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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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全國民主勞動組合總聯盟, Korean Confederation of Trade Unions)은 대한민국노동조합 상급단체 중 하나이다. 정식명칭보다 약자인 민주노총을 더 많이 사용한다. 민주노조와는 엄연히 다른 명칭이다. 민주노조는 노동운동에서 어용노조에 대항한 민주적 노동조합을 의미하는 게 보통이기 때문에 노동조합연맹을 의미하는 민주노총과는 다르다. 단, 이 당시 민주노조의 연합체인 전노협이 민주노총의 전신이므로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창립[편집 | 원본 편집]

생산의 주역이며 사회개혁과 역사발전의 원동력인 우리들 노동자는 오늘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의 전국중앙조직,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창립을 선언한다.
— 민주노총 창립선언문

1980년대에는 많은 노동조합들이 만들어 졌으며 노동운동도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들은 어용노조에 대항하여 민주노조를 설립하거나 어용노조의 민주화를 시도하였고, 공장이나 산업체 단위로 투쟁이 전개되었다. 이는 1985년 구로공단 노동조합 연대파업에서 피크에 이르었다. 그 후 대대적인 노조탄압에 의해 1987년까지 억압되었다. 그리고 1987년 울산 노동자대투쟁으로 다시 시작된 노조운동에서 노동자들은 민주노조들의 상급단체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그리하여 당시 유일한 노동조합 상급단체였던 한국노총에 대항하여 1990년 민주노조의 전국조직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창립되었다. 1993년에는 민주노총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고 1995년 11월 11일 창립되었다. 창립당시에는 비합법단체였으나 1997년 노동관계법 개정에 따라 합법단체가 되었다.

주요 사건/활동[편집 | 원본 편집]

노동법 개악저지 총파업 투쟁[편집 | 원본 편집]

1994년 노·경총합의 실패와 OECD 가입조건으로 세계노동기구가 요구하는 노동법 개정요구 속에서 문민정부는 해고요건 완화·생리휴가폐지 등 노동유연성정책을 제도화 하려는 한편 민주노총을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문민정부의 방식은 노사정합의 보다는 민주화 이전의 밀어붙이기식으로 진행되었고 노동법 날치기 통과로 그 정점을 찍기 이르었다. 이 노동법 날치기 통과는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참가를 망설이며 정부와 협상을 할 것이냐 아니면 총파업을 할 것이냐로 혼란에 빠진 민주노총 내부문제를 한 방에 종식 시켜버렸고(...) 결국 총파업을 실시하게 되었다. 1996년 12월 26일부터 1997년 1월 17일까지 계속된 총파업은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총파업으로 연인원 350만여명이 참가하였다. 그러나 1월 18일부로 유연한 파업이란 이름으로 수요파업으로 전환하며 사실상 무력화 되었고 결국 3월에 개정 노동법이 통과되었다. 노개투 총파업은 민주노총 파업의 리즈시절으로 그 이후 파업은 노개투를 넘지 못했다.

참고로 정부와 언론에서 이후 터진 외환위기의 주범이 노동조합이라는 낙인을 찍어 버린데다 대규모의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로 실직자가 양산되면서 이후 노동운동 자체의 동력이 상당히 상실되어 버린 것도 이 원인 중 하나이다.

현대중공업노동조합 제명[편집 | 원본 편집]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주도하고 1989년투쟁, 골리앗투쟁 등 한국 노동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긴 현대중공업노동조합은 2000년대에 들어 노사분규를 멈추고 협력 하자는 분위기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이는 정규직노조의 이야기였고,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차별대우를 받고 있었다. 사내하청 노조와 정규직 노조는 대립하고 있었고 이 과정에 사내하청 노동자인 박일수씨가 분신하여 사망하였다. 민주노총은 박일수 열사 대책위를 세웠지만 현대중공업노조는 이 대책위를 탈퇴한 후 독자적인 진상규명위를 세우는 등 민주노총과 대립했으며 박일수씨를 열사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에 민주노총은 현대중공업노동조합을 반노동-반민주적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제명했으며 2004년 현대중공업노조는 민주노총을 탈퇴했다. 하지만 2013년 노조지도부가 민주노조진영으로 교체된 후 민주노총으로 복귀를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조선경기의 악화와 현대중공업 분사계획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민주노총 재가입과 금속노조 재가입이 조합원 총회에서 76.3%의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2016년 12월 22일 현대중공업노동조합은 금속노조에 가입하였다.

