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두 판 사이의 차이

('가짜 페미니스트'라는 불분명한 개념보다는 여성우월주위자로 표현하는게 좋아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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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권리만큼 남의 권리도 소중하며, 인권은 공동선을 위해 행해져야 한다'''는 기본적인 지식을 망각하고 오직 자신의 권리만 내세우는 사례들이 굉장히 많다. 특히, 자신의 인권을 신장시킨다면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비인권적인 인권 이용이라고 한다.
'''자신의 권리만큼 남의 권리도 소중하며, 인권은 공동선을 위해 행해져야 한다'''는 기본적인 지식을 망각하고 오직 자신의 권리만 내세우는 사례들이 굉장히 많다. 특히, 자신의 인권을 신장시킨다면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비인권적인 인권 이용이라고 한다.


인권을 핑계로 자신을 변호하는 [[남성우월주의자]]와 [[쇼비니즘|가짜 페미니스트]], 자신들이 동성애자들에 의해 차별받는다고 주장하는 동성애차별주의자 등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인권을 비인권적으로 이용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권은 보편적 개념이며, 누구에게도 막론하고 평등하게 적용된다.''' 그렇기에 니 권리랑 내 권리는 같다."는 것을 절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라고밖에 판단할 수 없다.
인권을 핑계로 자신을 변호하는 [[남성우월주의자]]와 [[여성우월주의자]], 자신들이 동성애자들에 의해 차별받는다고 주장하는 동성애차별주의자 등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인권을 비인권적으로 이용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권은 보편적 개념이며, 누구에게도 막론하고 평등하게 적용된다.''' 그렇기에 니 권리랑 내 권리는 같다."는 것을 절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라고밖에 판단할 수 없다.


=== 인권 친화적 삶 ===
=== 인권 친화적 삶 ===

2016년 5월 4일 (수) 10:13 판

모든 인류 구성원의 천부의 존엄성과 동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세계자유, 정의평화의 기초이며, 인권에 대한 무시와 경멸이 인류의 양심을 격분시키는 만행을 초래하였으며, 인간이 언론신앙의 자유, 그리고 공포와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세계의 도래가 모든 사람들의 지고한 열망으로서 천명되어 왔으며, 인간이 폭정과 억압에 대항하는 마지막 수단으로서 반란을 일으키도록 강요받지 않으려면, 법에 의한 통치에 의하여 인권이 보호되어야 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국가간에 우호관계의 발전을 증진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국제연합의 모든 사람들은 그 헌장에서 기본적 인권, 인간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남녀의 동등한 권리에 대한 신념을 재확인하였으며, 보다 폭넓은 자유속에서 사회적 진보와 보다 나은 생활수준을 증진하기로 다짐하였고, 회원국들은 국제연합과 협력하여 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보편적 존중과 준수를 증진할 것을 스스로 서약하였으며, 이러한 권리와 자유에 대한 공통의 이해가 이 서약의 완전한 이행을 위하여 가장 중요하므로, 이에, 국제연합 총회는, 모든 개인과 사회 각 기관이 이 선언을 항상 유념하면서 학습 및 교육을 통하여 이러한 권리와 자유에 대한 존중을 증진하기 위하여 노력하며, 국내적 그리고 국제적인 점진적 조치를 통하여 회원국 국민들 자신과 그 관할 영토의 국민들 사이에서 이러한 권리와 자유가 보편적이고 효과적으로 인식되고 준수되도록 노력하도록 하기 위하여, 모든 사람과 국가가 성취하여야 할 공통의 기준으로서 이 세계인권선언을 선포한다.
— 세계인권선언 전문(前文)
사람이 사람답게,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하기 위한 보편적인 인간의 모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 및 지위와 자격들을 총칭하는 개념
— 국가인권위 <사회복지와 인권> 인간과 복지, 14page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 34조 1항

인권(人權, human rights)은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하기 위해서 필요한 보편적, 절대적인 권리, 지위 및 자격을 의미하는 도덕적 원칙 혹은 도덕적 규범을 말한다. 즉, 인권이란 개념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개념이며, 법권이 적용하는 지역, 민족, 국적 등의 사람마다 다른 요소에 관계없이 사람이기만 하면 누구나 적용되는 것이며, 자기 자신이 인간인 이상 절대로 변하지 않는 권리이다. 이는 절대 특정 상황에 의해 좌우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인권적으로 보았을 때 고문과 사형 및 불법 구금의 자유는 언제든, 어디서든, 어떠한 상황이든 인권적인 것이 아니다.

국제 인권단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의 로고

인권의 원칙은 국제법, 국제기구 및 지역적 기구든 상관 없이 매우 중요한 원칙 중 하나이다. 국가적이든 비국가적이든, 복지 등의 공공 정책의 가장 중요한 원칙 또한 인권이다. 아마 사회의 공공 담론들이 전부 공통의 언어를 갖고 있다면, 인권이야말로 가장 그에 적합한 공용어이며, 이는 세계 전체에 동일할 것이다. 이는 인권중심주의[1]가 법은 물론 조약과 제도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기 때문이다. 이는 국제법과 국내법을, 국제 제도와 국내 제도를 가리지 않는다.

인권의 본질과 정당성 및 인권 자체는 철학정치학에서 열띤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노예제도, 학살, 언론의 자유, 교육과 같은 수많은 분야에서 동시에 이러한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어떤 사상가는 지금보다 인권 개념이 작아져야 하며 최악의 남용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어떤 사상가는 지금보다 인권 개념이 확장되어야 현재도 부족한 인권 보장을 채울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고대에도 이러한 인권 개념은 있었으나[2], 현재 우리가 쓰는 인권 개념과 기초적 원리는 근대 서구에서 시작되었으며, 계몽주의와 함께 중세 자연법이 엮이면서 등장한 자연권 개념으로서 시작되었다. 이는 곧바로 정치적 담론으로 넘어가, 존 로크와 같은 사람들이 그의 기초를 쌓았으며, 20세기 두 차례의 전쟁을 겪고 수많은 시민 운동을 한 끝에 비로소 현재의 개념을 갖게 되었다.

개요

주권 국가에서 인권은 누군가의 일방적 권력 남용과 억압에 대항하여 인간이 요구할 수 있는 보편적 권리를 말한다. 사람이 사람다운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권리, 각 개인의 자유와 평등의 보장 등을 뜻한다. 이러한 보편적 권리들은 보통 편의를 위해서 평등권, 생존권, 생명권의 세 가지로 구분한다.[3] 이러한 규칙들은 유엔 회원 국가들의 국제법적 혹은 정치적인 결정에 따라 국제인권기구들에 의해 보장되고 효과를 발휘한다.

엄밀히 말하면 인권은 의 주요 개념이며, 법보다 위에 있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다. 인권은 법보다 상위에 있는 자연권과 도덕적 권리도 포괄함은 물론 우리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우리의 권리를 이용해 만든 것이 법이다. 때문에 수많은 국가들의 법에서는 인권을 존중하는 법을 채택하고 있다. 다시 말해 법이 인권을 억압할 경우 이는 수단과 목적이 도치된 것이다.[4]

그렇기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오해와 달리, 인권은 의무를 동반하지 않는다.[5][6] 인권은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성립되기 때문에[7] 의무와는 별개의 것이다.

인권은 어떠한 경우에도 거래되거나, 양도되거나, 박탈될 수 없는 절대적 권리이므로[8] 자신과 타인의 인권을 소중하게 여기자.

