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하고 있지 않습니다. 편집하면 당신의 IP 주소가 공개적으로 기록됩니다. 계정을 만들고 로그인하면 편집 시 사용자 이름만 보이며, 위키 이용에 여러 가지 편의가 주어집니다.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김현구 교수, 임나일본부설 학자 왜곡 사건 === 이덕일은 자기 책에서 이런 주장을 했다. {{인용문2|김현구는 이 책 곳곳에 백제의 지배를 강조해서 마치 임나일본부설을 비판하는 것 같은 모양새를 취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세 번째 논법이 등장한다. (중략) 임나일본부를 지배한 것은 백제인데, 그 백제를 지배한 것은 야마토 정권이라는 것이다.<ref>이덕일, 우리 안의 식민사관, 만권당, 2014, 340~341쪽</ref>}} {{인용문2|『일본서기』가 왜곡과 과장이 많은 역사서라는 것은 국제적 상식인데, 스에마쓰가 그랬고, 쓰다 소키치가 그랬던 것 처럼 일본서기를 사실로 전제하고 논리를 펼치는 것이다. <ref>이덕일, 우리 안의 식민사관, 만권당, 2014, 341쪽</ref>}} 그러나 실제로는 이렇게 쓰여있다. ''' {{인용문2|일본서기의 507년에서 562년 사이의 기록 가운데 야마토 정권과 한반도 각국의 인적·물적 교류를 조사해보면 신라·고구려와는 각각 왕복 2회의 교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교류 내역을 보면 야마토 정권은 신라나 고구려에서 전혀 사자를 파견하지 않은 반면 신라와 고구려는 각각 2회씩 야마토 정권에 사자를 파견했다. 임나와는 왕복 8회의 교류가 있었는데 그중 야마토 정권은 3회에 걸쳐 임나에 사자를 파견한 반면 임나는 5회에 걸쳐 야마토 정권에 사자를 파견한 것으로 '''씌어 있다.''' <ref>김현구,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창비, 2010, 131쪽</ref>}} 김현구 교수는 그냥 인용'''만''' 한 것 뿐이다. 당연하지만 그게 왜곡이 있던 아니던 일단 교차검증을 위해 확인을 해봐야한다. [[5.18 광주 민중항쟁]]이나 보도연맹원 집단학살 사건의 진상을 밝힐 때도 신군부 측 문서를 검토해서 어디가 거짓이고 어디부터가 진실인지 검증작업을 했다. 특정 진실을 밝힐 때는1차 사료를, 비롯 거짓이라 해도 검토를 한다. 이건 기본이다. 이덕일은 교묘한 편집을 통해 이런 문장을 쓰기도 했다. {{인용문2|김현구는 야마토 정권의 시각으로 고구려·백제 및 임나를 본다. 야마토 정권은 신라·고구려에서 사신을 전혀 파견하지 않은 반면 신라·고구려는 사자를 파견했다는 것은 무슨 논리인가. 야마토 정권이 신라·고구려부터 조공을 받는 상국(上國)이란 뜻이다<ref>이덕일, 우리 안의 식민사관, 만권당, 2014, 342쪽</ref>}} 그러나 실제로는 완전히 다른 내용인 걸 알 수 있다. {{인용문2|그렇다면 적어도 스에마쯔가 근거로 삼고 있는 『일본서기』에 의거하는 한, 야마또 정권과 한반도 각국의 관계는 과거 스에마쯔설로 대표되던 통설처럼 임나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ref>김현구,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창비, 2010, 133쪽</ref>}} {{인용문2|야마또정권과 신라나 고구려의 교류는 각각 왕복 2회에 그쳤고, 임나와의 교류도 왕복 8회에 그친 반면 백제와는 왕복 39회에 이르고 있어 큰 차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백제와의 교류는 그 내용도 대부분 우호적인 관계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스에마쯔가 근거로 삼는 『일본서기』에 의하는 한 적어도 야마또 정권이 임나를 근거지로 백제와 신라를 간접 지배했다는 설은 성립될 수 없을 것이다.'''<ref>김현구,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창비, 2010, 133쪽</ref>}} 실제로는 대놓고 부정했다. 