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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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예로부터 한반도와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다. 고대 일본은 백제나 신라, 고구려, 당나라의 복식 문화를 그대로 받았다. 나라시대아스카 시대의 복식을 봐도 삼국시대의 복식과 매우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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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음식은 여러 재료의 조합을 중요시하는 한국과 달리 재료 각각의 특성을 살리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 음식은 여러 악기와 여러 명이 만드는 오케스트라, 일본 음식은 독주회로 표현할 수 있다. 한국인은 마늘 냄새가 나고 일본인은 간장 냄새가 난다고 한다 .그 정도로 간장을 자주 사용한다. 한국과는 달리 거의 모든 음식에 마늘이 들어가지 않는다. 마늘이 들어가는 일본 음식은 외국에서 유래된 요리인 나베나 라멘 등이 있다.

일본에서는 밥을 먹다가 목이 마르면 녹차를 마신다. 식당에서 녹차는 공짜로 주고 '생'물 같은 건 돈을 받는다고 한다.

대표적인 발효음식으로는 낫또가 있다.

한국인 입맛에 안 맞는 음식이 꽤 있다. 양념이 너무 담백해서 심심한 느낌이다.

지방에 따라서도 다른데 동쪽은 짜게 서쪽은 싱겁게 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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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류지 중문(法隆寺 中門)
기와가 얹어져 있다.

일본의 전통건축물은 한반도, 중국의 건축 양식에 상당히 큰 영향을 받았다. 대들보[1], 공포, 기와 등의 구조는 고대 일본의 건축에도 그대로 남아있다. 몇몇 건축물은 아예 백제나 고구려 출신 도래인들이 지어주었다고 한다. 당시 건축 기술은 한반도와 중국이 매우 앞서 있었다. 중세 일본에 접어들어 국풍 문화를 강조하면서 대륙의 기와를 얹은 지붕보다 노송나무 껍질을 벗겨 올린 화풍의(일본 고유의) 지붕(히와다부키)이 더 높게 평가되었다. 그로 인해 현재 일본에서 볼 수 있는 상당한 수의 전통 건축물의 지붕들은 나무 껍질이 얹어져 있다. 대형 건축에서도 쓰였는데 이는 중국이나 한반도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구조이다. 고대 일본의 절이나 건축물은 기와가 얹어져 있는데 이즈모타이샤[2] 같은 건물을 보면 거의 다 히와다부키가 얹어져 있다. 물론 히와다부키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 뿐이지 기와가 얹어져 있는 건물들도 많이 있다.

'ㅅ'자 모양의 구조는 화반이라고 하는데 고구려 고분 벽화나 중국 고대 건축에서도 볼 수 있는 구조. 나중에 사라진다.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지기도 하고 일자형 기둥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한국은 서까래가 방사형으로 배치되어 있고(선자연) 일본은 직각으로 배치되어 있다(평연)[3]. 지붕은 또한 무거워보이지만 한국처럼 안에 진흙을 넣지 않고 나무만 있거나 텅 비어있어 생각보단 덜 무겁다. 에도시대에 이르면 당시 한국이나 중국에서의 공포는 아직도 엄청 중요한 구조인 것에 비해 일본은 공포의 역할이 축소되고 무게를 받치는 구조를 지붕에도 넣어주어 부담을 줄여준다. 겉으로 나온 공포는 역할이 축소되었다.

고대 ~ 중세 일본에서는 여전히 공포가 중요한 구조물이었다. 공포에 의존적인 한국이나 중국은 건물의 내면적을 넓히기에 상당히 불리했다. 반면 일본은 건물 내부의 면적을 넓게 만들기에 용이한 구조가 되었다. 한국과 중국은 고대의 공포 구조에 멈춘 상태였고 일본은 계속 발전하고 있었다. 일본도 중국처럼 거대한 건물의 기둥을 세우기 위해 거대한 나무를 베었다고 한다. 15세기 경에는 거목들을 모두 베어버린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큼지막한 건물을 세울 수 있었던 비결은 공포 기반 구조에서 더 나아가서 가구 구조의 발달이었다. 비록 대륙의 건축 기술의 대부분을 이어받았지만 그걸 발전시켜 더 좋게 만든 것은 일본인의 공이었다.

일본 전통 주택에서의 아쉬운 점은 온돌이 없다는 점, 겨울에 춥다는 점이다.