역사

인권이라는 개념의 역사는 고대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나, 현대 인권의 개념은 근대 유럽에서 탄생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르네상스를 거치며 인간주의가 대두되기 시작하였고, 17세기 유럽의 종교전쟁과 영국의 시민 운동을 거치며 자유주의 철학이 생겨났다. 이로 인해 인권은 18세기 서구 철학의 중심주의였던 계몽주의의 중심 논의 항목이 되었다. 이로 인해 기반이 깊어진 인권이란 개념은 미국 독립 혁명프랑스 혁명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되었으며, 19세기 민주주의의 발전에 도움을 주었다. 이것은 20세기 례의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이는 국제 인권 헌장으로 이어졌다. 전후, 여성흑인의 인권을 보장하라는 운동이 거세졌다. 1970년프라하의 봄1980년5. 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거치면서 인권운동은 점점 더 증가했다. 특히 기존 선진국이 아닌 개발도상국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활발했고, 이는 21세기 현재 이들 국가들의 선진화에 도움을 주었다.

고대 ~ 중세의 인권

고대 메소포타미아
우르카기나함무라비에 관련된 기록물에서는 모든 사람의 평등[9]을 논하고 있다. 특히 우르남무 법전 이나 함무라비 법전에서는 여성 인권, 남성 인권, 어린이들의 인권, 노예 인권에 대해 세분하여 서술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
고대 그리스에서는 철학이 매우 발달해 있었으며,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시행하였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생각하였고, 그 사람에는 여성남성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비슷하고, 대부분의 고대 국가에서의 남성과 여성의 대우 차이와도 유사하다.
불교[10][11][12]
인간의 본질이나 본성을 불교에서는 불성(佛性)이라고 보며, 이는 누구나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뜻한다. 부처는 다르마를 본 자이며, 이 다르마란 연기법 및 그 징표로서의 무상 및 무아와 공을 깨우친다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인간은 이성적 분별력이 있기 때문에 존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은 무분별과 무집착이라는 공성의 지혜를 깨칠 수 있는 존재기에 존엄한 것이며, 연기라는 상호의존적 연결고리 속에는 모든 중생이 다 포함되므로, 인간을 포함해 모든 생명이 다 존엄하다고 본다. 즉, 인권의 상위 개념으로서, 일체 생명의 존엄과 해방이라는 더 고차원의 시각으로 다루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중생들의 권리란, 불살생계(不殺生戒), 불투도계(不偸盜戒), 불망어계(不妄語戒), 불음주계(不飮酒戒)로 서술된다. 이는 각각 생명권, 재산권, 진실추구권, 생존권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해석하게 되면 불교는 현대 인권 사상에 매우 가까운 사상으로 판단될 수 있다.
고대 중국의 인본사상, 유교
공자논어에서는 인을 지향하고 예에 정진하는 사람이 군자라고 하였다. 군자로서 덕을 생각함은 현대 인권에서의 보편적 인권 개념과 비슷하며, 특히 이것이 지덕, 지선의 뜻을 갖고 있는 점을 보면 이는 인도주의라고 볼 수 있다. 이는 현대 인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인본주의 혹은 인도주의는 약 2000년간 중국의 주요 통치 원리였으며, 약 1000년 미만의 가간 동안 한반도의 통치원리였으며, 일본의 통치원리기도 하였다. 이는 현재 유교라는 말로 정의되어 있기도 하다.
맹자맹자의 고자편과 진심편에서는 왕도와 백성에 대해 나오는데, 백성이 나라에서 가장 귀하다고 여긴다. 만장편에서는 인도를 행하고, 민의가 천의라는 사상을 설파하였다. 즉, "누구나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마그나카르타
비록 이것이 다른 이유로 작성되긴 하였으나,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36, 38번, 39번, 40번 항목은 현대 인권과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어떤 자유민이라도 동등한 신분을 가진 자에 의한 합법적 재판 혹은 국법에 의하지 않고서는 체포, 감금, 추방, 재산의 몰수 또는 어떠한 방식의 고통도 받지 않는다. [14]
— Clause XXIX of the Magna Carta(마그나카르타 제 29조[13])

현대 인권 운동

현대 인권 운동은 사실상 인권이란 개념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실행되고 이어진다. 이 때문에, 인권이라는 개념이 어떤 집단 하에선 다르게 여겨질 수도 있었다. 이러한 주장(혹은 개념의 정의)의 증명을 위해 수많은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원리들이 이용되었다. 일례로, 과거 공산권에서 사용되던 인권 개념과 현재 인권으로 받아들여지는 개념은 다른 점이 있다.

16세기

15세기부터 시작된 에스파냐아메리카 정복은 식민지에서의 피지배층, 원주민들에 대한 인권적인 논쟁을 촉발했다. 특히 카톨릭에서 이런 논쟁에 힘을 썼으며, 아동 노동, 여성인권, 임금에 대한 많은 결과물을 얻어냈다.

17~ 18세기

존 로크를 비롯한 많은 유럽 철학가들이 자연법 이론을 들고 나와 모든 사람들이 본래는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주장했다. 로크는 인간이 모두 신의 산물이기 때문에 모두 평등하다고 보았지만[15], 이것은 추후 현대 인권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특히, 이 이론은 아메리카의 영국 식민지에서 일어난 반란에서 실정법을 거부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큰 근거로 쓰였다. 이는 현재에도 국가의 인권적 탄압에 대해 개인이 맞서 싸울 때에 사용된다. 물론 완전히 로크적인 자연법 전개는 아니나, 이러한 피탄압자에 대한 자연법 논거를 현재 그 후신인 미국연방 대법원에서는 적법절차원리로 인정해 주고 있다. 현대 인권에서, 이는 자연권 혹은 천부인권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같은 시기, 영국에서는 권리 장전1689년 만들어졌다.

1700년대, 장 자크 루소신 엘로이즈, 에밀. 혹은 사뮤엘 리차드슨파멜라 등의 소설은 대중의 인권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그들이 자신의 권리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16][17] 이는 곧 두 개의 큰 혁명과도 이어졌는데, 바로 미국 독립 혁명프랑스 혁명이다.

19세기~ 제1차 세계대전

이 시기의 초반은 토마스 페인이나 존 스튜어트 밀 혹은 헤겔과 같은 철학가들이 보편성에 대한 논쟁을 확장시킨 시기였다. 마하트마 간디인도의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운동을 이끌었으며, 많은 곳에서 인권운동이 일어났다. 그와 동일하게 정치적인 움직임도 일어났으며,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들 또한 그들의 권리를 찾는 운동을 하게 되었다. 19세기 말 부터 시작된 여성인권 운동은 곧 페미니즘 운동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적십자1864년 제네바 협정에서 만들어진 국제 인도주의법에 의해 생겼다.

대전기

첫 번째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국제 연맹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1919년 만들어졌다. 이 연맹의 목적은 전쟁을 방지하고, 협상과 외교를 통해 국가간의 분쟁을 조절하여 국민의 삶을 개선하고 국제적으로 복지를 개선하여 최종적으로는 인권적인 대우를 더 확산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 당시 국제 연맹의 주도국이 대부분 제국주의 국가였던 탓에, 인권적인 사항에 대해 제대로 실천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여기서 언급된 인권 사항은 두 번째 세계 대전이 종전된 1945년 얄타 회담에 의해 국제 연합이 만들진 다음에도 중시되었다. 이 당시 지속된 인권적인 사항의 중시는 현재 국제노동기구국제 인권법과 같은 많은 것들에 의해 중시되고 있다.

