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난의 변

정난의 변(靖難之變)은 명나라가 설립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벌어진 내전으로, 지방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중앙과 이에 반발하는 지방의 대결이다. 뛰어난 군사적 능력[1]을 가지고 있던 홍무제가 사망함에 따라 당시 연왕이던 주체는 반란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전개[편집 | 원본 편집]

원래 홍무제 주원장의 황태자는 장남이었던 주표였으나 주표는 주원장보다도 먼저 죽어버렸다. 장남이 죽고 가장 주목을 받은 인물은 몽골, 만주 등 유목민과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주체[2]였다. 그는 마황후 출신의 자식이라 정통성도 강하고 공도 많아 태자가 될 수도 있었으나 학자 유삼오가 아들이 죽으면 손자가 잇는 게 맞다고 주장해서 태자가 되지 못했다. 결국 손자인 건문제가 새롭게 황태자가 되었다.

주체는 이에 불만을 가지게 되었으나 주원장 생전에는 반란 준비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원장은 나약한 건문제를 위하여 수많은 공신을 학살했고 이는 주체의 반란 때 그를 대적할 상대가 거의 없게 만들었다. 건문제가 황제가 된 후 회시에서 장원을 한 황자징은 건문제에게 제후왕들을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귀족적 성격이 있는 지위에 있는 자들과 중앙의 힘이 강해지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기에 다른 학자들도 마찬가지로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을 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삭번 정책이 실시되었고 제태는 당시 가장 강했던 연왕 주체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황자징은 우선 다른 번왕들부터 제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태는 연왕부터 때려야 반란 등이 일어나더라도 심지어 다른 번왕들의 도움으로 제압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고 황자징은 주체에 동조할 가능성이 있는 다른 번왕들의 세력을 약화시켜야 고립된 주체를 제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황자징의 의견대로 다른 번왕들이 목표가 되었는데, 처음은 주체와 친한 주왕 주숙이었다.

이는 상당히 계획된 일이었는데, 1398년 5월에 홍무제 주원장이 죽자 6월에 황자징과 제태가 등용되었으며 주왕 주숙은 8월에 체포를 당했다. 그래서 주왕 주숙은 아무 생각도 없다가 국경 경비라는 명목으로 군대를 이끌고 나타난 이경륭에게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털렸다. 이런 식으로 민왕 주편도 주숙과 함께 서인으로 강등되었고 대왕 주계는 대동에 유폐됐으며 제왕 주부마저 감금되었다. 상왕 주백은 자신도 비슷하게 당할 것 같자 분신 자살을 했다. 연왕 주체는 어느 정도 대비를 해서 주왕 주숙의 죄를 해명하는 글을 보냈고 정신병자가 된 척을 하며 중앙 정부에 반항했다. 건문제는 그 글을 읽고 주체가 미쳐버렸다는 보고에 마음이 흔들렸으나 황자징과 제태는 연왕이 정신이 나간 지금을 기회라고 여기고 군대로 습격하라고 건문제에게 건의했다. 그러나 건문제는 망설이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황자징은 도독 송충에게 명령해 연변에 주둔한 관군을 개평에 주둔시키고 연부를 호위하는 군사 중 정예 군사를 선발해 휘하에 두게 하며, 연왕의 호위인 관동을 수도로 불러 연왕의 세력을 점차 약하게 만들었다. 또한 북평 영청의 좌위·우위 군관을 징발해 창덕과 순덕에 보냈으며, 도독 서개를 시켜 임청에서 군대를 조련하였고 경환은 산해관에서 군대를 훈련하게 해서 주체 세력권을 완전히 포위했다. 이것은 명성이 있던 학자답게 주체의 장군들도 당황했을 정도로 이론적으로 무시무시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주체는 의외로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는 단지 건문제에게 수도에 있는 자신의 아들들을 돌려보내 달라고 요구했다. 황자징은 이들을 석방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제태는 인질로 잡자고 했으나 결국 황자징의 의견대로 되었다. 그러자 주체는 간신인 황자징과 제태를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출병하여 조정에서 파견한 사귀와 장병을 죽였다. 연왕은 자신의 군대를 정난군이라 칭했는데, 난을 다스린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동시에 홍무제가 남긴 조훈[3]을 격문에 이용했다.

