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하고 있지 않습니다. 편집하면 당신의 IP 주소가 공개적으로 기록됩니다. 계정을 만들고 로그인하면 편집 시 사용자 이름만 보이며, 위키 이용에 여러 가지 편의가 주어집니다.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사건의 전개== 시해 전날 밤(양력 10월 7일), 궁중에서는 민영준이 궁중에 등용된 것을 축하하는 파티가 벌어졌다. 당시 명성황후(이하 '황후')는 훈련대의 해산, 민영준의 등용이 이루어져 왕권의 강화 및 일본 세력의 약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에 만족하고 있었으며, 후원에서 달구경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다 황후는 일본군과 훈련대가 궁을 포위했다는 것을 알고 곤녕합으로 이동했다. 이는 일본군은 왕실을 보호하기 위해 진입했다는 정병하<ref>정병하는 고종의 아관파천 직후, 김홍집, 어윤중과 함께 군중의 손에 죽었다.</ref>의 조언을 따른 것이기도 하고, 이미 궁궐이 포위되었기 때문이기도 한데, 불행히도 황후는 자신이 표적임을 알지는 못 했다.<ref>[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1&aid=0002295891 선택! 역사를 갈랐다 (24)흥선대원군 ‘척화’ vs 명성황후 ‘친러’ (상)], 서울신문, 2012.9.3.</ref> [[1895년]] [[10월 8일]] 새벽 [[도쿄대]] 등 우익 엘리트 출신으로 구성된 암살단이 낭인으로 변장하고 일본 공사관 수비대, [[우범선]]이 이끌던 훈련대와 함께 경복궁에 침입했다. [[광화문]]에 다다른 이들은 미국인 지휘관인 윌리엄 다이가 이끄는 시위대를 맞았는데 시위대는 용감히 싸웠으나 압도적으로 패배했다. 곧이어 훈련대의 원래 대장이었던 [[홍계훈]]이 달려와 이들을 꾸짖었으나 일본군에게 살해당한다.<s>근데 영화에선 용감히 싸우다 전사...</s> 이후 군부대신 안경수도 살해당했다. 시위대를 몰아낸 훈련대는 [[흥선대원군]]이 <s>감금된</s>거처하던 건녕전 앞 뜰에 모여 대기했고, 흉도들은 건청궁으로 몰려가서 명성황후를 찾으며, 닥치는 대로 궁녀들을 잡아 행방을 캐물으며 머리채를 쥐어잡고 마구 구타했다.<ref>독립문 등을 설계한 사바친(A I S Sabatin)은 “마루는 20~25명의 양복 차림 일본인들이 일본도로 무장한 채 점거하고 있었고, 그들은 방의 안팎으로 뛰어다니며 여인들의 머리채를 잡아 끌고 나와 마루 아래로 내던져 떨어뜨리고 발로 걷어찼다.”라고 증언하였다. [http://mnews.joins.com/article/3924507#home 을미사변 목격했던 조선 최초의 서양인 건축가 사바친], 중앙일보, 2009.12.16.</ref> 이때 왕세자비마저 흉도들에게 황후의 행방을 밝히지 않으면 죽을 것이라고 협박당한다.<ref>[http://www.newdaily.co.kr/mobile/mnewdaily/newsview.php?id=213811 산케이, 명성황후 살해범들 '후계자'인가? 사죄 사설부터 써라], 뉴데일리, 2014.8.11.</ref> 결국 건청궁 곤녕합에서 흉도들은 명성황후를 찾아냈다. 이 긴박한 상황에서 사실상 마지막으로 황후를 보필한 것은 궁내부 대신 [[이경직]]이었는데 스스로 두 팔을 벌려 흉도들의 난입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총을 맞은 후 신문기자 히라야마 이와히코(平山岩彦)에게 양 팔을 잘리고, 결국 허리까지 베이며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이후 명성황후는 일본 흉도들에게 최후를 맞이한다. 황후는 이경직이 시간을 끄는 사이 뜰 아래로 피신하였으나 결국 흉도들에게 붙잡혔다. 흉도들은 수차례 황후의 가슴을 짓밟으며 칼로 거듭 황후를 찔렀다. 흉도들은 실수없이 황후를 살해하기 위해 황후와 용모가 비슷한 여러 궁녀들도 참살하였다. 이 과정에서 황후에 대한 시간 혹은 강간이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나, 일본측의 조사기록에는 '죽은 명성황후의 얼굴이 너무 젊어(20대 중반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젖가슴을 살펴보고 확인했다.'고 되어 있다고 한다.<ref>[https://empressmyeongseong.kr/ms/historicalBackdrop/sub03.do 을미사변], 명성황후생가</ref> 향년 44세. 