냉전

1946년의 인권장전, 1948년 세계 인권 선언과 1966년 국제인권규약을 시작으로 인권에 대한 속성이 정의되고, 인권이라는 성질이 실제 적용될 수 있도록 명문화되었다. 68혁명을 비롯해 많은 운동의 결과로서 비로소 여성, 학생, 어린이, 이주민 등의 소수자들이 비로소 인권의 주체로 부각되었다. 비록 68혁명 자체는 실패했다고 평가되나, 이후에 이어지는 수많은 민주주의 혁명의 기초가 되었다. 60년대에 들어서 흑인 인권 운동은 점점 거세지고 있었고, 이는 맬컴 엑스마틴 루터 킹으로 대표되었다. [18] 냉전이 절정에 다다르던 1987년, 한국에서는 대통령 직선제를 주 골자로 한 6월 항쟁6월 10일부터 일어났다.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동아시아와 동유럽을 가리지 않고 민주화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제네바 협약
이는 인도주의의 국제법적 기초가 되는 조약으로서, 이 시작은 1864년 적십자의 설립자인 앙리 뒤낭의 '전장에 있는 부상병의 상태개선을 위한 조약'에서 시작한다. 즉, 이는 본디 장 자크 루소사회계약론에서 밝힌 전쟁과 그 대상에 대한 관계의 연장선상에 있는, 군인에 대한 인권, 인도주의를 말해주는 조약이었다. 이 의정서는 현
  • 제 1차 제네바 협약 :이는 전장에서의 군대 부상자의 상태의 개선에 대한 협약으로서, 1906년과 1929년 및 1949년 최종 개정되었다.
  • 제 2차 제네바 협약 :이는 바다 전장에서의 군대 부상자와 난파자의 상태 개선에 대한 협약으로서, 1차 협약을 1906해전으로 확장하여 헤이그 조약의 10번째 항으로 추가되었으며, 이 역시 1949년 개정되었다.
  • 제 3차 제네바 협약 :이는 전쟁 포로에 대한 협약으로서, 1929년 채택되어 1949년 개정되었다.
  • 제 4차 제네바 협약 :이는 전시 민간인의 보호에 대한 협약으로서, 1949년 헤이그 협약의 제 4항을 개선해 채택하였다.
공산주의(소비에트 연방)의 인권 개념
세계 인권 선언에서 정의되는 인권의 개념과는 살짝 다른 개념을 갖고 있는데, 이는 현대 인권 개념에서 각각의 개인이 인권의 주체라는 개념을 갖고 있는데 반해,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공산국가가 인권의 주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출발하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법은 정치의 힘이며 법원은 정부의 기관으로 간주하였다. 이러한 조건 하에서 추가된 사법부의 권력은 대체로 NKVD와 같은 비밀 경찰들에게 주어졌다. 또한 이러한 개념을 통해, 공산주의 체제 서구식 법규, 시민 자유, 법의 보호 및 재산의 보장 같은 것을 "부르주아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폐지하게 되었다. [19]
윤리철학의 영향
1971년 존 롤스정의론이 발표되고 정의론정치윤리는 물론 인권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탈냉전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많은 공산주의 국가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특히 유고슬라비아소련의 붕괴로 인한 후폭풍이 컸고, 이는 발칸 반도에서의 대학살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유고슬라비아 전쟁에서의 수많은 학살이 일어났으며, 이는 큰 논쟁이 되어 아직까지도 그 여파가 남아 있다. 한국을 비롯해 이 시기가 시작될 무렵 민주화를 이루기 시작한 수많은 국가에서 독재 시절의 재평가가 이루어지기 시작했으며, 이에 따라 과거에 저질러진 반인권적인 행위에 대한 성찰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탈냉전기에는 국가에 의한 대규모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 국제사회가 개입해야 한다는 인도적 개입보호 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 R2P) 개념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현재

상기하였듯이 현재는 다수의 국가들이 국내법으로 인권을 보장하고 있고, 또한 국제법적으로도 국제인권법이라는 규범을 통해 인권을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 인권이 잘 보장되는 나라는 몇 없다는 것이 함정. 아직도 노력해야 한다.

인권과 권리

인권은 인간답게 살기 위한 권리이다.
인권이란, 사회적 약자가 사람답게 살기 위한 권리이지 사회적 강자가 자신의 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필요한 권리가 아니다. 공동의 이익, 공동선을 위하는 권리가 바로 인권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업자가 아무 이유 없이 부당한 대우를 했을 때의 노동자의 저항은 바로 인권적인 저항이 되지만, 사업자의 저항은 그저 자신의 사적 권리의 표출일 뿐이다.
인권은 모든 인간의 정치적 권리이다.
국가와 강자의 폭압과 강제는 물론 헌법에 보장된 모든 기본적 인권의 침해나 유린에 우리는 모두 당당히 항거하고 자유와 인권의 보장을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다. 인간은 존엄하고 존귀하며, 이는 맨 위에 나와 있다시피 헌법에 명시된 권리이다. 누군가 그 권리를 정당한 이유 없이 침해한다면 반드시 그 책임을 지우고 합당한 배상을 받을 수 있다.
인권은 인간답게 살 모든 권리이다.
법 이전의 자연권과 도덕적 권리를 모두 포괄한, 인권이란 우리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모든 권리를 뜻한다. 여기서 인권은 단순한 사적 이익과 같은 권익적 권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공익적인 권리를 뜻한다. 즉, 권리와 인간은 서로를 포함하고 있지만 서로가 완전히 같지 않다. 다시 말해, 사익추구는 인권 행사가 아니라 단순히 사익 추구일 뿐이다.

평등권

말 그대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피부색에 상관없이, 남녀노소를 건너 뛰고 모두가. 이 문서를 보는 당신이, 이 문서를 쓴 내가 모두 같은 권리를 갖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성적 지향, 성 정체성, 보수, 진보, 직업, 성별, 국적, 신체조건에 상관없이. 학생의 권리와 선생의 권리도 동등하다.

대한민국의 중고등학생이라면 가장 많이 겪는 인권 침해가 아마 두발 규제를 비롯한 학교의 교칙일 것이다. 실제로 많은 학교의 교육방침은 인권에 정반하는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다.

다만, 이것은 권리의 평등을 의미한다. 즉, 어떤 결과를 얻어내는 데에 있어서 그 기회는 평등하나, 그것이 갖고 오는 결과는 평등한 기회를 잘 활용한 당신의 합당한 몫이 되어, 남과 차별되게 된다. 물론 과도한 결과의 불평등 역시 조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결과의 불평등이 과도하지 않고 공동의 이익, 공동의 선에 위반하지 않는 한도에서 인권을 위반하지 않는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평등과 불평등의 척도에 대한 부분은 추상개념인 인권을 떠나서 구체적인 이념에 좌우되는 부분이 크다.

물론, 이러한 공동의 선에 반하는 결과로 인해 절대적인 평등을 제도로서 쓰는 사례도 있다. 바로 선거제도에서의 1인 1표제를 이 예시로 들 수 있는데, 1인 다표를 갖게 된다면 공동선에 반하기에, 애초에 1인 다표라는 것 자체가 각 계층의 기회를 평등하게 주지 않는 셈과 다를 바 없으므로 절대적인 평등인 1인 1표를 제도로서 쓴다.