주체가 이끄는 정난군은 손쉽게 명 정부군들을 항복시키고 거용관과 회래마저 정복해 송충까지 죽여버렸다. 그러자 경병문이 정로대장군이 되어 30만 명을 채울 예정인 북벌군을 편성해 출격했다. 그러나 13만 명밖에 도착하지 않았을 때, 정난군의 장옥이 기습할 것을 주장했고 주체는 호타하에서 기습공격을 성공해 3만 명이나 되는 병력을 섬멸했다. 경병문은 크게 놀라 진정에서 수성전에 돌입했고 정난군은 이를 함락할 수 없어 물러났다. 그러자 명의 조정에서는 황자징이 이경륭 파견을 주장했고 제태는 이경륭은 답이 없다면서 말렸으나 황자징의 의견대로 이경륭이 정로대장군이 되어 파견되었다.

이경륭은 무려 50만 명을 받고 출병했다. 그러나 주체는 '이경륭 따위가 무슨 재주가 있단 말인가' 하고 비웃으며 오히려 이를 행운으로 여겼다. 그는 이경륭을 무시하고 요동에 있던 명의 정부군을 공격해서 격퇴했다. 이경륭은 군대를 이끌고 북평을 공격했으나 연왕의 아들 주고치가 수비했고 주체는 명의 요동군을 정리한 후 돌아왔다. 도중에 백하를 넘을 수 없는 위기가 있었으나 다행히 강이 얼어서 귀환할 수 있었다. 이경륭은 도독 진휘를 시켜 정난군의 후방을 공격하게 했는데, 주체는 군대를 나눠 이를 박살냈고 정난군이 지날 때 멀쩡하던 얼음이 깨져서 진휘가 이끌던 부대는 많은 병력이 익사하고 섬멸당했다. 이후 주체는 직접 기병대를 지휘해 정촌패에서 이경륭마저 격퇴했다. 이경륭은 후퇴 후 산동성에서 군대를 점검했으나 의외로 주체는 추격[4]하지 않고 대동을 공격했다. 정난군은 순식간에 대동을 점령했고 이경륭은 뒤늦게 구원을 왔으나 정난군은 이미 목적을 완수하고 돌아간 후였다. 심지어 이경륭의 부대는 지나친 강행군으로 얼어죽고 굶어죽은 병사들이 많았다.

정난군은 승세를 타서 명의 정부군을 완벽히 유린하고 있었으나 백구하에서는 약간 충격 반전이 일어났다. 이경륭은 계속된 패전에도 불구하고 끝없는 군대를 이용해 병력을 백구하에 집결시켰다. 이에 장옥의 제안으로 주체는 선수를 쳐서 평안이 이끌던 부대를 격파했으나 전과 달리 이경륭 부대와의 초전에서 이기지 못하고 물러났다. 그래서 이경륭 부대의 사기가 올랐다. 며칠이 지나고 양군은 다시 격돌했다. 이때 이경륭은 놀랍게도 정난군의 후군을 상대로 승세를 잡았다. 주체는 직접 기병대를 지휘해 적의 장수인 구능을 죽이는 데 성공했으나 대단한 전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부하인 구복이 적의 중군에게 밀리자 직접 부대를 이끌고 적의 측면을 공격했다. 그런데 갑자기 각성한 이경륭이 정난군의 후방을 맹렬하게 공격하면서 정난군은 포위 공격을 받았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주체부터가 말을 세 번이나 갈아타고 화살을 다 쏘았으며 칼을 들고 싸웠으나 칼까지 부러지고 말았다. 답이 없는 상황에서 주체는 갑자기 근처에 있던 제방 위로 올라가더니, 지원병이 오고있는 연기를 했고 이경륭의 부대는 잠깐 공격을 멈추었다. 그런데 진짜로 주체의 차남인 주고후가 구원병을 이끌고 나타나서 포위를 풀어버렸다. 그러나 황제군 역시 구원병이 도착해서 정난군의 대부분 군인들의 사기가 떨어졌을 대, 주체는 후퇴란 없다며 끝까지 싸우자고 주장하고 적의 배후를 공격했는데, 운이 따라서 강한 바람이 불었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 주체는 화공으로 적을 공격했다. 그러자 불과 바람에 의해 전세가 완전히 변하여 정난군은 이경륭의 부대를 완전히 학살했다. 당시 명은 불을 상징했기에 그 깃발이 기적 같은 일로 불에 타자 황제군의 충격도 엄청났다. 누군가 기지를 발휘하여 정난군은 천명을 외쳤고 이경륭의 부대는 혼이 빠진 것처럼 도주하여 수만 명이나 잃었고 10만 명이 강을 건너다가 사라졌다. 지휘관인 이경륭조차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황제로부터 받은 부월과 새서까지 내버려둔 채 덕주로 도망치고 말았다.