흉도들은 명성황후의 시신을 녹원(鹿園) 숲속으로 운반한 뒤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고 불을 질렀다. 그들은 시신에 계속 석유를 부어가며 뼈만 남을 때까지 이를 반복했다. 한편, 명성황후의 직접적인 시해범이 누구인지도 문제되는데, 종전에는 한 일본 낭인인 것으로만 알려졌으나, 일부 학계에서는 '우치다 사신'을 근거로 일본군 경성수비대 장교였던 '''미야모토 다케타로 소위'''가 범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ref>[http://m.yna.co.kr/kr/contents/?cid=AKR20150623120300005&mobile "명성황후 시해범은 일본군 미야모토 소위"], 연합뉴스, 2015.6.23.</ref> 요약: 리브레 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로 배포됩니다(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리브레 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글이 직접 작성되었거나 호환되는 라이선스인지 확인해주세요. 리그베다 위키, 나무위키, 오리위키, 구스위키, 디시위키 및 CCL 미적용 사이트 등에서 글을 가져오실 때는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여야 하고, 만약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라는 증거가 없다면 그 문서는 불시에 삭제될 수 있습니다.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 | () [] [[]] {{}} {{{}}} · <!-- --> · [[분류:]] · [[파일:]] · [[미디어:]] · #넘겨주기 [[]] · {{ㅊ|}} · <onlyinclude></onlyinclude> · <includeonly></includeonly> · <noinclude></noinclude> · <br /> · <ref></ref> · {{각주}} · {|class="wikitable" · |- · rowspan=""| · colspan=""| · |} {{lang|}} · {{llang||}} · {{인용문|}} · {{인용문2|}} · {{유튜브|}} · {{다음팟|}} · {{니코|}} · {{토막글}} {{삭제|}} · {{특정판삭제|}}(이유를 적지 않을 경우 기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드시 이유를 적어주세요.) {{#expr:}} · {{#if:}} · {{#ifeq:}} · {{#iferror:}} · {{#ifexist:}} · {{#switch:}} · {{#time:}} · {{#timel:}} · {{#titleparts:}} __NOTOC__ · __FORCETOC__ · __TOC__ · {{PAGENAME}} · {{SITENAME}} · {{localurl:}} · {{fullurl:}} · {{ns:}} –(대시) ‘’(작은따옴표) “”(큰따옴표) ·(가운뎃점) …(말줄임표) ‽(물음느낌표) 〈〉(홑화살괄호) 《》(겹화살괄호) ± − × ÷ ≈ ≠ ∓ ≤ ≥ ∞ ¬ ¹ ² ³ ⁿ ¼ ½ ¾ § € £ ₩ ¥ ¢ † ‡ • ← → ↔ ‰ °C µ(마이크로) Å °(도) ′(분) ″(초) Α α Β β Γ γ Δ δ Ε ε Ζ ζ Η η Θ θ Ι ι Κ κ Λ λ Μ μ(뮤) Ν ν Ξ ξ Ο ο Π π Ρ ρ Σ σ ς Τ τ Υ υ Φ φ Χ χ Ψ ψ Ω ω · Ά ά Έ έ Ή ή Ί ί Ό ό Ύ ύ Ώ ώ · Ϊ ϊ Ϋ ϋ · ΐ ΰ Æ æ Đ(D with stroke) đ Ð(eth) ð ı Ł ł Ø ø Œ œ ß Þ þ · Á á Ć ć É é Í í Ĺ ĺ Ḿ ḿ Ń ń Ó ó Ŕ ŕ Ś ś Ú ú Ý ý Ź ź · À à È è Ì ì Ǹ ǹ Ò ò Ù ù · İ Ż ż ·  â Ĉ ĉ Ê ê Ĝ ĝ Ĥ ĥ Î î Ĵ ĵ Ô ô Ŝ ŝ Û û · Ä ä Ë ë Ï ï Ö ö Ü ü Ÿ ÿ · ǘ ǜ ǚ ǖ · caron/háček: Ǎ ǎ Č č Ď ď Ě ě Ǐ ǐ Ľ ľ Ň ň Ǒ ǒ Ř ř Š š Ť ť Ǔ ǔ Ž ž · breve: Ă ă Ğ ğ Ŏ ŏ Ŭ ŭ · Ā ā Ē ē Ī ī Ō ō Ū ū · à ã Ñ ñ Õ õ · Å å Ů ů · Ą ą Ę ę · Ç ç Ş ş Ţ ţ · Ő ő Ű ű · Ș ș Ț 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