때로는 평등하지 않게 보이는 제도가 인권적인 이유로 정당화되기도 한다. 이는 평등권 자체가 인권을 해하는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이며, 이는 법 자체의 목적인 보호란 측면에서 생기는 모순이다. 특히 형법이나 규제행정법과 같은 법들은 인권과 긴장관계에 있기 쉽다. 몇몇 인권적 개념에 정반하는 방향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20]

생존권(사회권)

사람이 사람답게 살 권리이다. 즉, 누구든지 사람으로서 존엄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권리를 이야기한다. 다만, 이를 행하기 위해서는 가장 큰 힘을 갖고 있는 국가의 힘이 필요하다. 실제로 기초생활수급 및 국민건강보험과 같은 제도들은 이러한 것들을 위한 제도이다. 이것을 이제 전 세계로 적용하게 되면, 아프리카 등지에 있는 기아들을 위한 운동 또한 이러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생존권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평등권과도 연계되는데, 돈이 없으면 기회가 제한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평등한 기회는 자본 없이는 주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빈민들의 기회를 일반인과 똑같이 만들기 위해 복지제도가 필요하다.

생명권

모든 사람은 생명, 자유 및 신체의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 세계인권선언 제 3조

우리의 생명을 존중받을 권리이다. 모든 인간의 생명은 존중되어야 한다. 사실 이는 인권보장의 대전제이며, 이 보장 없이는 모든 보장은 헛것이 될 수밖에 없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살아있지 않은 인간에게 존엄성을 부여한다고 해서 그것을 행사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생명을 해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이 생명권을 어기는 사례들이다.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짓 대부분이 이 생명권을 어기는 행위이다.

생명권은 대체로 사법살인[21], 안전불감증, 폭행, 살인, 체벌 등의 행위를 통해 어겨진다. 하지만, 이는 안정된 사회일 때 벌어지는 일들이다. 안정되지 않은 사회에서는 더 많은 일이 대량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는 학살과 같은 단어로 대표되듯이 다량으로 많은 이들에게서 생명권을 훼손시키는 방향으로 일어나고 있다.

기본권인권의 차이

인권은 분명 법의 기본 원리이고, 방송에 매일같이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이다. 근데 이러한 인권침해를 정면으로 다루는 헌재 결정문에는 '인권'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헌법학상에서는 동일한 문맥에서 인권 대신 기본권이란 용어를 쓰기 때문이다. 인권은 법학뿐만 아니라 철학 사회학에서도 널리 이야기되는 주제이지만, 반면 기본권은 천부인권사상이 한 국가의 실정헌법체계에 편입되어 헌법적 가치를 가질 때 나오는 주제이기에, 국민으로서의 자유와 권리를 포괄하는 용어로서 주로 법 영역에서 쓰인다.

사실, 본질적으로는 둘이 같은 말이고, 같은 개념이며, 같은 소리를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위의 역사 항목에서도 다루었지만, 이러한 기본적 권리라는 것에 대해서 접근하기 시작한 것이 인권의 철학적 접근의 시작은 자연법론과 사회계약론에서 비롯된다. 여기서, 자연법론에 따를 때 인간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부여된 권리를 마땅히 누린다고 보며, 이러한 천부인권사상은 근대국가 형성과 더불어 각국 헌법에 구현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철학적 사상을 담은 운동들이 근대국가 형성을 위해 나오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운동들이 바로 바로 1776년의 미국 버지니아 인권선언과 1789년 일어난 프랑스 혁명이기 때문이다. 혁명기에 프랑스에서 채택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은 이러한 자연법사상을 실정법적으로 말하고 있다

국민 의회를 구성하고 있는 프랑스 인민의 대표자들은 인권에 관한 무지·망각 또는 멸시가 오로지 공공의 불행과 정부 부패의 모든 원인이라는 것에 유의하면서, 하나의 엄숙한 선언을 통하여 인간에게 자연적이고 불가양이며, 신성한 제 권리를 밝히려 결의하거니와, 그 의도하는 바는, 사회체의 모든 구성원이 항시 이 선언에 준하여 부단히 그들의 권리와 의무를 상기할 수 있도록 하며, 입법권과 행정권의 제 행위가 수시로 모든 정치제도의 목적과의 비교에서 보다 존중되게 하기 위하여, 시민의 요구가 차후 단순하고 명확한 제 원리에 기초를 둔 것으로서, 언제나 헌법의 유지와 모두의 행복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 의회는 지고의 존재 앞에 그 비호 아래 다음과 같은 인간과 시민의 제 권리를 승인하고 선언한다.[22]
— Déclaration des Droits de l’Homme et du Citoyen, 전문

인간은 권리에 있어서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나 생존한다. 사회적 차별은 공동 이익을 근거로 해서만 있을 수 있다.

[23]
— Déclaration des Droits de l’Homme et du Citoyen, Article premier.

여기서 이제 기본권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 개념 자체는 사실 독일의 바이마르헌법과 기본법에서 등장하게 된 개념이다. 이는 이러한 인권을 국민에게 적용시키기 위해 기본법을 제정하면서 나온 정의인데, "자연권사상에 바탕을 둔 천부인권론에 기초해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일련의 자유와 권리에 관한 규범적 이해의 체계"라는 정의이다. 이제, 이를 통해서 우리는 법에서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를 동시에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의 권리인 인권과 인간으로서의 시민의 권리인 기본권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인권은 자연법상의 권리도 포괄하는 개념이고 기본권은 국민의 실정법상 권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심하게 구별할 필요는 없다. 다시 보면, 기본권이란 인권+국민의 권리이다. 양자는 서로 함수관계란 이야기이다. 따라서, 이 둘은 문맥상 차이는 거의 없다. 헌재 결정문과 같은 글에서 기본권이란 단어가 등장하는 글귀를 인권으로 치환하여 읽을 수 있다. 마치 물리학에서 SI 단위계CGS 단위계의 차이[24]와 같으므로, 내용상의 차이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25] 그리고, 애초에 다음과 같은 헌법 조문으로 우리는 인권과 기본권에 설사 차이가 있다 한들, 혹은 기본권이란 개념이 법적으로 쓰인다 한들 인권 개념이 무시당하지 않는다는것을 알 수 있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 대한민국 헌법 제37조 제1항

인권 논쟁과 인권적 접근

인권의 적용과 그 과정에 있어서 인권이란 개념은 많은 논의 끝에 적용되었고, 아직도 많은 논의를 거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남녀차별이나 종교와 인권의 양립, 노동인권 등의 측면에서 전 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노동권

노동권을 풀어 쓰게 되면, 노동자의 권리를 말하는 것이다. 보통, 노동자를 근로자로 풀어 쓰게 되며[26], 그 뜻은 노동의 댓가를 받기 위해 노동을 하는 사람들을 뜻한다다. 즉, 노동자도 사람이며, 노동자라고 해서 권리의 침해[27]를 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항상 강자의 힘에 의해 제대로 누리기 힘든 약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자본가나 국가를 상대로 투쟁하여 이익과 권리를 향상시켜왔다. 이를 노동운동이라고 하며, 노동운동은 대한민국 헌법 33조에 있는 노동자의 기본 세 가지 권리을 이용하여 이루어진다.

