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틀:종교

Et in unum Dóminum Iesum Christum, Fílium Dei Unigénitum, et ex Patre natum ante ómnia sæcula. Deum de Deo, lumen de lúmine, Deum verum de Deo vero, génitum, non factum, consubstantiálem Patri: per quem ómnia facta sunt. Qui propter nos hómines et propter nostram salútem descéndit de cælis.

또한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외아들, 영원으로부터 성부에게서 나신 분을 믿나이다.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 빛에서 나신 빛, 참 하느님에게서 나신 참 하느님으로서,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한 본체로서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믿나이다. 성자께서는 저희 인간을 위하여, 저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셨음을 믿나이다.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中

한평생 죽음의 공포에 싸여 살던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천사들을 보살펴 주신 것이 아니라 분명히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보살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모든 점에서 당신의 형제들과 같아지셔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자비롭고 진실한 대사제로서 하느님을 섬길 수가 있었고 따라서 백성들의 죄를 없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친히 유혹을 받으시고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모든 사람을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다.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 2장 15-18절


BC 4?-AD 30?

기독교의 창시자이며 비기독교인들에게도 세계 4대 성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기독교에서는 피조물이 아니라 신 그 자체인 동시에 완전한 인간으로 간주하며, 이슬람교에서는 신이 보낸 예언자로 간주한다. 유대교에서는 전통적으로 거짓 예언자이자 사기꾼으로 간주하였으나, 일부 교파에서는 예언자로 간주하기도 한다. 창조주가 피조물을 위해 죽었다는 점, 창조주를 죽인 게 피조물이라는 점,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창조주 스스로의 계획대로였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특징을 가지는 신이다.

또한 많은 이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는데 성탄절12월 25일이라고 예수의 생일은 아니다. 성탄절은 단지 예수의 탄생을 기념한 날일 뿐이다. 그리고 화가의 작품이나 수예등에서 볼수 있는 서유럽식 백인 미남형이지는 않다. 성경이나 전승 어느쪽에도 예수의 외모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는 없으며, 잘생겼는지 못생겼는지 키는 작았는지 컸는지 등등을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다만 외모에 대한 특별한 기록이나 언급이 없으므로 '당시의 흔한 히브리인 A' 정도의 외모가 아니었을까 추정될 뿐.

이름과 뜻

이름은 원래 히브리어로 ‘예호슈아’라고 하며 ‘여호와는 구원해 주신다’라는 뜻이다. 하지만 예수 당시에 이스라엘에서 구어로 사용하던 아람어로는 ‘예슈아’라고 하였다. 아람어 이름을 헬라어로 음역하여 ‘예수스’(Ἰησοῦς)라 전해졌고 라틴어 사용자들은 헬라어 음역을 받아들여 ‘예수스’(Iesus)라고 하였다. 구한말에 그리스도교가 전파되던 당시에 이를 우리말로 옮겨 ‘예수’라고 하였다.[1] 그래도 영어로 지저스라고 하는 것 보다는 원어에 훨씬 가깝다당시 법적으로는 ‘나사렛(나자렛) 예수’라고도 불렸다.[2]

