 수밖에 없었고 자연히 날림으로 건국된 것이다.

최후

한반도에 실제로 소련과 미국이 진입하자 즉시 무참하게 짓밟혔다. 소련은 소련군 휘하 조선인들 중 가장 명망이 높았던 김일성을 내세워 한반도 이북을 통치하면서 김일성의 군정이야말로 한반도 북부의 유일한 통치제도임을 공표하고 그 외 모든것들을 싸그리 무시하였고, 미국 또한 군정이 들어서면서 미군정이야말로 한반도 이남의 유일한 통치제도임을 공표하고 기존 정당이나 국가 등등을 미군정에게 '신고'하는 식으로 밑으로 들어올것을 주문했다. 조선인민공화국은 여기에 응하지 않았으나 여러 자유주의 / 민주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은 미군정에 협조하는 길을 택하였고 조선인민공화국은 이렇게 순식간에 붕괴되었다.

남긴 것

비록 짧은 역사였으나 인민공화국이 남긴 여파는 매우 컸다. 1차적으로 인민공화국의 존재로 인하여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 갈등이 빚어지는 단초를 낳았다. 건준위가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이 멋대로 각료를 정하고 정부를 구성하자 임시정부측 인사들은 여기에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고 이로인해 독립운동가들끼리 대립하는 극단적인 길을 만들어버렸다.

두번째로 미군정 또한 자신들과의 협의 없이 멋대로 국가를 선포한 인민공화국을 극도로 경계하여 결국은 임시정부 등 다른 정치세력들도 덩달아 몰매를 맞게 만드는 단초를 제공해버렸다 할 수 있다. 사실 제 3국인 미국의 입장에서 한반도는 엄연한 일본의 땅(!)으로나 여기고 있었고 따라서 일본을 자신들이 접수한 이상 역시 일본의 땅인 한반도 또한 마땅히 자신들이 통치해야 한다고 여겼기에 이러한 시도는 그들에게 있어 현지인들의 반란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인민공화국 자체는 물론 비슷한 시도를 사전에 뿌리뽑기 위해 한반도의 모든 정치세력들을 철저히 부정하는 강경한 입장으로 나오게 되었다.

결국 이로 인해 한반도 남부에 좌익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강하게 퍼지게 되었고, 기어이 공산국가였던 북한에 의한 6.25 전쟁이 터짐으로서 이후 한반도 남부, 즉 대한민국은 좌익을 법으로 철저하게 탄압하는 국가로 거듭나게 되었다. 인민공화국은 비록 그 의도는 (일부나마) 좋았지만, 여러모로 많은 이들에게 해를 안긴 불행한 국가였다 할 수 있다.

실제 인민공화국 설립과 함께 각 지역별로 인민위원회의 설치가 이루어지면서 어느 정도 치안이 안정된 지역들도 있었는데 그 중 한 곳이 바로 제주도였다. 이쪽의 경우 섬이라는 특성상 인민위원회 설치가 상당히 잘 이루어졌고, 행정력 행사도 수준 이상으로 자연스럽게 돌아가고 있었으나 미군정과의 충돌 등으로 인해 서서히 문제가 발생하고 결국 여기서 발생한 갈등이 이후 벌어지는 4.3 사건과 그 후에 발생한 예비검속 학살사건과 같은 비극이 발생하는 단초가 되고 말았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