단결권
단결권이란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결성해 활동할 수 있는 권리이다. 한국에서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이 가장 유명한 운동 중 하나이며, 주로 이 시기에 노동자의 권익을 주장하는 민주노조가 많이 만들어졌다. 노동자가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기본 노동시간인 8시간(주 40시간)을 넘는 노동에 대해 임금을 주는 시간외 수당 제도가 확립된 것도 이러한 운동의 결과이다. 핍박받던 통칭 공순이, 여성 노동자들도 투쟁함으로서 처지를 바꾸어갔다.
단체교섭권
단체교섭권이란 노동자와 자본가가 교섭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이 교섭 내용은 문서로 남겨지는데, 이를 단체협약(노동자과 자본가 사이의 약속)이라고 한다.
단체행동권
노동자가 권익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파업, 태업과 같은 것을 통해 자본가와 싸울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보통, 귀족노조라던가 하는 개념을 들어 노동조합은 거의 악의 축 급으로 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노동자의 삶과 그 처우를 개선하는데 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러한 일 한 사람이 더 못사는 모순을 공격한 사람 중 칼 맑스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노동운동에는 어김없이 나라 망치는 빨갱이XX들 같은 수식어가 붙기 마련이다.[28]

범죄자의 인권

타인의 인권을 유린한 범죄자의 인권 또한 존중되어야 한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고통 수준 혹은 그보다 더한 처벌을 받지 않기에 피해자는 더 피해를 받는다는 논쟁이 자주 회자되며, 인권은 가해자를 위한 불평등한 존재라는 냉소적인 말도 있다. 하지만, 이는 위에서 말한 인권의 개념을 잘못 이해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권은 사적 권리가 아니다. 또한 보복권도 아니다. 인권은 또한 수량적인 것도 아니다. 즉, 피해자가 받은 피해를 가해자에게 가한다 하여 피해자의 인권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며, 충족되지도 않는다. 복수의 권리는 사적 권리일 뿐 공동선을 위한 권리가 아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사회적으로 적대적인 평가를 받아 죽는 게 낫다고 다수에 의해 평가된다고 한들, 그 사람 또한 인간이기에 인간으로서 살 권리가 있다. 인권은 누군가에게는 주고 누군가에게는 주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통 일벌백계를 범죄 처벌의 원칙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나, 안타깝게도 그것만큼 멍청한 소리가 없다. 가해자라고 하여 그렇지 않은 사람과 차등을 두어 대우한다면 그것은 더 큰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전과를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29] 저지른 죄에 대한 처벌로서 동등한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 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켜 더 조심하게 만들 수도 있다. 범죄는 일어나는 것보다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범죄자들은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다. 성범죄를 저지르고 전자발찌를 착용한 사람들 중에서도 그런 범죄를 다시는 저지르지 않고 살아가는 부류[30]가 있으며, 이것은 범죄의 형태를 가리지 않고 나타날 수 있다. 1년에 잡히는 범죄자의 수는 연 평균 200만 명이다. [31] 이 인원 통째로 차등을 두어 관리할 수는 없다. 200만 명은 대한민국의 총 인구인 5천 백만명[32]의 약 4%나 된다! 범죄는 인간이 살아가는 이상 끊임없이 일어나 왔으며, 유토피아가 오지 않는 이상 계속 나올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 가게 된다면 나중에는 오히려 범죄자인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이고, 재범률도 높아질 것이며, 점점 살아남기 힘들어져 더 범죄율은 높아질 것이고... [33]의 악순환을 찍게 된다.

때문에,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일단 범죄자란 이유로 무조건 금하는 것이 아니라, 사후교육과 같은 수단을 통해 그 사람이 더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막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실제로 대한민국 법무부 산하 교정본부에서 실행하는 교정교육은 이러한 인권이란 원칙 하에 재범을 막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그동안 악행을 저지를 수 밖에 없던 환경에 있던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방향으로 교정이 이뤄지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두고 있다. [34]

그 자신이 한번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수준까지 이러한 낙인화가 진행된다면 더 많은 범죄가 일어나게 될 것이란 것은 상식이다. 이러한 흐름을 당연하게 여기며 범죄자에 대한 사회적 매장이나 아예 극형을 우선적으로 판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은 더 많은 범죄를 일으켜 사회를 파국으로 치닫게 하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것은 또한 용의자에 대한 처우 면에서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는 무조건 죄를 저지른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범인이 아닌 용의자에게 비인권적으로 대하는 경우가 많다.[35]

이 문제는 사실 무죄 추정의 원칙으로 판단하는 편이 더욱 편하고, 이것의 비합리함은 이 원칙 만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인권 문제와도 연결된다. 이는 범죄자의 인권 대우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범죄자를 인권을 가진 대상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용의자 또한 위에 언급된 범죄자에 대한 대우와 비슷한, 아니 똑같은 대우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용의자이기 때문에 너는 사람이 아니다." 라는 방식으로 말이다. [36]

이러한 사회적 통념 하에서는 억울한 사람조차도 사람이 아니라 범죄괴물이 될 수밖에 없다. 범죄자로 몰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 사람에게 낙인이 찍히는 것이기에 말이다. 이는 "그럴만 하니까 몰았겠지." 같은 소리로 보조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소리는 사실 이러한 논리를 보조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며,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건 간에 혹은 그 범죄에 그것은 단순한 몰아가기에 지나지 않는다.

인권의 유린, 침해, 차별.

인권 침해는 이 문서에 상기된 모든 인권에 대한 사안을 어김으로서 이루어진다. 인권 자체에 큰 사안과 작은 사안을 나눌 수는 없으나, 개개인에게 끼치는 영향의 크기는 분명 존재한다. 따라서, 인권 차별이 얼마나 미미한지, 극심한지 판단할 수 있다. 물론, 그 정도가 경미하다고 해서 그 사안이 중요하지 않은 사안인 것은 절대 아니다.

한국군 내부의 병폐는 한국 성인 남자가 겪을 수 있는 대표적인 인권침해 사례이다. [37] 흔히 '군대의 특수성'이라는 이유로 어쩔 수 없다고 옹호하는 사람들이 간혹 보이기도 하지만, 국군 장병이란 이유로 주어지는 각종 제약과 불합리성, 인간 이하의 대접은 변호될 수 없다. 일부 기성세대들이 청소년에게 갖고 있는 아직 덜 자랐기 때문에 인간이 아니므로 학생에게 인권은 필요 없다는 충격과 공포스러운 사고방식도 인권 침해에 속한다. 과거 여자결혼만 잘하면 되니까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던 것 또한 인권침해에 속한다. 트랜스젠더게이 혹은 레즈비언이란 이유로 결혼등의 것을 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인권침해에 속한다.

지금 이 시간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인권침해와 그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현실 앞에 좌절하여 포기한다. 몇몇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이는 그 당사자 자신 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손해이며, 이러한 현상에서 볼 때 인권 문제는 곧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38]

탄압

인권 탄압은 권력이나 무력 등을 행사한 그러한 힘이 없는 사람에 대한 인권 침해[39]이다. 현재 이 시간에도 지구 어딘가에서 계속 자행되고 있다.

상당수의 독재체제, 민정이양중인 국가, 물론 절대왕정인 국가들은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많이 자행되고 있다. 심지어는 인권 선진국에 속하는 나라들도 탄압 자체는 존재한다.

인권 탄압 또한 상위 개념인 인권 침해처럼 이 문서에 상기된 모든 인권에 대한 사안을 어김으로서 이루어진다.

과거 유럽에서 있던 유태인, 현재도 계속되는 집시에 대한 탄압도 여기에 속한다. 미국은 아직도 인종차별성차별의 굴레에서 다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선진화되지 않은, 독재 체제나 그것을 벗어나는 과정의 나라에서 그것이 많이 일어난다고 보고되는 경향이 있다. [40]소련의 스탈린 집권 시기 및 중국의 모택동 집권 시기에는 조금이라도 공동체에 반하는 징후가 보이면 시베리아 강제수용소로 보내거나 고문, 총살하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이는 북한도 마찬가지로서, 북한의 인권 실태는 현재도 지구상의 만큼 좋지 않다. 과거 한국에서도 인권인식 자체가 낮고 인권침해가 수도 없이 벌어지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한국은 지구상의 그 어떤 나라보다도 심각한 인권유린 국가 중 하나였고, 현재도 그 잔재들이 많이 남아 있다.

