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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키니쿠'의 국적 논란에 항상 빠지지 않는 주장이기도 하다.</ref> 그 흔적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수많은 전통요리 및 향토요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주요 기록에 의하면 고대 일본인은 사는 지역에 따라 사슴, 멧돼지, 토끼, 곰, 닭, 꿩 등을 주요 단백질원으로 삼았다고 하며<ref>심지어 돼지를 가축으로 키우기도 했다.</ref>, 수산물은 해안가 지역의 부락에 한정되어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수산물을 내륙지방까지 부패하지 않게 수송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본 내에서 자체적으로 발전한 음식 문화도 있기는 하지만, 그 보다는 동아시아 대륙 지방의 영향을 더 크게 받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일단 일본의 야채 및 생선 보존법의 거의 대부분이 동남아시아 지역과 중국 내륙부를 통해 넘어온 것이고, 개중에는 한반도(백제)의 영향을 받은 것도 적지 않다. 이와 동시에 어떻게 조리해서 먹을 것인가에 대해 또한 대륙부([[황하 문명]])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의 수입 문화는 주로 귀족과 승려에 의해 이루어졌고, 때문에 이때부터 일본 요리가 본격적으로 상류층 '요리'와 서민 '음식'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 종교 도입과 금육정책 === 그렇지만 그 중국발 불교를 적극 수용하는 나라 시대 ~ 헤이안 시대부터 노선이 급변하는데, 대표적으로 40대 덴노인 덴무 덴노(天武天皇)가 틈나는 대로 육식금지령을 내리면서 본격적으로 육식이 탄압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당시 인도 대륙에서 들여온 중국 불교(대승불교)는 부처의 불살주의를 확대해석하여 모든 동물을 죽이지도, 먹지도 않는 것을 교리로 삼고 있었고, 마침 '발달한 중국 문화'에 심취한 덴노가 이를 그대로 받아오는 바람에 국민들에게 채식을 강요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귀족(상류층)들은 덴노의 눈에 나면 신분이 어떻게 될지도 모를 지경이었으니 거의 숨어서 육식을 해야 했을 정도였으나, 불교가 뭔지도 몰랐을 <s>우매한</s> 서민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아서 한동안은 육식문화가 계속 이어지기는 하였다. 그렇지만 헤이안 시대 때 이어서 들여온 중국발 도교의 [[음양오행설]]이 음양사(陰陽師)에 의해 일본식으로 재해석되어 서민 사회까지 휩쓸었고, 이 음양설의 영향으로 네 발로 걷는 육지동물, 그러니까 붉은 피가 흐르는 것을 먹는 것은 '부정한 것(穢れ)'을 취한다라는 믿음이 생겨나면서 육식 습관이 자취를 감추게 된다. 사찰에 의해 퍼진 종교인 만큼 뒷수습도 사실상 사찰에서 하게되는데, '''고기를 대신하여 고기 맛이 나는 채소요리''', 이른바 정진요리(精進料理, 쇼진료리)라 불리는 특유의 채식 요리계가 발달하게 되고, 고전적인 일본 요리의 얼굴 마담이 되었다. 단, 혼슈의 호쿠리쿠(북륙) 및 토호쿠(동북) 지방과 오키나와(류큐), 홋카이도(에조)는 한참이나 나중에 일본으로 합병되었기 때문에 해당하지 않으며, 별개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 논외로 한다. === 사무라이 시대 === 헤이안 시대의 강력한 금육정책은 어디까지나 덴노의 취향(...?)