이경륭은 엄청난 충격을 받아 계속해서 패배를 당하고 결국은 제남까지 도망쳤다. 그러나 제남에서부터 정난군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강적들을 만나게 된다. 정난군의 기적 같은 승리에 지린 수많은 지역들이 항복했으나 홍무제에게 개인적인 은혜를 입었던 철현은 필사적으로 싸울 것을 맹세했다. 이경륭은 제남에서도 패배하여 돌아왔고 황자징은 자신의 주장을 크게 후회하며 이경륭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건문제는 그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명 정부의 분위기는 완전히 망했으나 제남성에서 철현은 계책을 내어 기습공격으로 정난군에 타격을 입혔고 뛰어난 수성 능력으로 공성 장비도 전부 불태워버렸다. 그리고 필승의 책략으로 아무리 선전해도 너무 불리한 전세를 빌미로 거짓항복을 꾸며 주체를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운이 좋게도 타이밍이 어긋나 주체는 달아날 수 있었다. 주체는 분노하여 제남성을 맹렬하게 공격했으나 아무리 공격해도 제남성이 함락되지 않았다. 결국 명의 20만 대군이 덕주를 점령하고 뒷통수를 노리자 주체는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철현은 이 일로 명의 조정에 엄청난 신뢰를 얻게 되어 병부상서로까지 승진했고 건문제는 그의 말을 무조건 들어주었다. 당시 명의 대군을 지휘해 철현을 구원한 성용 역시 역성후가 되어 평연장군에 임명되었다. 성용이 뭔가 당연한 작전으로 좀 꿀을 빤 느낌이 있었으나 의외로 이는 좋은 판단이었다.

속임수에 의해 분노에 찬 주체의 정난군은 창저우의 서개를 격파하고 항복한 병사들을 학살해 묻어버렸다. 명장이 보여주는 그 잔혹함에 수많은 명군이 벌벌 떨었으나 성용은 두려워하지 않고 동창으로 진격했다. 성용은 동창성 뒤로 진을 쳤고 주체를 직접 부대를 지휘해 성용군의 좌익을 공격했다. 그러나 성용군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주체가 방향을 돌려 중앙을 치자 고의로 진을 열어 정난군을 포위하는데 성공한다. 성용은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은 인물이었고 그들의 지략적인 공격에 주체는 병사들은 물론 아끼던 장군인 장옥마저 전사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으나 주능이 기병을 이끌고 포위망을 돌파하는데 성공하여 간신히 관도로 도망칠 수 있었다. 정난군을 대파한 성용은 정난군의 퇴로를 막게 하였고, 정난군은 성용이 없는 심주에서 그들을 물리치고 퇴각할 수 있었다. 북평으로 돌아온 후 주체와 그의 장수들이 온갖 이유로 눈물을 흘릴 정도로 상황은 급변했고 정난군은 성용과 철현에 크게 쫄아서 한동안 진군하지 못했다.

주체는 협하에서 다시 성용과 붙게 되었으나 성용은 그가 생각한 것보다 미친놈이었다. 주체는 경기병으로 성용군을 약탈하였으나 성용의 군대는 그 피해를 무시하고 정난군을 향해 진격했고 주체는 보병과 기병을 이용해 망치와 모루를 걸었으나 성용은 오히려 정난군의 장수 담연을 참살하고 정난군을 밀리게 한 후 정탐을 나온 주체까지 포위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오히려 소수 부대만 끌고 나온 것이 기회가 되었는데, 주체를 죽이지 말라는 건문제가 내린 조서 때문에 말을 타고 도망치는 연왕을 죽일 수도 없었고 딱히 공격할 다른 병력도 없어 아무 피해도 주지 못했다. 그리고 주체에겐 다시 기적이 일어났다. 2차전이 재개되자 갑자기 또 강한 바람이 불어와 성용군을 덮쳤고 기세를 탄 정난군은 마구 공격해 그의 군단을 대패시켰다. 성용은 간신히 덕주로 도망쳤으나 정난군의 장수 이원이 배와 군량을 불태워 보급이 망하게 되었다.