전쟁 범죄학살 등도 엄밀히 말하면 인권 탄압이라고 볼 수 있다. 권력을 앞세워서 탄압을 저지른 사안이기 때문이다. 4.3 사건, 거창 양민 학살사건,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중의 대학살, 보도연맹 학살사건 등의 수많은 대한민국 내 사례와, 킬링필드, ISIS에 의한 학살[41],2.28 사건 등의 수많은 외국 사례들은 당연하게도 인권 침해이자 인권 탄압이다.

비인권적 인권 이용

자신의 권리만큼 남의 권리도 소중하며, 인권은 공동선을 위해 행해져야 한다는 기본적인 지식을 망각하고 오직 자신의 권리만 내세우는 사례들이 굉장히 많다. 특히, 자신의 인권을 신장시킨다면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비인권적인 인권 이용이라고 한다.

인권을 핑계로 자신을 변호하는 남성우월주의자여성우월주의자, 자신들이 동성애자들에 의해 차별받는다고 주장하는 동성애차별주의자 등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인권을 비인권적으로 이용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권은 보편적 개념이며, 누구에게도 막론하고 평등하게 적용된다. 그렇기에 니 권리랑 내 권리는 같다."는 것을 절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라고밖에 판단할 수 없다.

인권 친화적 삶

거창하고 오글거리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최종 목표는 인권 친화적인 삶이다. 이 명제는 인권이란 개념이 생긴 이후부터 계속 그래왔음은 물론이요, 인권 개념이 생기기 이전부터 사람은 사람을 지키는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노력해왔다. 덕분에, 우리는 그 바탕 아래에 안전한 삶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친화적 삶을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는 없다. 비록 현재가 좋고, 나 홀로 그런다고 해서 세상이 더 바뀔 것 같지는 않아도, 내가 이 흐름에 동참하는 순간 이 세상은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간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대부분의 경우 이를 지금까지 애써 무시하면서 살아왔겠으나, 언제든 나 자신이 인권 침해를 받을 수 있다. 우리 개개인이, 혹은 이 사회가 인권 친화적 삶을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 공동체 혹은 개개인이 받을 수 있는 공익에 반하는 인권침해를 최대한 억제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자칫 잃을 수도 있는 행복과 아름다움을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이러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사회화라는 이름으로 칭하기도 한다. 이를 테면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던가 같은 잔소리나, 작은 규칙들을 배워가는 과정 같은 것들도 바로 이러한 분야에 속하게 된다.

사실, 인권친화적 삶이라고 하면 막연히 외국인노동자 혹은 장애인과 같이 억압반는 존재에 대한 생각이 들고, 이러한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인권친화적 삶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바로 위에 있는 인권 침해 사례들을 보면서 나는 아니겠지 하는 생각도 할수가 있다. 혹은 나는 이미 겪었으니 더 안해도 돼, 혹은 나만 겪으면 안돼.. 하는 식으로 이러한 삶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위에도 언급했다시피 자기 자신도 모르는 새 인권침해를 받고 있을 수 있다.

권리판단

나와 상대방이 갖고 있는 권리에 기반하여 판단하는 일을 뜻한다. 보통은 편의를 위해 인권의 세 가지 기본권(평등권, 생존권, 생명권)에 의거한 판단을 주로 이야기 하고, 실제로도 그에 의해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세가지 권리에만 대해서가 아니라, 각각의 권리 마다에 대한 판단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즉, 나와 상대방이 갖고 있는 권리에 기반하여 판단한다는 말은, 위에 언급된 인권 침해라는 정의에 반하여, 항상 나 자신이 상대방을 차별하거나 상대방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수 있도록 생각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나의 언행이 상대방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이에 관해서는 이제 정치적 올바름이란 운동이 있다. 이 운동은 모든 종류의 편견이 섞인 언어적 표현을 쓰지 말자는 주제를 담고 있으며, 이러한 인권적 개념 하에서 말하고자 하는 운동이다. 물론, 정치적으로 올바른 단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대상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것이 아니므로, 사람들이 자신의 인식을 바꾸고 차별을 없애고자 하는 자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인권의 정치

인권의 보편성은 고정불변의 절대적 명제가 아니라 역사적 과정을 통해 그 내용이 심화되고 확장되면서 실천을 통해 획득된다[42]
— 홍태영. 인권의 정치와 민주주의의 경계들 28쪽, 한국정치사상학회 학술회의 2008

즉, 인권 논쟁은 곧 여러 가치의 경합에 있어서 적어도 언어표현상 으뜸의 자리를 차지할 뿐, 이에 대한 인정과 동의의 문턱을 넘어야만 비로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 문턱’이란, 요컨대 “무엇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를 이야기한다. 즉,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그 무엇을 얼마나 보장해야 하는지는 정치적 과정을 통해, 예를 들면 논쟁과 같은 과정을 통해 정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과정에서 사회 발전상, 사람들의 욕구, 자원의 가용성, 정치문화의 수준과 권력관계와 같은 사안은 매우 깊이 관여하게 된다.

법의 입법을 예시로 들어 보자. 인권이 법에 의해 보호 받는 것이 필수적[43]이라는 말을 적용하고자 입법을 한다고 하면 정치적 과정을 통할 수 밖에 없고, 이러한 과정의 결과물로서 입법이 되게 된다. 이 과정 중에서 위에 언급된 것과 같은 사안들은 수도 없이 이러한 과정에 관여하게 된다. 이 와중에, 인권이란 개념 자체가 왜곡되거나 희석될 수 있으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또다른 정치적 과정이 필요하게 된다. 즉, 정치적 과정의 반복을 통해서만이 비로소 인권 친화적인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인권은 정치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속하게 된다.

정치적 활동의 역동성이 인권의 선언적 한계, 왜곡, 또는 고정된 가치로 화석화 되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에 인권의 획득, 확장, 심화의 과정은 늘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 인권과 민주주의,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2012년 3월 '광주 인권라운드테이블'에서. [44]
민주주의와 인권

민주주의란 원칙 하에서 인권은 다른 어떠한 정치체계보다 확실히 보장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민주주의의 비효율성 혹은 민주주의의 약점과 같은 측면을 고려하더라도 말이다. [45]

보통 다수결을 채택한 민주주의사회 하에서는 다수결의 원칙에 의하여 사회는 다수에 유리하게 흘러가게 되며, 소수는 이 때문에 여러 제약을 받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면 서서히 여러가지 문제점이 나타나게 된다. 결국 이러한 문제점들이 누적되면서 사회는 점점 병들게 된다.

사회적 압력정치

사회적 다수자에 대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압력을 이제 사회적 압력이라고 한다. 이는 민주주의사회 뿐만 아니라 여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어떠한 경우더라도,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아무리 옳은 목적을 갖고 있더라도 그러한 뜻을 이루기 위한 움직임이 인원이 없다면 결국 현실에 굴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역사적으로도 수많은 사례가 존재하며, 지금 현재도 그러한 일들은 일어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것들이 나오지 않도록 탄압하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게 되면 점점 절대다수인 사람들이 소수를 탄압하는 구도의 사회로 진입하게 되며, 이렇게 될 경우 소수집단 내의 사람들의 삶은 인간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까지 무너질수도 있다.

이런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소수는 다수파와의 합의를 통해 이 사회를 다수뿐만이 아니라 소수에게도 편한, 모두에게 편한 사회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 하지만, 보통 이러한 합의는 다수파의 손해로 이어지기에 다수파에서는 이러한 시위합의를 하지 않으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혹은 합의를 하였더라도 잘 지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러한 합의를 보조 혹은 도출하기 위해서 소수파는 다수파를 상대로 시위를 하게 되며, 이러한 시위라는 도구를 통해 좀 더 인권 친화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게 된다. [46]

이러한 사회적 압력은 통념과 같이 찾아오는 경우가 특히 많다. 집단의 절대다수가 어떠한 사상이 맞다고 생각하므로 그 사상에 맞추기 위해 사상에 반기를 든 사람들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이에 속하게 된다.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례

대한민국의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많은 인권침해 및 차별에 대해서 조정을 해주고 있으며, 그 결과를 결정례로 남기고 있다. [47] 이는 법에 의한 판례와도 비슷한 개념이다.