에 따라 결정된 것이었던 만큼, 덴노의 통치력이 약화되어 봉건사회가 된 가마쿠라 이후부터는 다시 육식 문화가 서서히 나타났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종교계와 일부 상위 계층을 중심으로 하는 금육 성향이 소멸된 것은 아니니 헤이안 이전의 육식문화와는 사뭇 다른 점이 몇몇 있었는데, 그 중 가장 큰 변화는 [[목축]]이 사라진 것이다. 고기 못 먹는 시대를 지내면서 가축 사육법 자체가 크게 쇠퇴하였고, 봉건제 자체의 특성상 잉여농산물이 곧 국력에 해당하였으니 농번기에는 농사에 온 힘을 쏟느라 목축업의 쇠퇴를 피할 수 없었다. 또한 헤이안 종말부터 에도 막부 이전까지는 각지에서 전란이 끊이질 않았던지라 흥망성쇠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음식문화를 만들어낼 정도의 잉여력도 충분치 않았고, 항시 불안한 정세 탓에 종교에 의지하는 민중들이 급증하면서 그 영향을 직격으로 받았다. 다만 겨울철에는 날씨 탓에 농사를 지을 수가 없고, 상류층인 무사들의 단련에도 도움이 되는 수렵은 암암리에 행해져, 이 시대 이후부터는 수렵고기가 주류가 된다. 고기를 얻는 방식이 바뀜에 따라 섭취하는 종류나 방식도 크게 바뀌었다. 예로 수렵으로는 거의 보기 드문 소에서 얻는 음식에 큰 변화가 생겼는데, 소고기는 굳이 말할 것도 없고, 금육령 전까지만 해도 유가공품을 전문으로 하는 기관을 두어 전국적으로 관리했는데 반해, 막부 시대부터는 유가공품이 뇌물로도 손색없는 희귀음식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반면 야생 육류인 멧돼지, 토끼, 청둥오리 등을 효율적으로 먹기 위한 음식법이 새로 개척되었고, 헤이안 때는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던 개구리나 들개, 고양이까지도 거리낌없이 식용하게 되었다. === 조닌(町人), 일본식 패스트푸드 === [[에도 막부]] 시대가 열리자 [[쇼군]]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전국 각지의 영주(다이묘)들을 강제로 일정기간 에도(도쿄)로 소환하는 법(참근교대제)을 만들었었다. 그런데 거의 허허벌판이나 다름 없었던 초기의 에도에 살기 위해선 수많은 인력을 끌어다 모을 필요가 있었고, 다이묘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때 수많은 직공들이 에도거리로 몰려들며 에도는 삽시간에 초고밀도 인구의 도시가 되었고, 그러다보니 밥을 해먹을 공간조차 마련할 수 없게 되었다. 이유인 즉, 일본의 주택은 현대인 지금조차도 비좁기로 유명한 목조(木造) 건물인데, 당장 마실 물도 모자랄 판에 만일 불이라도 났다간...<ref> '''정반대로''' [[한국]]과 [[중국]]의 경우 흙벽돌이나 벽돌 등 불연성 재료로 집을 짓는 경우가 흔하므로 불 사용이 굉장히 자유로웠으며 특유의 대륙성 기후와 결합하여 '''굉장히 뜨거운 음식을 선호하는''' 문화를 낳았다. 또한 상대적으로 일본보다 격식을 차려 먹는 것을 선호하며 길거리 음식을 천시하는 문화가 나오게 되었다.</ref> 그래서 등장한 것이 음식만 전문으로 만드는 조닌(에도거리의 직공)의 등장이었고, 즉석 포장마차인 야타이(屋台)가 차려져 사람들에게 빠르게 음식을 제공하였다. 니하치소바(메밀국수의 일종)와 니기리즈시(초밥), [[덴푸라]]([[쿠시카츠|구시카쓰]]), 가바야키(장어구이), 야키토리(닭꼬치)도 이때 등장한 음식이었고, 우동과 오니기리(주먹밥), 당고(경단)도 인기있는 음식이었다. 참고로 이 내용은 [[KBS]]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누들로드]]에서도 언급되었다. === 육식 탄압정책의 재림 === 에도 막부 5대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츠네가 동물보호령(生類憐れみの令<ref>직역하여 조금 덧붙이면 "생명류 동정심의 율령" 정도의 뜻.