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휘소

벤저민 휘소 리 Benjamin Whisoh Lee
PortraitBen.jpg
이름 벤저민 휘소 리(Benjamin Whisoh Lee)
이휘소(李輝昭)
출생 1935.01.91, 일제강점기 서울
사망 1977.06.16(향년 42세), 미국 일리노이주 케와니
국적 한국(1968년 이전), 미국(1968년 이후)
연구분야 입자물리학, 이론물리학
지도교수 에이브러햄 클라인
제자 강주상

이휘소는 한국계 미국인 물리학자로 한국이 배출한 가장 뛰어난 물리학자로 여겨지고 있다.[1]

상세[편집 | 원본 편집]

1952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화학공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하였으나 그 이후 물리학에 흥미를 느껴 문리과대학의 물리학과로 전과를 시도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미국 오하이오주의 마이애미 대학교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1956년에 대학을 졸업한 다음 피츠버그 대학교로 진학하여 1958년에 석사 학위를 받고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로 진학하여 1961년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3년부터 페르미 국립 가속기 연구소의 이론물리부장을 맡았다. 1977년에 스티븐 와인버그와 함께 〈Cosmological Lower Bound on Heavy-Neutrino Masses〉라는 제목의 논문을 제출하였고 그 해 7월 25일에 출판되었다.[2] 그러나 이휘소 본인은 6월 16일에 교통사고로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출판된것을 볼 수 없었다. 와인버그와의 이러한 인연으로 그는 이휘소 사후 그 부고를 쓰게 되며 이후 40년 가까이 지난 2016년에도 인터뷰 도중 "지금도 그(이휘소)가 그립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3]

기타[편집 | 원본 편집]

  • 동료 연구자들 사이에서 부르던 애칭은 벤저민 리를 줄인 벤리였다.
  • 김진명소설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공석하의 《핵물리학자 이휘소》에서 박정희 정권의 핵무기 개발에 협력한 것으로 왜곡해서 묘사되었고 유족들이 이에 고인의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하여 출판금지소송을 제기하였다. 법원에서는 소설이 실제 인물을 사실과 다르게 묘사하였음은 인정하였으나 이것이 명예를 훼손한다고 볼 수 없고 오히려 명예를 높였다고 볼 수 있다고 하여 이를 기각하였다.[4] 물론 핵무기와 군사독재에 전부 반대했던 이휘소는 이에 동의하지 않을것 같지만. 거기다 이휘소의 연구분야인 입자물리학과 이론물리학은 핵개발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것도 아니다.
  •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였던 강주상은 이휘소가 스니토브룩 대학교(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Stony Brook)에 교수로 재작할 당시 박사논문 지도를 받았었다. 그는 처음부터 이휘소에게 지도를 받고 싶어하였다. 그러나 이휘소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시절에 지도했던 한국인 학생의 불성실한 태도 때문에 한국인 학생을 지도하지 않으려고 생각했었고 강주상에게도 그렇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며 그나마 강주상이 대학시절 총장상을 받은 기록 때문에 좋은 인상을 가진것 같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강주상 본인은 총장상이 영어로 president로 적혀있어서 대통령상으로 오해해서 그런게 아닌가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다만 이유야 어찌 되었건 이후 강주상에게 이런저런 개인적인 조언을 해준다거나 저녁식사에 초대한다거나 결혼식에 비행기를 타고와서까지 참석하기도 하였고 이휘소가 죽은 이후 부인인 심만청이 유품을 강주상에게 전달하기도 하는 등 상당히 친밀한 관계였던것은 사실로 보인다.[1]
  • 대단한 골초였는데 칼텍으로 옮긴 이후 금연을 시작했다. 역시 강주상의 회고에 따르면 '스모그만으로 충분한 흡연의 효과가 있다.' 라나...[1]
  • 스포츠카를 좋아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과 별개로 운전 실력은 그냥 그래서 처음에 운전을 연습할때 연습을 도와줬던 그의 친구는 그때마다 아찔했었다고.
  • 비록 이휘소 본인은 국내에서 연구하지 못했지만 그의 제자인 강주상 교수가 길러낸 제자들이 국내 입자물리학 분야에 활약하고 있으니 간접직으로나마 국내 학계에도 그의 영향이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각주

  1. 1.0 1.1 1.2 강주상. 이휘소 평전.
  2. Lee, Benjamin W., and Steven Weinberg. "Cosmological lower bound on heavy-neutrino masses." Physical Review Letters 39.4 (1977): 165.
  3. 표준모형의 산증인, 스티븐 와인버그 교수 인터뷰
  4. 서울지법 1995. 6. 23., 선고, 94카합9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