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다 유키코

Unter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2월 28일 (수) 12:57 판 (의미 없는 일본어 병기 삭제)

틀:음악가 정보

소개

1980년대 중반에 포스트 마츠다 세이코[1]라는 별명을 지닐 정도로 인기를 끌어모았던 아이돌 가수이자 배우. 맑고 청순한 이미지로 당시 10대 청소년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었다.[2] 하지만 인기절정이던 1986년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만 안타까운 인물. 활동 기간이 매우 짧았기에 음악 스타일을 논하기엔 부족한 점이 있겠지만, 조숙하고 감수성이 짙은 발라드를 잘 불렀다.

대표곡은 뭐니뭐니해도 《입술 Network》(くちびるNetwork)이다.

생애

본명은 사토 카요(佐藤(さとう) 佳代(かよ)). 태어난 곳은 아이치 현 이치노미야 시지만 어릴 적부터 나고야 시 아츠타 구에서 자랐다. 줄곧 평범하게 살던 사토는 가수가 되려는 꿈을 갖고 "중2에 대회에 출전해서 중3에 데뷔한다"는 계획을 짰다. 하지만 오디션 방송 《스타 탄생!》의 나고야 지역 예선 통지를 들은 건 중3 때였다.

사토는 이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지역 예선을 보려고 했지만, 담임 선생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단결석하여 지역 예선에 참가한다. 예선에 합격하자 부모님은 결사반대한 끝에 거의 불가능할 것 같던 세 가지 조건을 건다.[3] 그런데 사토는 저 조건을 모두 클리어하고 방송에 출연한다.[4] 그리고 제 46회 결전대회에서 나카모리 아키나의 〈슬로우 모션〉을 불러 우승을 차지하여 연예계에 입문했다.

예명인 오카다 유키코는 데뷔 전에 인명판단사 및 영능사인 오키 히로코(沖紘子)에게 찾아가서 받아온 이름이다. 후보가 세 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오카다 하루코(岡田睛子)로 한자가 선배 가수 쿠와타 야스코(桑田靖子)와 비슷해서 탈락했다. 또 하나는 본명에서 따온 오카다 카요코(岡田佳代子)였는데, 너무 가녀린 느낌이라 거친 예능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결국 희망을 갖다(望をする)는 뜻의 오카다 유키코(岡田有希子)로 정한 것이다.

1984년 4월 21일에 《FIRST DATE》라는 싱글로 데뷔하여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했다. 그러면서 대중들의 열광과 함께 전국적인 인기를 끌었고, 특히 여덟 번째 싱글인 《입술 Network》(くちびるNetwork)[5]로 성공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사망

あなたに抱かれ / 遠い星へと / 旅してみたい
(그대에게 안겨서 / 머나먼 별을 향해 / 여행을 떠나고파)
— 《입술 Network》 中

1986년 4월 8일 오후 12시 경, 투신자살이라는 충격적인 결말로 생을 마감한다. 당일 오전 9시에도 자신이 살던 맨션에서 도시가스와 커터칼로 자살기도를 했었는데, 가스 냄새를 맡은 입주자에 의해 발견되어 구급차로 후송된다. 이후 침착한 모습을 보인 유키코는 곧장 퇴원되어 소속사 사옥으로 데려가서 철통감시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관계자들이 잠깐 방심한 사이 유키코는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투신하고 만다.

기자들은 오카다 유키코가 자살기도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소속사 사옥까지 찾아와 투신 직후에 바로 기사와 뉴스를 내보낸다. 보도 자료에는 "죽음의 다이브(死のダイブ)"라는 자극적인 문구를 사용한 것도 모자라, 잡지에선 자살 직후의 유키코의 시신을 모자이크 처리도 안하고 바로 내보내는 일말의 양심도 없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리포터인 나시모토 마사루(梨元 勝)는 무리한 취재로 많은 시간이 지난 현재까지도 비판을 받고 있다.

이후

오카다 유키코의 사망은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불러 일으켰는데, 1986년 한 해에만 자살률이 전년도 대비 무려 50% 가량 증가하여 당시 윳코 신드롬(ユッコ・シンドローム)이란 말이 돌았다.

그리고 선뮤직은 그녀가 떠난 지 27년이 지난 2013년에 산뮤(さんみゅ〜)라는 걸그룹을 데뷔시켰는데, 선뮤직에서 따온 성의없는 이름인 건 둘째치고 데뷔곡이 《입술 Network》의 리메이크라는 점이 일본인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었다. 솔직히 좋은 곡이다는 평도 있지만, 좋든 안좋든 화제성을 위해 오카다 유키코의 곡을 쓴 건 비판 받아야 한다는 평도 있다. 그 외에 들으면서 기분이 나빠졌다, 싸보인다, 악취미다는 안 좋은 평가도 이어졌다. 결국 그룹 자체도 메이저 데뷔를 했으나 이렇다할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음반

싱글

No. 음반 제목 발매일 비고
1 퍼스트 데이트 (ファースト・デイト) 1984년 4월 21일
2 리틀 프린세스 (リトル プリンセス) 1984년 7월 18일
3 -Dreaming Girl- 사랑, 처음 뵙겠습니다 (恋、はじめまして) 1984년 9월 21일
4 둘만의 세레모니 (二人だけのセレモニー ) 1985년 1월 16일
5 Summer Beach 1985년 4월 17일
6 슬픈 예감 (哀しい予感) 1985년 7월 17일
7 Love Fair 1985년 10월 5일
8 입술 Network (くちびるNetwork) 1986년 1월 29일

트리비아

  • 《1리터의 눈물》로 유명세를 탔던 사와지리 에리카의 생일이 오카다 유키코의 기일이라서 "오카다 유키코의 환생"이라 불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후의 언행으로 인해 국내 한정으로 배춘희 여사로 전락했지만...

각주

  1. 마츠다 세이코 역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던 아이돌이었고, 이 분 역시 선뮤직에 소속되어 있었다.
  2. 마츠다 세이코나 이전에 선뮤직에서 데뷔했던 아이돌들처럼 본래부터 끼와 실력이 넘친다는 평을 받는 완성형 타입이 아닌, 착하고 수줍음 많은 모범생 스타일로 대중들에게 귀여움을 많이 샀다.
  3. 교내 시험에서 학년 1등을 따는 것, 중부지역 통일모의고사에서 5위 안에 드는 것, 제1지망인 코요고등학교에 합격하는 것이었다. 평소 성적표를 올5, 한국으로 치면 올로 받아오는 실력이 있었지만 저건 무리일 거라고 생각했는 듯.
  4. 거기다 나고야 지역 예선 당시 그 자리에 있던 선뮤직의 전무이자 예능 프로듀서 카나야 이사오란 사람이 가능성을 알아보고 가족한테 찾아가서 설득을 했었다고 한다.
  5. 작사가가 바로 선배 여가수로 오카다 유키코가 롤 모델로 삼고 있던 마츠다 세이코. 여기선 Seiko라는 명의로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