</ref>)을 발표한다. === 개화기를 맞이한 일본 요리 === 메이지 유신의 개방 이후에서야 먼 옛날, 조상님 덴노가 금지했던 육식을 메이지 덴노가 '일본인도 고기를 먹고 서양인처럼 강해지자'라는 발언과 함께 해제한 것도 모자라,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육식을 하면서 널리 광고하게 되었다. 동시에 외국(구미권)으로 유학보낸 학자들에 의해 각종 레시피가 일본으로 유입되었고, 일본 특유의 토착화를 통해 [[스키야키]](소고기 버전)와 같은 '''네 발 짐승의 육류 요리'''가 등장했다. 또한 지금은 일본의 일상식이 되어버린 [[오무라이스]], [[카레라이스]], [[해시라이스]], [[돈가스]], [[고로케]]도 메이지 시대부터 발달한 것이다. 이들은 일본이 근대에 들어서 독자적으로 유럽식 요리를 받아들이면서 발달시킨 요리로, 전세계적으로는 일식(和食)으로 분류되나, 정작 일본 내에서는 양식(洋食)이라 부르고 있고, 한국에서는 반일감정상 인정하지 않고 '경양식(輕洋食)'이라는 독특한 이름으로 분류하려는 경향이 있었다가 문화 개방 이후부터는 일식으로 분류하게 되었다. 하지만 천 년 가까이 오랜기간 지속된 금육생활에 사람들은 이미 (네 발 짐승)고기가 혐오식품이 된 지 오래였다. 그래서 처음 메이지 덴노가 육식을 선보였을때 이에 반발하여 '일본을 더럽힌다'는 이유로 암살을 시도하는 세력이 등장했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일본인은 '천하의 덴노가 먹자고 하는데!', 라며 돈가스나 쇠고기 스키야키<ref>원래 스키야키는 고래고기나 생선을 쓰는 음식이었다. 지금은 소고기를 쓰는걸 당연하게 여기지만.</ref>를 사실상 개화기의 상징으로 여기고, 도리어 이것들을 먹지 못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비문명인이라 손가락질 할 정도로 유행하게 되었다. 더불어 구미인들이 즐겨먹는다는 '[[빵]]'의 위대함(?)<ref>당시 일본인들의 소울푸드였던 쌀밥만 먹으면 [[비타민 B]]의 부족으로 각기병에 걸리기 쉬운데, 밀가루에는 비타민 B가 들어있어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그걸 몰랐을 일본인들이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는 상상한 대로. 개화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소설에는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간간히 나온다.</ref>에 놀란 사람들이 오븐도, [[효모]]도 없는 무(無)의 조건에서 빵을 만들어내려는 고된 수행(...)을 겪기도 했다. 단팥빵을 비롯한 일본의 신묘하고 기묘한 빵들이 이 시대에 만들어졌다. 양식 뿐 아니라 중국 요리와 한식을 자기식으로 어레인지한 예도 많다. [[짬뽕]], [[라멘]], [[야키니쿠]], 호루몬(소나 돼지의 내장요리) 등. 예의 짬뽕과 [[라면]]의 경우 일본 버전을 다시 한국에서 받아들여 '''또 어레인지했으니''', 중국식도 일본식도 아닌 뭔가 애매모호한 정체성의 요리가 된 셈이다. 본토의 것과 달라지게 된 건 말할 나위도 없고 이젠 역수출도 하니…. === 일식의 세계화 === [[1964 도쿄 올림픽]] 때 [[회]] 때문에 날생선이나 먹는 나라라고 까인 적이 있다. 실은 [[태평양 전쟁]](1940년대)때부터 '날 생선이나 먹는 잽(japs)'이라며 까여왔긴 했지만, 아예 세계급 이슈가 된 것은 도쿄 올림픽의 개최가 결정된 때였다. 이에 맞서 일본 정부는 전통요리 때문에 '비문명국'이라는 오명을 떠안기보다는 이미지 쇄신을 위해서 무려 '''50년에 걸쳐서''' 일본 요리의 고급화에 나서서 세계진출을 시도했다. 그 결과, 현재에 이르러서는 되레 [[스시]]를 먹지 못하면 상류층이 아니란 말이 있을 정도로 고급 요리의 대명사로, [[미슐랭 가이드]]마저 수많은 고급 일식집을 적극적으로 기재하게 되는 등의 대격변이 일어나게 된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의외로 현대 [[프랑스 요리]]에 엄청나게 많은 영향을 준게 일본요리이기도 하다. 