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공화국
Republik Österreich
Flag of Austria.svg
국기
Austria Bundesadler.svg
국장
Austria (orthographic projection).svg
국가
Land der Berge, Land am Strome
(신의 나라, 강의 나라)
나라 정보
수도
공용어 독일어
정부유형 의원 내각제 연방제
인구 8,223,062 명
인구밀도 100.3 명/km2
면적 83,872 km2
기타 정보
GDP PPP:
전체: 4,024억 달러
1인당: 46,420 달러
명목:
전체: 3,806억 달러
1인당: 44,476 달러
시간대 UTC +1
ISO 040, AT, AUT
도메인 .at
국제전화 +43

유럽 중부에 위치한, 총 8개의 연방주로 구성되어 있는 연방제 민주주의 공화국이다. 독일어명인 '외스터라이히(Österreich)'는 '동쪽나라(Öster(東)+Reich(國))'라는 뜻이고, 영어명 오스트리아(Austria)는 '남쪽 동네(Austro + -ia)[1]'이라는 뜻이다. 각각 언어의 본고장에서 바라본 시각(독일에서 동쪽, 영국에서 남동쪽)이 반영된 부분. 그러면 결국 스스로 정한 이름이 없다는 거 아닌가?

수도는 (Wien, 영어식 명칭은 소시지 비엔나). 빈은 르네상스기 전후경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서양음악가들이 활동한 예술의 도시이기도 하여, 음악 교과서에서 단골로 나오는 서양음악가 대부분이 오스트리아 출신이거나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활동한 경우가 많다. 또한 어마금으로 유명한 물리학에르빈 슈뢰딩거[2]의 모국이기도 한 국가이다.

지리[편집 | 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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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역[편집 | 원본 편집]

오스트리아는 다음의 아홉 주로 구성되어 있다 (ISO 3166 코드 순).[3]

역사[편집 | 원본 편집]

고대와 중세 초기[편집 | 원본 편집]

오스트리아는 고대때부터 많은 민족들이 탐을 냈던 땅이였다. BC 400년경에 켈트족이 오스트리아 땅의 철광석 광산에 이끌려 노리쿰 이라는 왕국을 세웠고, 그것에 또 이끌린 로마인들이 BC 200년경에 켈트족들을 몰아내고 제국의 속주로 만들었다. 로마 말기때 몇차례의 게르만 침공을 받은후 바이에른족과 슬라브족 중간에 속하는 아바르족이 6세기에 오스트리아에 정착을 하였다. 그후에 샤를마뉴 대제에게 정복 받은 이후로 오스트리아는 게르만화 되었다.

오스트리아 변경백[편집 | 원본 편집]

오스트리아는 976년까지 신성로마제국의 바이에른 공작령에 속해있었다(14,15세기 이후에 바이에른 공령 보다 커져서 대공,황제가 된건 아이러니). 오토1세가 헝가리의 마자르족과의 전쟁을 치른 이후 신성로마제국의 동쪽 경계선을 재정비함으로서 오스트리아 백작을 변경백으로 승격시켰다. 976년에 바벤베르크 가문의 레오폴트1세가 변경백에 오른 후 1246년까지는 바벤베르크 가문이 오스트리아를 통치한다.

오스트리아 공국과 대공위시대[편집 | 원본 편집]

1156년에 오스트리아 변경백이 공국으로 승격된후 서서히 신성로마제국에서 입지를 다져간다. 1192년에는 슈아티어마르크 공국(스티리아 Styria 라고 불리기도 한다)까지 합병 했으나 1246년에 바벤베르크가문의 마지막 오스트리아 공작인 프리드리히 2세가 헝가리와의 전투에서 전사하게 된다. 이렇게 오스트리아는 대공위시대를 맞이하여 바덴공국과 보헤미아왕국의 통치를 받게된다.

합스부르크의 오스트리아와 대공국[편집 | 원본 편집]

신성로마제국의 대공위 시대가 끝난후 합스부르크의 루돌프1세가 독일왕으로 선출되었고 황제가 되었다.

오스트리아 제국과 공화국[편집 | 원본 편집]

신성로마제국이 프랑스 영향권에 넘어가자 오스트리아는 오스트리아 대공이 신성 로마 황제를 겸하던 신성로마제국을 없애버렸고 대신에 오스트리아 대공국을 스스로 제국으로 격상했다. 이후 프랑스가 몰락하자 오스트리아는 빈 체제를 통해 민족주의를 억압하려했으나 실패했고, 결국 이탈리아, 독일의 통일 전쟁에서 연달아 패배하면서 헝가리인과 대타협을 맺어야했다. 이후 오스만 제국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해 발칸 반도에서의 영향력을 잃자 오스트리아는 발칸 반도로 진출했고 러시아와 갈등을 겪었다. 이 때문에 오스트리아는 독일, 이탈리아와 동맹을 맺었고 러시아도 이에 맞서서 프랑스, 영국과 동맹을 맺었다. 1914년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세르비아인에 살해당한 사라예보 사건이 발생하자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했고 러시아가 세르비아 편을 들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오스트리아는 동맹국 이탈리아의 지원을 믿었으나 이탈리아는 몰래 오스트리아 영토를 노리고 있었고 결국 이탈리아가 배신해 러시아 측에 참전하고 말았다. 오스트리아는 4년간의 총력전을 견딜 수 없었고 결국 협상국에 항복했다. 이후 오스트리아는 헝가리를 완전히 잃어버리면서 영토가 크게 줄어들었고 약소국으로 전락했다. 얼마 안 가 오스트리아는 나치 독일에 합병당했고 이듬해 나치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이르켰다. 나치 독일이 전쟁에서 패배하자 오스트리아는 독일과 똑같이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에 의해 분할점령당했다. 이후 오스트리아는 중립을 지향하는 연방제 국가로 재탄생했고 UN에 가입하면서 현재에 이른다.

경제[편집 | 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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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편집 | 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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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편집 | 원본 편집]

음악의 본고장 중 하나. 우리가 많이 들어본 모차르트, 슈베르트, 하이든 등의 뛰어난 작곡가들이 오스트리아 출신이며 심지어 독일 출신인 베토벤까지 빈에서 와서 활동할 만큼 음악으로 명성이 자자한 국가이다.

우리가 아는 빈소년 합창단도 당연히 오스트리아의 합창단이다.

종교[편집 | 원본 편집]

전체 인구의 60% 정도가 가톨릭 신자인 친 가톨릭 성향의 국가이다.

음식[편집 | 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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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편집 | 원본 편집]

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FIFA 월드컵 최고 성적이 1954년의 3위이다.

올림픽에서는 하계 올림픽에서 획득한 메달 수의 2배보다 동계 올림픽에서 획득한 메달 수가 많다. 특히 알파인 스키에 강한데, 금메달 수로도 전체 메달 수로도 1위이다.

사회[편집 | 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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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편집 | 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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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력[편집 | 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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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오스트레일리아는 라틴어 Terra Australis (남방대륙)에서 유래하는데, 같은 어근인 Austro을 사용한다. 그래서 두 나라이름을 혼동하게 된 것이다.
  2. Erwin Schrödinger. 현지 독일어 발음으로는 '에어빈 슈외딩나/슈뢰딩나'에 가깝다.
  3. https://www.iso.org/obp/ui/#iso:code:3166: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