사회적 통념인습

대부분의 인권 측면에서의 침해는 사회적 통념에 의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통념에 대해서 설명하기 위해, 가장 대표적인 인권침해 사례 중 하나인 성차별을 예로 들어 보자. 성차별이란 것은 남성의 경우와 여성의 경우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는 인권침해의 종류이다. 보통 여성이 주로 당하기 때문에 여성과 남성의 차별로 보는 경향도 있으나, 남성 또한 여성과 비슷하게 성차별을 당하고 있다. 보통 하나의 성에 딸린 성역할에 대한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남자라면 이래야 하고, 여자라면 이래야 하고... 하는 것들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물론 이것이 사회적인 문화이자 전통이며, 보통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성차별적 발언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발언들은 그 대상이 누가 되었던 간에 개개인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대체 누가 남자/여자라고 해서 여자/남자가 하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건가?

보통 널리 퍼진 행동 양상이나 생각은 사회적 통념에 의해 보조된다. 통념의 뜻을 풀면 일반적으로 널리 통하는 보편적 개념을 뜻한다. 즉, 이러한 행동 양상이나 생각들이 일반적으로 널리 통하는 개념이므로 옳다는 것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것이 아무리 널리 퍼져 있고 옳아 보인다고 해서, 그러한 통념이 피해자를 양산한다고 해도 그것은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는가? 널리 통하는 개념이라 한들 그것이 전혀 좋지 않은 방향으로 이뤄진다면 그것은 단순한 인권 침해에 불과하다.

전통종교

전통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인권 침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남녀유별과 같은 유교사상에 입각한 침해부터 시작하여, 과거 샤머니즘 시대의 지식을 동원한 침해까지 그 정도와 시간을 수없이 넘나드는 많은 것들을 우리는 이제 인습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다시 말하면, 시대와 맞지 않는,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전통을 인습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회 내부에는 수없이 많은 인습이 행해지고 있고, 이것은 정당화되고 있다. 심지어는 어느 사회 안에서는 박멸되었다고 생각한 인습이 다른 사회 내부에서는 버젓히 살아있기도 하다. 이러한 인습을 유지하는 것 또한 통념이다.

지금도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지만, 다른 종교를 갖고 있다고 해서 박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전통적으로 다른 종교를 믿고 있는 사람들에 의한 박해이기도 하며, 전통을 버리고 새로운 신앙을 믿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도 일어나기도 한다. 이러한 운동 끝에 새로운 신앙은 다시금 전통이자 인습이 되며, 같은 일은 계속 반복되게 된다.[48]

이 때문에, 보통 종교는 서로 다른 종교를 갖고 있더라도 이에 대해서 강요를 하지 않고 서로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이 있다. 그것도 그 종교의 최고 성전에도 있고, 그 종교의 최고 성인이 한 말 중에도 있다.

종교에는 강요가 없나니
쿠란 2:256
"비무슬림을 해치는 자는 나를 해치는 자이며 나를 해치는 자는 하나님을 해치는 자이다."
— 무함마드
그리고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하나가 예수를 시험하여 물었다. '선생님, 율법 가운데 어느 계명이 중요합니까?'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 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신6:5)' 하였으니,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 가는 계명이다.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레19:18)'한 것이다. 이 두 계명에 온 율법과 예언서의 본 뜻이 달려 있다.'
— 마태복음 22장 35~40절
국가별 문화와 인권

국가별로 다른 인권 개념이 필요하다고 하는 리콴유 같은 사람들은 서구식 민주주의나 인권개념이 동아시아의 환경과 문화와 전혀 맞지 않다 주장한다. 실제로 사회주의의 인권 개념은 분명 같은 개념에서 출발했지만 그 결과는 사뭇 다르게 받아들여졌으며, 이는 국가주의와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고, 나름 연구할 면이 있다고 평가되는 면면도 있다. 나치즘 혹은 네오 나치와 같은 것들은 유럽의 도덕 붕괴였으며, 이는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서구와 달리 동아시아아프리카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식민지를 겪어 왔고, 제국주의 시대 이전에는 자기들만의 정치 체계와 문화적 체계 하에서 자기들끼리 살아가고 있었기에 언뜻 보면 이러한 비판은 맞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위의 역사 문단을 보면 오히려 동아시아에서 인권 개념이 생겼다고 보는 것이 맞다.[49] 역사적 이유 뿐만이 아니라, 현재의 시점에서 인권 개념을 돌아보면, 인권 개념은 절대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인권이란 것이 서구인에겐 맞지만 동양인에겐 맞지 않다는 이야기를 한다면 이는 절대 성립될 수 없다.

다시 한번 보자. 이런 주장을 수용하는 대표적인 국가로는 중국. 싱가포르. 짐바브웨가 있다. 이러한 현대 인권 개념을 수용하지 않으려고 하는 국가들은 대부분 인권탄압이 극심한 국가들 중 하나이다. 즉, 이러한 주장은 그 나라에서 발생하는 인권탄압을 단지 국가별로 다른 인권 개념이 있다는 식으로 정당화 시키려는 시도로 볼 수 있으며, 이는 지극히 불합리한 정당화이다.