과거 프랑스 요리(오트 퀴진)는 오랜 세월을 거치며 갈수록 화려하고 복잡한 조리법을 발달시키다 보니 요리에 지나치게 손을 많이 대서 오히려 음식맛을 해치는 지경에 까지 이르르게 된다. 1960년대 들어 이를 비판한 현대 요리사들이 프랑스 요리계를 개혁하고자 시도했는데(이를 [[누벨 퀴진]] 이라고 부른다) 이때 롤모델이 된것이 바로 일본 요리이었다. 조리에는 최대한 손을 적게 대서 재료 본연의 맛을 추구하는 일본 요리의 철학은 젊은 프랑스 요리사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고, 이들은 일본 요리의 스타일을 현대 프랑스 요리에 적극 도입한다. 그 결과 오늘날 프랑스 요리는 고전 프랑스 요리와는 상당히 다른 신선하고 담백한, 깨끗한 풍미를 발전시키게 된다. 사실, 타 아시아권 요리와 달리 [[수프]]형태의 요리가 빈약했다는 점도 서로의 특징을 받아들이기에 꽤 쉬운 점으로 작용했을수도 있다. 요즘의 외국인들, 특히 미주/유럽인들에게 일본요리는 대략 3개의 키워드로 완성된다. '''간장, (날)생선과 해초, 쌀'''. <s>아마도 초밥이 이런 이미지를 만든 것 같다.</s> 어떻게든 생선을 구해다가 간장을 써서 만들고 쌀과 함께 먹으면 일본 요리라는 듯. 그러다보니 '''간장맛이 나면 죄다 일본요리'''라 치부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 한식에서 매운맛 코드가 없어지면 일식과 헷갈려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대표적으로 김밥 vs 노리마키) === 탄수화물만 풍족한 현대인 === [[파일:Asatei Eggwiener.jpg|right|섬네일|전형적인 아침밥인 비엔나 소시지와 계란프라이 정식. 영국이나 독일식 아침식사에 미소시루와 김, 쌀밥을 퓨전한 느낌이다.]] 천 년 가까이를 채식을 하던 과거와는 달리, 현대의 일본인이 섭취하는 채소는 정말 의외로 매우 적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실제로 일본을 나름대로 잘 아는 사람들도, 일본 요리에 어떤 종류가 있나 나열해보라 하면 의외로 그 결과가 탄수화물질과 단백질에 편중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이는 비단 외국인 한정이 아니라 일본인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인데, 오죽하면 '독신 생활 하다보니 야채 먹을 기회가 없었다.'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이다. 근대 이후 홋카이도가 개척되고, 고원지대를 이용한 서구식 목축이 활성화된 이래 현대에는 오히려 한국보다 육류와 유제품 구하기가 쉬운 편이다. 동아시아에서 일찍 소득 수준이 균등해진 나라답게 1960년대부터 햄버그스테이크와 돼지고기 크림 스튜가 가정식으로 널리 보급되었고 맥도날드도 1971년에 진출했다. 1990년대 이후 장기 불황으로 인한 디플레이션은 역설적으로 동물성 식재료의 문턱을 더더욱 낮추어 주었다. 게다가 '이치닌마에(1인분)'를 중시하는 일본 사회이다보니 핵가족 및 독신가구가 늘어난 현대 사회의 특징을 그대로 타고 발달한 일본 요리 또한 [[미국 요리]]마냥 조리 및 취식의 간편함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이유로 보인다. 그렇다고 미국 사회마냥 야채를 거의 미지의 음식 취급할 정도는 아니나, 현대의 일본 요리에서 야채는 옛날처럼 주재료가 아닌 보조재료로 평가절하된 상태이고, 야채를 먹는다는게 기껏해야 채 썬 양배추를 드레싱에 버무린 것이라던가, 야채 주스(혹은 녹즙(青汁))로 마신다던가, 니모노(煮物) 혹은 텐푸라 정도의 고전 요리를 그대로 취하는 것이 고작이다. 