직선제 실시[편집 | 원본 편집]

2014년 제8회 위원장선거부터 직선제가 도입되었다. 2014년 12월 5일부터 9일까지 1차 투표가 실시되었으며 당월 12일 최종집계결과 1위 한상균(33.5%), 2위 전재환(33.3%), 3위 정용건(20.3%), 4위 허영구(9.7%)로 집계 되었다. 최초 잠정집계에서는 전재환 후보가 한상균 후보를 누르고 1위로 집계되었으나 그 때에도 결선투표에서 정용건과 허영구 후보측에 투표한 조합원들이 한상균 후보에게 표를 줄 것이고 결국 한상균 후보가 이길 것이란 예측이 많았는데 최종집계결과서도 한상균 후보가 이겼다. 결선투표에서도 한상균후보가 득표율 51.62%로 승리해 제8대 위원장은 한상균이 선출되었다. 특기할 것은 민주노총 제주지부의 투표결과인데, 다른 지역에서 참패해 득표율 한자리대의 허영구 후보가 제주지부에선 50%넘는 표를 획득했다. 이는 제주지역 노동조합에서 노동당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크기 때문으로 보인다.(허영구가 노동당원이다)

2015년 4.24 총파업투쟁[편집 | 원본 편집]

2015년 7월 총파업투쟁[편집 | 원본 편집]

민주노총은 최저임금문제, 임금피크제문제등에 의해 7월 총파업을 결의하고 한국노총과 연대투쟁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7월 총파업은 7월 15일부터 시작된다.

1차 민중총궐기[편집 | 원본 편집]

2015년 민중총궐기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한상균 위원장 수배[편집 | 원본 편집]

2015년 민주노총 노동절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한상균 위원장은 민중총궐기에 참여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내었다. 경찰은 성명발표 중인 한상균 위원장을 체포하려 시도하였으나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저지로 실패하였고, 한상균 위원장은 프레스센터에 입주한 전국언론노동조합으로 피신했다. 경찰이 철수한 후 서울광장에서 민중총궐기 개최를 선언하였으며 민중총궐기 후 조계사로 피신하였다. 조계사 측은 사전협의도 없이 들어와 당황하였으나 이후 화쟁위원회에서 12월 6일까지 조계사에 머물게 하겠다고 발표하였다. 12월 5일에 개최되는 2차 민중총궐기 때 빠져나갈 것이라는 예측이 있으나 불분명하다. 결국 며칠 간의 유예 끝에 체포되었다.

2016년 8월 31일 한상균 위원장은 옥중에서 사퇴의사를 밝혔다. 이유는 오랜 지도부 공백상황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좌파노동자회등 민주노총내 좌파계열은 사퇴를 반대하고 있다.

2016 정책대의원대회 개최[편집 | 원본 편집]

정책 대의원대회를 설립한 후 첫 정책대의원대회가 8월 22일 개최되었다. 제출된 4대 전략의제는 "전략투쟁의제", "조직강화", "조직확대", "정치전략"이었다. 정책대대는 8시간 가까이 계속되어 23일 새벽3시까지 진행되었으며 결국 앞선 세 가지 의제만이 의결되고 마지막 의제인 정치전략은 의결되지 못했다. 이유는 이 정치전략의제가 결국은 민주노총 주도의 진보정당 창당이었기 때문이다. 정책대대가 끝난후 노동당사회변혁노동자당등은 민주노총 주도 진보정당 창당시도에 대한 비판성명을 냈다.