아시아에는 아직 해내야 할 일이 많이 있다. 우리는 시급히 민주주의를 확립하고 인권을 개선해야 한다. 여기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요소는 문화적 전통이 아니라 권위주의적 지도자들과 변명자들의 저항이다. (중략) 아시아의 풍부한 민주주의적인 철학과 전통은 지구적 민주주의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할 수 있다. 문화는 반드시 우리의 운명일 수만은 없다. 민주주의가 우리의 운명인 것이다.
김대중, 1994,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 11~12월호, '문화란 운명인가'[50]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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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인권을 최우선으로 두려는 주의.
  2. 이는 철학사와도 관련이 있다. 이러한 개념 자체는 사실 대부분 과거에도 있던 개념들이다.
  3. 정확한 서술을 위해서는 이 세개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약간 더 나눠서 서술하고, 조금 더 서술하게 되지만, 정말 약간의 내용이 다를 뿐이다. 이 문서에서는 이를 굳이 구분하지는 않았다.
  4. 다만 인권은 동물권을 포함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인권이 동물권에 대한 안티테제는 아니다. 인권은 인간끼리의, 국가에 의한 침해에 대한 방어로 나온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5. 인권은 의무를 동반하지 않는다, Nairrti Works, 2015.08.22.
  6. "현행 헌법의 다른 규정들도 국민의 기본권행사를 납세나 국방의 의무 이행에 대한 반대급부로 예정하고 있지 않다." 2004헌마644
  7. '인간이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를 주제로 하는 몇몇 SF 작품들은 이 문제를 다루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소프트웨어임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정교한 자아를 가졌으니 자신에게 망명권을 주장하는 '인형사'가 등장하는 공각기동대가 있다.
  8. 국가의 경우에도 개개인의 인권을 존중하거나 억압할 수 있을 뿐, 부여하거나 뺏을 수 없다.
  9. 모든, 그 부류에 속한 인간의 평등.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노예는 노예끼리, 어린이는 어린이끼리의 평등
  10. 불교와 인권, 안옥선에 따라, 한반도에 있는 대승불교 위주로 서술하였습니다.
  11. http://mbuddha.com.ne.kr/200101/20017.htm
  12.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24340
  13. 법제화된 마그나카르타 http://www.legislation.gov.uk/aep/Edw1cc1929/25/9/section/XXIX . 본래는 이 조항이 39조에 있었음.
  14. NO Freeman shall be taken or imprisoned, or be disseised of his Freehold, or Liberties, or free Customs, or be outlawed, or exiled, or any other wise destroyed; nor will We not pass upon him, nor condemn him, but by lawful judgment of his Peers, or by the Law of the Land. We will sell to no man, we will not deny or defer to any man either Justice or Right.
  15. http://plato.stanford.edu/entries/locke-political/
  16. Hunt, Lynn (2008). Inventing Human Rights: A History. W. W. Norton & Company.
  17. Slaughter, Joseph R. (2007). Human Rights, Inc.:The World Novel, Narrative Form, and International Law. Fordham University Press.
  18. 물론, 맬컴 엑스는 추후 흑인우월주의를 표방하기도 하였지만, 그 역시 흑인 인권 운동 운동가이다.
  19. 안드레이 비신스키와 같은 사람들이 이러한 것을 지지하였으며, 이는 실천되었다.
  20. 다만, 이러한 평등과 멀어질 수 있는 법을 법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옹호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물론, 이 반대로 무조건 인권적이 아니라고 반대하는 일 또한 잘못된 일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의 선이며, 이것이 어떤 방향으로 해가 되는지 잘 고민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21. 물론 논쟁의 여지가 있으나, 생명권을 어기는 것만은 확실하다.
  22. Les Représentans du Peuple François, constitués en Assemblée Nationale, considérant que l’ignorance, l’oubli ou le mépris des droits de l’Homme sont les seules causes des malheurs publics et de la corruption des Gouvernemens, ont résolu d’exposer, dans une Déclaration solemnelle, les droits naturels, inaliénables et sacrés de l’Homme, afin que cette Déclaration, constamment présente à tous les Membres du corps social, leur rappelle sans cesse leurs droits et leurs devoirs ; afin que les actes du pouvoir législatif, et ceux du pouvoir exécutif pouvant à chaque instant être comparés avec le but de toute institution politique, en soient plus respectés ; afin que les réclamations des Citoyens, fondées désormais sur des principes simples et incontestables, tournent toujours au maintien de la Constitution, et au bonheur de tous. En conséquence, l’Assemblée Nationale reconnoît et déclare, en présence et sous les auspices de l’Être Suprême, les droits suivans de l’Homme et du Citoyen.
  23. Les hommes naissent et demeurent libres et égaux en droits. Les distinctions sociales ne peuvent être fondées que sur l’utilité commune.
  24. 전자기파적 접근 내에서의 차이의 경우를 바로 여기서 말하는 법적 기본권과 인권의 차이로 볼 수 있다.
  25. 주의할 점은 내용상의 차이는 없다고 해도 그 권리의 주체의 빈도에서 실질적인 차이가 난다. 세계 시민의 인권국민의 기본권이 가장 많이 쓰이고, 국민의 인권도 간혹 사용하지만, 세계 시민의 기본권이라고 쓰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26. 용어의 적합성은 여기서 논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근로기준법 1장 2조 1항에 의하면, 근로자는 직업의 종류와 관계 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말한다. 라고 기술한다.
  27. 빨갱이라고 한다던가 맞는다던가 더러운 일도 쥐꼬리만한 돈을 받고 일한다던가
  28. 사실 이는 대한민국사6.25 전쟁이란 뼈아픈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생긴 반공주의후폭풍이기도 하다.
  29. 범죄자 중 전과가 있는 사람의 비율을 재범률이라고 한다. 2013년도 통계 기준, 50% 정도이다. 통계청 발행 <한국의 사회지표> 2014년판 9-28 형사사법기관의 성과
  30. 전자발찌 착용 기간을 무사히 넘긴 뒤 발찌 착용을 끝내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많다.
  31. 대한민국 통계청에서 연도별로 발행하는 <한국의 사회지표> 2014년판 기준, 9-20 연도별 범죄자수 및 여성범죄자 비율
  32. <한국의 사회지표> 2014년판 1-1 총 인구, 자연증가율, 인구성장률
  33. 단순 산술적으로, 1년 내 재범률이 50%일 때 대한민국 총 전과자의 수는 7년 이내 5천만명에 달하게 된다. 이럴 때 과연 전과자와 전과자가 아닌 사람으로 비국민과 국민을 나누었을때 폐해는 누구에게 오는가?
  34. 물론 이 과정 중에 많은 오류가 있음은 분명 문제가 있다. 밖에서는 일벌백계를 왜 안하냐고 하는데, 안에서는 권력별 차등대우를 하는 씁쓸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35. 이는 대체로 용의자가 범죄자라는 통념 하에서 일어나는 행위이며, 때문에 보통 범죄자의 인권 침해와 같이 일어나게 된다.
  36. 심지어는 과거에 용의자였고 현재는 아니더라도 이러한 비인권적 대우를 받을 수 있다.
  37. 물론, 구 일본군의 잔재라고 보는 관점이 많지만, 과거부터 현재까지 내려오는 문제가 인권 문제가 아닌 것은 아니다. 단순히 역사 문제인것만은 더더욱 아니다.
  38. 이 때문에, 인권운동 자체를 기득권층과의 권력 싸움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차별을 가장 넣고 싶어 하는 계층은 기득권층일 것이며, 그로 인해 가장 큰 이득을 얻는 계층 역시 기득권층일 것이기 때문이다.
  39. 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는 침해의 하위 분류에 들어가게 된다. 침해 (侵害)[침ː해] [명사] 침범하여 해를 끼침. 탄압 (彈壓)[타ː납] [명사] 권력이나 무력 따위로 억지로 눌러 꼼짝 못하게 함.
  40. 전근대적인 인권 사상이 팽배하여 아예 사상이 개방되지도 않은 경우 그것이 인권 침해인줄도 모르고 넘어가는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여성 할례 문제.
  41. 이건 심지어 현재 진행중이다.
  42. 이와 관련하여 조효제는 인권에 대한 논의가 정치공간에서 갈등하는 여러 가치 중에서 언어적 우선순위 또는 논의의 문턱일 뿐이라고 설명하면서, 인권의 정치성을 강조한다(조효재, 인권의 문법, 33쪽 후마니타스 2007)
  43. 세계인권선언 전문
  44. http://www.humanpolicy.com/xe/reference_room/46549
  45. 다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세계 역사에서는 잠깐 동안일지라도 전제군주제 하에서도 인권이 보장되었던 경우도, 민주주의를 통해 노예제를 합리화시킨 경우도 있다.
  46. 물론 그 과정 중에 폭력적인 일들, 속칭 인권 시위를 한답시고 비인권적 행동을 하는 것이 목격되기도 하나, 이는합의가 아닌 일방적 진압을 통한 사안 해결 방법을 이용할 때에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다.
  47. http://www.humanrights.go.kr/03_sub/body02_2.jsp
  48. 이는 심지어는 석가모니가 평생토록 이러한 것을 없애려고 했던 불교에서도 종종 보이는 모습이기도 하다.
  49. 특히 동아시아 전체에 퍼져 있는 불교를 생각해 보자. 이 문서에도 관련 내용이 적혀 있다.
  5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3251135171&code=940100
  51. http://www.foreignaffairs.com/articles/50557/kim-dae-jung/is-culture-destiny-the-myth-of-asias-anti-democratic-valu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