이렇다 보니 현대에는 오히려 일본인이 한국 요리를 채소가 많은 건강식으로 생각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요약: 리브레 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로 배포됩니다(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리브레 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글이 직접 작성되었거나 호환되는 라이선스인지 확인해주세요. 리그베다 위키, 나무위키, 오리위키, 구스위키, 디시위키 및 CCL 미적용 사이트 등에서 글을 가져오실 때는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여야 하고, 만약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라는 증거가 없다면 그 문서는 불시에 삭제될 수 있습니다.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 | () [] [[]] {{}} {{{}}} · <!-- --> · [[분류:]] · [[파일:]] · [[미디어:]] · #넘겨주기 [[]] · {{ㅊ|}} · <onlyinclude></onlyinclude> · <includeonly></includeonly> · <noinclude></noinclude> · <br /> · <ref></ref> · {{각주}} · {|class="wikitable" · |- · rowspan=""| · colspan=""| · |} {{lang|}} · {{llang||}} · {{인용문|}} · {{인용문2|}} · {{유튜브|}} · {{다음팟|}} · {{니코|}} · {{토막글}} {{삭제|}} · {{특정판삭제|}}(이유를 적지 않을 경우 기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드시 이유를 적어주세요.) {{#expr:}} · {{#if:}} · {{#ifeq:}} · {{#iferror:}} · {{#ifexist:}} · {{#switch:}} · {{#time:}} · {{#timel:}} · {{#titleparts:}} __NOTOC__ · __FORCETOC__ · __TOC__ · {{PAGENAME}} · {{SITENAME}} · {{localurl:}} · {{fullurl:}} · {{ns:}} –(대시) ‘’(작은따옴표) “”(큰따옴표) ·(가운뎃점) …(말줄임표) ‽(물음느낌표) 〈〉(홑화살괄호) 《》(겹화살괄호) ± − × ÷ ≈ ≠ ∓ ≤ ≥ ∞ ¬ ¹ ² ³ ⁿ ¼ ½ ¾ § € £ ₩ ¥ ¢ † ‡ • ← → ↔ ‰ °C µ(마이크로) Å °(도) ′(분) ″(초) Α α Β β Γ γ Δ δ Ε ε Ζ ζ Η η Θ θ Ι ι Κ κ Λ λ Μ μ(뮤) Ν ν Ξ ξ Ο ο Π π Ρ ρ Σ σ ς Τ τ Υ υ Φ φ Χ χ Ψ ψ Ω ω · Ά ά Έ έ Ή ή Ί ί Ό ό Ύ ύ Ώ ώ · Ϊ ϊ Ϋ ϋ · ΐ ΰ Æ æ Đ(D with stroke) đ Ð(eth) ð ı Ł ł Ø ø Œ œ ß Þ þ · Á á Ć ć É é Í í Ĺ ĺ Ḿ ḿ Ń ń Ó ó Ŕ ŕ Ś ś Ú ú Ý ý Ź ź · À à È è Ì ì Ǹ ǹ Ò ò Ù ù · İ Ż ż ·  â Ĉ ĉ Ê ê Ĝ ĝ Ĥ ĥ Î î Ĵ ĵ Ô ô Ŝ ŝ Û û · Ä ä Ë ë Ï ï Ö ö Ü ü Ÿ ÿ · ǘ ǜ ǚ ǖ · caron/háček: Ǎ ǎ Č č Ď ď Ě ě Ǐ ǐ Ľ ľ Ň ň Ǒ ǒ Ř ř Š š Ť ť Ǔ ǔ Ž ž · breve: Ă ă Ğ ğ Ŏ ŏ Ŭ ŭ · Ā ā Ē ē Ī ī Ō ō Ū ū · à ã Ñ ñ Õ õ · Å å Ů ů · Ą ą Ę ę · Ç ç Ş ş Ţ ţ · Ő ő Ű ű · Ș ș Ț ț 이 문서는 다음의 숨은 분류 1개에 속해 있습니다: 분류:일본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