실제 김현구 교수는 '임나일본부설 내용 인용 -> 해당 내용 반박' 순으로 글을 썼는데, 여기서 '''해당 내용 반박을 위해 인용하는 것을, 김현구 교수가 주장한 것으로 왜곡한 것'''이다. 또한 김현구 교수는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일본학자를 바른적이 있다. 다음 내용이다. {{인용문2|제1기 한일역사공동위원회 때 위와 같은 내용으로 발표를 하자 일본 측 대표 S씨가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제기했다. '야마또정권의 임나와의 인적·물적 교류가 백제에 비해 아주 미미한 것은 임나가 야마또정권의 직할지(미야께, 屯倉)이거나 임나에는 직접 책임자를 주둔시키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서기』에는 야마또정권이 임나에 직접 의사를 전달한 예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그 의사도 대부분 백제를 통해서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 씌어 있다고 말하자 아무 말도 없었다.<ref>김현구,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창비, 2010, 133쪽</ref>}} 그런데 이덕일은 이걸 또 이렇게 왜곡하고 모욕까지 한다. {{인용문2|일본학자는 야마토 정권이 한반도 남부의 임나를 통해서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스에마쓰의 주장을 되풀이 한 것이다. 김현구는 임나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한 것은 사실인데, 이 임나는 백제가 지배했고, 야마토 정권은 백제를 지배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외형도 내면도 일본인인 일본 국적의 S씨와 외형은 한국인이지만 내면은 일본인인 한국 국적의 김현구 사이의 논쟁같지도 않은 논쟁이다.<ref>이덕일, 우리 안의 식민사관, 만권당, 2014, 344쪽</ref>}} "야마토 정권이 한반도 남부의 임나을 통해서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말은 단 한마디도 없고, 오히려 일본학자의 입을 닥치게 한 내용인데 이걸 또 이딴식으로 왜곡해서 "일본인"이라는 모욕까지 준다. 실제 김현구 교수의 태도와 주장을 이렇다. {{인용문2|'''위 내용을 보면 야마또 정권은 임나에 대한 의사를 전부 백제를 통해 전달하고 있다. 그 내용의 사실성 여부는 차치하고 『일본서기』에 임나 문제에 대해 야마또정권은 단순히 백제를 지원하는 위치에 지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ref>김현구,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창비, 2010, 136쪽</ref>}} 또한 군사원조 부분에서 이덕일은 김현구 교수가 하지도 않은 말을 지어내서 비난하기도 한다. 원래 김현구 교수가 한 말은 이렇다. {{인용문2|야마토 정권은 전후 5회에 걸쳐 한반도에 원군 내지는 인부들을 파견하고 있는데 그 특징은 전부 백제를 위해 파견했다는 것이다.… 537년 신라의 임나 침입을 저지하기 위해 파견한 군대도 최종적으로는 백제를 위해 일하고 있었다. 이때 오토모노 나나무리 오무라지(大伴金村大連)의 명으로 백제에 파견되었던 일라(日羅)는 46년 간이나 백제에서 관료로 근무하다가 586년에야 귀국했다.<ref>김현구,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창비, 2010, 138쪽</ref>}} {{인용문2|『일본서기』에는 507년에서 562년 사이에 백제가 야마토 정권에 파견한 24회의 사자 중에서 백제의 요구가 명확히 적시되어 있는 경우는 14회라고 되어 있다. 그중에서 임나에 관한 내용은 5회이고 나머지 9회는 전부 원군이나 군수 물자를 요청하는 내용이다. 따라서 당시 야마토 정권과의 관계에서 백제가 일관되게 추구하였던 것은 군사 원조였다고 볼 수 있다.