민주노총 제9기 임원선거[편집 | 원본 편집]

민주노총 9기(2018~2020년) 임원선거 후보자로 지금까지 4개조가 후보등록을 했다고 2017년 11월 6일 민주노총이 밝혔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파와 중앙파는 후보를 내지 않았으며 지지 및 연대 후보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1번은 산별노조 지도자 비공식 회동에서 정해졌다고 한다. 2번 후보조는 한상균 전 위원장을 배출한 노동전선 소속 이동호 후보가 위원장후보로 출마했고, 나머지 후보도 노동당사회변혁노동자당 경선을 통해 선출된 좌파[1]단일 후보조이다. 2017년 12월 29일에 차기 위원장으로 김명환이 당선되었다.

2017년 민주노총 더불어민주당 당사 점거사건[편집 | 원본 편집]

2017년 12월 18일 현재 수배중인 이영주 민주노총 사무장이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를 점거하고 단식농성을 시작하였다. 민주노총은 한상균 위원장 석방, 이영주 사무총장 수배해제, 근로기준법 개악중단을 요구하였다. 12월 27일 점거를 해제하였다.

내부정파[편집 | 원본 편집]

민주노총의 3대 정파
국민파 중앙파 현장파

크게 세 정파로 나뉜다. 기원은 1998년 금속연맹[2] 자유게시판에 누군가가 익명으로 게시한 게시글로 부터 왔다고 한다.[1] 여기서 중앙파는 민주노총 중앙지도부를 지칭하여 중앙파라는 명칭이 붙었는데 이 때문에 중앙파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중앙파라고 불리기 꺼려한다고 한다. 중앙파라는 이름부터가 국민과 함께(국민파)나 현장으로부터(현장파)오는 명칭과 달리 중앙지도층에서 권력을 지향하는 인물이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라고. 또 운동권의 분류기준으로 현장파와 중앙파는 PD로 국민파는 NL로 구분하기도 한다.

가맹조직[편집 | 원본 편집]

  •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 전국공무원노동조합
  • 전국교수노동조합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 전국금속노동조합
  • 전국대학노동조합
  • 전국민간서비스노동조합연맹
  •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 전국민주환경시설일반노동조합연맹 가맹단체 글자수 끝판왕
  • 전국정보경제서비스노동조합연맹
  •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 전국여성노동조합연맹
  • 전국화학섬유노동조합연맹
  • 한국비정규직교수노동조합

인식[편집 | 원본 편집]

온라인[편집 | 원본 편집]

체감상 정치에 관심이 없는 네티즌들에겐 소식이 전해지지 않으며, 비판 진영에서 민주노총의 정당성보다 문제점을 부각시킨다. 예시로 파리바게트가 노조 와해를 지시한 사실[3]이 잘 전달되지 않아, 나중에 일어난 노조원이 아닌 운송기사를 민주노총 소속 운송기사들이 집단으로 폭행하는 사건[4]이 잘 전달되었다.[5] 이러한 현상이 빈번해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점이 있더라도 문제점만 노출되어 부정적으로 왜곡해석되는 일이 현재진행형이다.

그런데 민노총의 폭력 시위나 가입 강제이 있기에 전체적으로 인식이 좋을 수가 없다. 노조에 가입되지 않은 트레일러에게 쇠구슬을 쏘아 상해를 입히기도 했다.[6] 이렇게 같은 노동자 입장인데도 노조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내 왕따나 폭력 행사를 하기도 한다. 노조에 반감을 가진 비노조 계열 단체가 강성 노조에 맞서 맞불 집회가 벌어지기도 한다.

각주

  1. 민주노총 내 좌파를 말한다.
  2. 현재의 금속노조이다.
  3. 파리바게뜨 노조 "SPC, 돈까지 써가며 노조 와해 지시", <라이센스뉴스>
  4. 파리바게뜨 노조 "SPC, 돈까지 써가며 노조 와해 지시", <머니투데이>
  5. 다만 조중동은 당시 고용노동부가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영향을 받아 민주노총에게 편파적이라고 간주하여 불법시위로 간주하였다.
  6. 비파업 화물차에 쇠구슬 쏘고 집단폭행까지…도 넘은 화물연대 노조”, 《동아일보》, 2022년 11월 28일 작성. 2022년 12월 1일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