이처럼 정난군은 또 크게 이겼으나 형세를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아무리 패배시켜도 대다수가 탈영하지 않고 다시 집결하는, 제대로 된 60만 병력은 정말 장난이 아닌 물량이었던 것이다. 주체가 죽음의 위기까지 여럿 겪으며 3년 동안 아무리 이겨도 결과적으로 차지하게 된 지역은 북평, 보정, 영평에 불과했으며 아직도 황제군은 최소 30만에 약간의 추가 병력이 있었다. 엄청난 물량전에 정난군은 평안의 4만 부대를 이기고 철현의 부대까지 이겨도 다시 평안에 의해 패배를 당하여 위기[5]에 빠지기도 했다. 심지어 제미산에서 서달의 아들인 서휘조가 이끄는 군대가 정난군을 격파하고 이빈을 참살하기도 했다. 이제 정난군은 제대로 된 병력이 얼마 남지 않았으며 농민들을 징집하기도 하여 허세를 부리곤 있었으나 상황은 매우 심각했다. 절망적인 상황에 정난군의 많은 장수들이 건문제에게 용서를 구하거나 북방으로 돌아가자는 의견을 내었다. 하지만 주능이 한고조의 예시를 들며 거부하였고 주체도 이에 동조했다. 그리고 또 기적이 일어났다.

건문제가 정난군이 귀환하고 있다는 잘못된 정보를 받아 20만 대군을 회군시켜 버렸다. 이제 군인이라 할 수 있는 병력은 서로 5만 대 10만, 그리고 주체는 놀랍도록 도박적인 수를 둔다. 그는 남아있는 정예병을 모두 동원하여 하복과 평안의 부대를 괴멸시켜버리고 급하게 구원병을 보낸 요동군을 저지한 후 미친 속도로 남진하기 시작한다. 이에 성용은 정난군을 저지하려고 했으나 정난군의 장수 주능과 구복이 몰래 후방으로 넘어갔고 기습공격을 하여 격파하고 말았다. 철현의 부대도 입장이 역전되어 압도적 군세에 의해 패배를 당했다. 회군하던 건문제의 병력은 연왕의 미친 기동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였으며 심지어 항복한 병력도 있었다. 성용도 회군하던 군사를 모아 육합에서 싸웠으나 다시 패배하고 말았다.

건문제는 다급히 조서를 내려 회군하던 병력을 집결하고자 했고, 주체의 사촌 누나인 경성군주를 보내 영토를 나누고 주체를 인정하겠다는 제안을 했지만, 당연히 주체는 이런 시간끌기에 넘어가지 않고 계속해서 진격하였다. 황제의 마지막 희망인 성용은 포자구라는 곳에서 정난군과 교전하여 승리를 했으나 도독첨사였던 진선이 휘하의 수군을 이끌고 정난군에 투항했고, 그 결과 고자하에서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그러자 진강의 수비대장인 동준도 정난군에 항복했고 서휘조의 동생인 서증수[6]나 이경륭부터가 투항해서 정난군을 맞이하자 남경은 결국 함락되었다. 건문제는 스스로 황궁에 불을 질러 자살을 시도하였으나 죽었는지 살았는지 의문[7]이 되었다.

결과[편집 | 원본 편집]

연왕 주체는 제위에 오르고 영락제가 되었다. 그는 당연히 황자징과 제태를 처형했다. 그리고 연왕 시절부터 사대부들에게 시달린 탓인지 사대부들보다 환관들에게 의존하는 정치 구조를 만들었다. 그는 학자들을 종이에 있는 것만 볼 줄 안다고 폄하하기도 했다. 제국의 수도는 그의 본거지가 있는 북경으로 변했고 그는 유목민들, 특히 몽골에게 적극적인 공세를 가했다. 그래서 유목 세계에서 오이라트와 만주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각주

  1. 홍무제는 한고조와 함께 상대보다 기병 전력이 열세인 상대에서 중국을 통일한 매우 드문 지휘관이다. 더구나 항우는 그가 지휘하는 일부 정예기병이 너무 강한 것뿐이었고 전체적인 기병 전력은 그리 차이나지 않았으나 원나라는 전체적으로 질과 물량 모두 라이벌들을 압도하는 기병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홍무제는 좋지 않은 환경탓인지 찐따스러운 면이 있어 한고조보다 저평가를 당하지만 군공으로만 보자면 한고조보다도 나은 편이다.
  2. 그래서 그는 몽골인(주로 내몽골인)들에게도 꽤 큰 신앙(?)을 얻었는데 심지어 황금사에 의하면 전설적인 이야기로 몽골인이다. 허나 당시 반응은 명나라는 물론이고 몽골 귀족이나 조선 양반들도 일반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3. 조정에 간신이 있다면 왕들은 황제를 도와서 이를 물리치라는 내용이다.
  4. 이는 기병 전력 부족에 원인이 있을 수도 있다.
  5. 주체가 평안이 직접 찌른 창에 죽을 뻔하다 주위 기병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도망칠 정도로
  6. 그는 투항이 발각되어 처형당했다.
  7. 주체는 불에 타서 죽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