<ref>김현구,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창비, 2010, 142~143쪽</ref>}} {{인용문2|한편 백제의 군원 요청에 대해 야마또정권은 9회에 걸쳐 원군이나 말, 배, 활과 화살, 식량 등의 군원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9회에 걸친 야마또정권의 군원에 대해 백제는, '조(調, 조세)'라고만 씌어 있어 그 내용을 알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마찬가지로 9회에 걸쳐 오경박사를 중심으로 학자나 전문지식인, 승려·불경·깃발 등의 불교 관련 문물을 보내고 있다. 백제가 보낸 전문지식인과 선진문물 제공이 야마또정권의 요청과 무관하지 않다면 야마또정권은 9회에 걸쳐 군원을 제공하고 그때마다 백제로부터 전문지식인과 선진문물을 제공받았던 셈이다.<ref>김현구,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창비, 2010, 143쪽</ref>}} {{인용문2|야마또정권의 군원 제공이 백제로부터 전문지식인과 선진문물을 얻기 위한 것이었음은 왜가 15회에 걸쳐 백제에 파견한 사자가 분명하게 요구한 것이 전부 선진문물이나 오경박사 등이었다는 사실로도 입증된다. 결국 이는 당시 야마또정권이 백제와의 관계에서 일관되게 추구한 것이 전문인이나 선진문물의 획득이었음을 의미한다. 당시 두나라의 관계를 보면 백제는 야마또 정권에 선진문물을 제공하고 야마또정권은 백제에 군원을 제공하는 관계였다고 할 수 있다<ref>김현구,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창비, 2010, 143~144쪽</ref>}} {{인용문2|적어도 『일본서기』에 의한다면 케이따이천황(재위 507~31)이 등장하는 507년에서 임나가 멸망하는 562년 사이의 야마또정권과 한반도 각국과의 관계는 일본 학계가 주장하는 것 처럼 '''임나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된 것이 아니라 백제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백제와의 관계는 특수한 용병관계였음을 알 수 있다.'''<ref>김현구,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창비, 2010, 136쪽</ref>}} 그런데 이덕일의 해석은 이렇다. {{인용문2|김현구에 의해 백제는 졸지에 야마토 조정에 군사 원조를 구걸하는 처량한 신세로 전락했다.<ref>이덕일, 우리 안의 식민사관, 만권당, 2014, 345쪽</ref>}} 이게 왜 잘못됐냐고? 그럼 6.25 전쟁에서 미국이 UN군에게 지원요청한건 무엇인가? 베트남전쟁에서 대한민국에게 지원요청한 건 무엇인가? <del> 본격 [[미국]] 한국부설</del> 김현구 교수 책의 결론도 이렇다. {{인용문2|라근자(木羅近資)가 369년 가야 7국을 평정하고 382년 임나(고령가야, 대가야)를 구원함으로써 백제의 임나경영이 시작되었다. 그후 '''백제의 임나경영은 목라근자의 아들 목만치(木滿致)를 비롯하여 목군 유비기(木君有非岐), 목군 윤귀(木君尹貴) 등 주로 목씨 일족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임나경영의 토대를 만든 목라근자의 아들 목만치가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수도 한성이 함락되자 구원을 청하러 도일했다가 '소가(蘇我)'에 정착하게 된다. 그가 바로 100여년간 야마또정권의 실권을 장악했던 소가씨의 조상 소가만지(蘇我滿智)이다.'''<ref>김현구,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창비, 2010, 197쪽</ref>}} {{인용문2|그런데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하자 일본과 신라 간에는 대립이 심화되고 일본에서는 한반도 각국을 일본에 조공을 바치던 나라로 취급하는 번국(藩國) 사상이 유행하게 된다. 따라서 소가만지의 자손들은 자기들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상인 소가만지가 원래부터 왜인이었음을 주장하게 된다. 