문화 측면에서 역대 중국에서 가장 뛰어났던 당나라와 송나라의 건축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다. 한국은 유교를 중국보다 더 잘 발전시켰고 일본은 건축기술인 것 같다. 일본에서는 붉은 단청[4]과 흰 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특히 신사 건물) 6세기 ~ 8세기 쯤의 동아시아의 건축 양식이다. 한국도 붉은 단청이었는데 고려시대 쯤에 상록하단[5](上綠下丹)으로 바뀌게 된다.

옛날 목조 주택 문화가 발달했던 일본 특성상 현대 많은 일본인은 목조 주택에서 살고 있다. 목조로 된 연립주택은 층간 소음의 문제가 나타난다.

고층 아파트는 일본에서는 맨션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과거 70년대 고층 아파트를 맨션이라고 이름 붙여 광고하는 것이 열풍이 불면서 아파트는 저가의 저층 연립 주택만을 가리키게 되었다.

언어[편집 | 원본 편집]

일본은 일본어를 사용한다. 일본어는 어느 어족에도 속하지 않는 고립어 혹은 우랄 - 알타이어족에 속한다는 설도 있다. 한국어와 상당한 공통점을 보여 한국인이 배우기 쉬운 언어에 속하지만 문자는 한자에 히라가나에 카타카나[6](+ 일본식 외래어)까지 사용한다는 점, 경어 등이 학습자를 힘들게 한다. 일본어는 또한 한국어와 계통이 같다고는 할 수 없어 쉽다고 생각하고 배우면 더 힘들다.

일본어는 한자음도 여러 개이다. 당음(唐音), 한음(漢音), 오음(吳音)에 관용음까지 있어서 복잡하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니 그냥 단어와 함께 외워야한다.

예술[편집 | 원본 편집]

정신세계[편집 | 원본 편집]

일본인의 정신세계는 와 문화, 다테마에와 혼네 이치닌마에(一人前) 등에 지배받고 있다.

와(和) 문화[편집 | 원본 편집]

일본인은 전반적으로 와 문화에 지배받고 있다. 와 문화가 뭐냐면 和(화합할 화), 여럿이 어울리는 문화이다. 한편 한국인을 지배하는 문화는 정(情)문화, 중국인은 의(義/의리)이다. 사실 이 셋은 일본인과 한국인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다. 和가 더 비중있나 情은 더 중요시하냐 그 차이이다. 때문에 일본인도 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고 어느 정도는 있지만 그 강도가 한국인에 비해서 매우 약하다.

그래서 화 문화가 뭐냐면 쉽게 말해 집단주의인데 개인이 의사가 달라도 일단 집단의 의사에 따르는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과 싸움을 최대한 피하게 하기 위해 선을 절대 넘지 않는다. 다르게 말하면 이 선을 자주 넘으면 집단에서 배제될 수도 있다. 이걸 진흙과 벽돌로 비유를 하자면 한 벽돌이 별나게 생기면 벽돌의 배열을 흐뜨려놔서 전체를 무너뜨리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다. 한편 한국인은 누가 별나든 배열이 망가지지 않는 진흙덩이에 비유할 수 있다.[7]

'和'는 쇼토쿠 태자가 창시한 것이라 전해진다.

和는 일본인의 정신세계 뿐만 아니라 일본 그 자체를 상징하기도 한다. 화복(和服), 화풍(和風)이 그 예이다.

예외[편집 | 원본 편집]

겉과 속이 다르다[편집 | 원본 편집]

일본 역사는 칼로 일으키고 칼로 멸한다로 설명이 가능하다. 배신과 반란 내전이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새로운 지배자와 그 분위기에 적응하는 능력이 발달하게 된다. 또한 겉을 금새 탈바꿈하여 속을 숨긴다.

예외[편집 | 원본 편집]

책임회피 문화[편집 | 원본 편집]

할복문화?[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후에 일본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2. 이즈모 신사
  3. 중국은 마족연. 선자연과 평연의 중간.
  4. 갈색이 섞인 색, 진홍색 등 다양하다.
  5. 현재 한국의 복원사업은 시대를 막론하고 상록하단으로 되고 있다. 붉은 단청은 흔히 알고있던 한국다움이랑 다르고 정확한 고증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거 무시하고 붉은색으로 칠한 몇몇 건축물이 있기는 하다. 붉은 단청에 흰색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1][2]
  6. 음절문자라 외우기가 벅찬데 카타카나까지 외우려면 2배나 힘들다.
  7. 하지만 사회생활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해당되는 집단에 따라 분위기가 다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