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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20일 (월) 07:02 판

틀:대한민국의 대통령

전두환 대통령

全斗煥

틀:날짜/출력 ~

  • 본 문서는 위키백과의 전두환 문서를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소개

대한민국의 제11·12대 대통령이자, 호는 일해(日海), 자는 용성(勇星)이며, 보안사령관, 중앙정보부장 서리, 국보위 상임위원장 등을 역임, 육군 대장예편 후 정계에 입문했다. 본관은 완산(完山)이다. 12·12 군사 반란을 일으킨 장본인이며, 내란범들의 수괴이다.(대법원 1997. 4. 17선고,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1]) 현재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받는 혜택이 경호를 제외한 모든 혜택이 박탈당했다.

생애

합천에서 태어났지만 5세에 대구로 이주하였다. 1955년 3월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소대장, 교육장교, 육사 구대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육사 11기 모임인 북극성회와 군내 기수별 친목모임인 하나회에 참여하였다. 그 뒤 하나회의 리더 중의 한 사람으로 성장하였다. 틀:날짜/출력 5.16 군사 쿠데타 당시 육사생도들의 쿠데타 지지 시위를 주도하였다. 1963년 국가재건최고회의 비서관과 중정 인사과장 등을 거쳐 1970년 11월부터 1년간 백마부대 29연대장으로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었다가 귀국하였다. 1973년에는 1공수특전여단장 재직 중 윤필용 사건으로 숙청될 위기를 넘기고 1976년 3월 차지철, 박종규 등의 추천으로 대통령 경호실 작전차장보 겸 보안차장보로 발탁되었다. 동시에 하나회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1979년 3월 육군본부 보안사령관으로 발탁되고, 10.26 사태 후 합동수사본부장이 되어 박정희 암살 사건을 수사하였다. 틀:날짜/출력 육군참모총장 정승화를 김재규의 협력자라는 혐의로 체포한 12·12 군사 반란을 일으켜 군부를 장악하였다.

1980년 3월에는 최규하, 신현확에게 중앙정보부장직을 요구, 그해 4월 14월 중앙정보부장 서리직을 겸직하였으며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를 발동하고 이에 항거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과격한 불법유혈진압을 주도했다. 5월 27일에는 국보위를 조직하고 상임위원장이 되어 정부의 실권을 장악했다. 1980년 9월 대한민국의 제11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1981년 3월 대한민국의 제12대 대통령에 취임하였고 87년 6월 항쟁에 따른 대통령 직선제 실시에 따라 후임 노태우 대통령 취임까지 재직하였다. 대통령직 퇴임 이후 1995년에 구속기소되었고 1심에서 내란죄 및 반란죄 수괴 혐의로 1심에서는 사형을,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1997년 12월에 사면됐다. 당시 전두환은 특가법 상 뇌물수수죄로 추징금 2200억원을 선고받았다. 2013년 9월에 추징금 완납계획을 발표했으나 아직 완납하지 않은 상태이다.

범죄행위

틀:학술 관련 정보

광주시민에 대한 내란목적살인

전두환은 광주에서 자신의 퇴진을 요구하며 "저항하는 시위대를 무장 폭도로 규정하고 그 점을 모르는 계엄군으로 하여금 광주외곽을 봉쇄하고 자위권 발동이라는 명옥으로 발포를 하게 하여 사상자가 발생하더라도 조속히 진압하기로 공모"했다.[2]

다음은 서울지방법원에서 인정한 피해자 목록이다.[3]

시간과 장소 피해자
1980. 5. 21. 22:00경 및 5. 22 01:11 경 효천역부근 강복원 (남, 20세)
1980. 5. 22. 00:40경및 09:00경 광주교도소 부근 서종덕 (남 17세), 이영진 (남. 36세), 이용충 (남. 26세)
1980. 5. 22. 08:30 경 효천역 부근 왕태경 (남. 26세)
1980. 5. 22. 17:00경 국군광주통합병원 부근 김영선 (남. 25세), 손광식 (남. 20세), 조규영 (남. 38세), 함광수 (남. 16세), 김재평 (남. 29세), 이매식 (여. 68세)
1980. 5. 23. 05:30경 및 10:00경 해남 우술재, 복평리 부근 박영청 (남. 27세), 김귀환 (남. 19세)
1980. 5. 23. 09:00경 주남마을 부근 박현숙(여. 16세), 고영자 (여, 22세), 김춘례 (여, 18세), 백대환 (남, 18세), 황호걸 (남, 27세) 그 외 성명불사
1980. 5. 24. 13:30경 효덕국민학교 부근 전재수 (남. 11세), 방광범 (남. 12세)
1980. 5. 24. 13:55경 효천역 부근 권근립 (남. 24세), 김승후 (남. 18세), 임병철 (남. 23세), 박연옥 (여, 49세)

같이 보기

각주

  1. 여담으로, 피고 측은 자신들이 '구법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법질서를 수립하는 데에 성공하였으니 피고인들의 행위를 새로운 법질서 아래에서는 처벌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이 때문에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성공한 도둑질은 처벌할 수 없다' 는 개드립이 나왔다. 물론 법원은 민주적 절차가 아닌 군사반란을 통한 새로운 법질서 수립이라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시했다.
  2. 서울지방법원, 서울지방법원 판결/1996.8.26, (광주민주화운동자료총서 49권, 2008, 53쪽)
  3. 서울지방법원, 서울지방법원 판결/1996.8.26 (광주민주화운동자료총서 49권, 2008, 249~25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