그 결과 각 씨족들이 제출된 자료를 근거로 『일본서기』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소가만지의 부(父) 목라근자를 비롯한 목씨 일족들이 백제의 장군으로서 수행한 임나경영이 일본천황의 명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처럼 되어버린 것'''이다.<ref>김현구,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창비, 2010, 197~198쪽</ref>}} 책에선 일본정권이 정권 정당성을 위해 일부러 왜곡했다고 대놓고 쓰여있다. 요약: 리브레 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로 배포됩니다(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리브레 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글이 직접 작성되었거나 호환되는 라이선스인지 확인해주세요. 리그베다 위키, 나무위키, 오리위키, 구스위키, 디시위키 및 CCL 미적용 사이트 등에서 글을 가져오실 때는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여야 하고, 만약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라는 증거가 없다면 그 문서는 불시에 삭제될 수 있습니다.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 | () [] [[]] {{}} {{{}}} · <!-- --> · [[분류:]] · [[파일:]] · [[미디어:]] · #넘겨주기 [[]] · {{ㅊ|}} · <onlyinclude></onlyinclude> · <includeonly></includeonly> · <noinclude></noinclude> · <br /> · <ref></ref> · {{각주}} · {|class="wikitable" · |- · rowspan=""| · colspan=""| · |} {{lang|}} · {{llang||}} · {{인용문|}} · {{인용문2|}} · {{유튜브|}} · {{다음팟|}} · {{니코|}} · {{토막글}} {{삭제|}} · {{특정판삭제|}}(이유를 적지 않을 경우 기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드시 이유를 적어주세요.) {{#expr:}} · {{#if:}} · {{#ifeq:}} · {{#iferror:}} · {{#ifexist:}} · {{#switch:}} · {{#time:}} · {{#timel:}} · {{#titleparts:}} __NOTOC__ · __FORCETOC__ · __TOC__ · {{PAGENAME}} · {{SITENAME}} · {{localurl:}} · {{fullurl:}} · {{ns:}} –(대시) ‘’(작은따옴표) “”(큰따옴표) ·(가운뎃점) …(말줄임표) ‽(물음느낌표) 〈〉(홑화살괄호) 《》(겹화살괄호) ± − × ÷ ≈ ≠ ∓ ≤ ≥ ∞ ¬ ¹ ² ³ ⁿ ¼ ½ ¾ § € £ ₩ ¥ ¢ † ‡ • ← → ↔ ‰ °C µ(마이크로) Å °(도) ′(분) ″(초) Α α Β β Γ γ Δ δ Ε ε Ζ ζ Η η Θ θ Ι ι Κ κ Λ λ Μ μ(뮤) Ν ν Ξ ξ Ο ο Π π Ρ ρ Σ σ ς Τ τ Υ υ Φ φ Χ χ Ψ ψ Ω ω · Ά ά Έ έ Ή ή Ί ί Ό ό Ύ ύ Ώ ώ · Ϊ ϊ Ϋ ϋ · ΐ ΰ Æ æ Đ(D with stroke) đ Ð(eth) ð ı Ł ł Ø ø Œ œ ß Þ þ · Á á Ć ć É é Í í Ĺ ĺ Ḿ ḿ Ń ń Ó ó Ŕ ŕ Ś ś Ú ú Ý ý Ź ź · À à È è Ì ì Ǹ ǹ Ò ò Ù ù · İ Ż ż ·  â Ĉ ĉ Ê ê Ĝ ĝ Ĥ ĥ Î î Ĵ ĵ Ô ô Ŝ ŝ Û û · Ä ä Ë ë Ï ï Ö ö Ü ü Ÿ ÿ · ǘ ǜ ǚ ǖ · caron/háček: Ǎ ǎ Č č Ď ď Ě ě Ǐ ǐ Ľ ľ Ň ň Ǒ ǒ Ř ř Š š Ť ť Ǔ ǔ Ž ž · breve: Ă ă Ğ ğ Ŏ ŏ Ŭ ŭ · Ā ā Ē ē Ī ī Ō ō Ū ū · à ã Ñ ñ Õ õ · Å å Ů ů · Ą ą Ę ę · Ç ç Ş ş Ţ ţ · Ő ő Ű ű · Ș ș Ț 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