탄생[3]과 성장

로마 제국의 압제 하에서 사회 구조악(로마 제국의 식민지배와 지배계층의 무자비한 억압과 착취)과 종교악(종교의 이름을 내세워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들을 핍박하면서 그러한 사회 구조악과 결탁하여 기득권을 도모하는 예루살렘 성전 세력)이 난무하던 베들레헴의 한 마굿간에서 태어났다. 성경에 따르면 그의 어머니인 마리아요셉약혼한 상태에서 아직 한 번도 동침을 한 적이 없는 처녀의 몸으로 그를 잉태하였다. 이는 당연히 다른 남성과의 간통으로 의심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고, 들킨다면 유대교 계명에 의하면 당장 투석형에 처해야 할 중형이었기에 약혼남인 요셉은 조용히 파혼하려고 했였다. 그러나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지금 잉태한 아기는 신이 보낸 메시아이자 신의 아들임을 고지하고, 요셉은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인다.[4] 그런 도중에 로마 제국의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인구조사 명령을 내리고, 요셉과 마리아는 거주지인 나자렛을 떠나 원적지인 베들레헴으로 향하게 된다. 예수는 이곳 베들레헴의 한 마구간에서 태어났다. 예수가 태어난 직후 당시 분봉왕으로 일대를 통치하던 헤롯 대왕은 메시아가 태어났다는 소문을 듣고 베들레헴의 2세 미만 남아들을 대량학살할 것을 지시한다. 그러나 예수의 가족들은 조용히 이집트로 피신하여 예수는 목숨을 건진다. 이후 예수는 나자렛에서 부모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12세 때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의 랍비들과 토론을 벌인 것 외에는 유년 시절에 대한 기록은 전무하다.

예수 운동

예수가 본격적으로 공생애를 시작한 것은 30세 무렵부터이다. 나자렛에서 목수 또는 석공 일을 하던 노동자였던 그는 당시 요단강에서 회개를 촉구하며 세례를 베풀던 세례자 요한을 찾아가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명상한 후, 예루살렘의 회당에서 이사야서 61장 1-2절을 읽으며 자신이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임을 스스로 입증한다. 이후 예수는 베드로, 안드레, 대 야고보, 요한, 마테오(마태), 시몬, 필립보(빌립), 바르톨로메오(바돌로매),[5]야고보, 유다 타대오, 토마스(도마), 이스카리옷 유다(가롯 유다) 이렇게 12명의 제자를 선발하여 갈릴리 일대를 중심으로 예수 운동을 벌인다. 당시 갈릴레아(갈릴리)에서는 로마 제국의 압제 하에서 온갖 정치, 경제, 사회적 폭압이 난무하였고 종교 권력은 그러한 사회악과 결탁해 종교의 이름으로 그런 사회악을 정당화하며 민중을 억압하던 막장 오브 막장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로마 제국은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들을 상대로 무자비한 수탈을 자행하고, 이런 상황 속에서 장애인과 빈민들은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한 채 비참한 생활을 하였으며, 대다수 민중들은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간단히 말해 갈릴레아 지방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아오지 탄광이었다고 생각하면 된다.[6] 당연히 억압받는 민중들은 열심당 같은 테러 조직을 통해 그런 체제에 대한 저항을 시도하고, 그 때마다 로마 제국은 십자가[7]으로 그런 반체제 인사들을 처단하는 헬게이트가 열린 곳이 바로 갈릴레아였다. 그런 속에서 예루살렘 성전 세력은 종교의 이름을 내세워 온갖 율법주의적인 규례를 만들어 가지고 민중들을 억압하였으나, 정작 유대교 율법의 핵심인 신과 타자에 대한 사랑은 안드로메다로 날려먹은 지 오래였다.

예수의 가르침을 통해 진행된 예수 운동은 인격적인 거듭남, 즉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따라서 타자를 지배하고 정복하여 자신을 완성하기 위해 살아가려는 태도[8]를 버리고 철저하게 타자를 서로서로 섬기고 사랑함으로써 모두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살아가려는 자세를 갖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것을 신약성경에서는 ‘메타노이아’라 하는데, 직역하면 ‘생각을 바꾸다’는 뜻이고 우리말 번역은 보통 ‘회개하다’라고 한다. 이러한 예수운동은 동시에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정치, 사회적 구조악과 종교악에 짓눌려 인간답게 살지 못하고 있던 빈민, 장애인, 여성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베풀고, 그러한 정치, 사회적 구조악과 종교악에 맞서서 구약성경에서 제시한 정의와 평화의 대안적 세계질서를 선포하는 운동이었다. 복음서에 나온 예수의 초자연적인 기적들은 그 본질에서 이런 빈민과 장애인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되찾아 주는 것이었다는 것이 신학자들의 해석. 예수는 자신이 구약성경에서 제시한 정의와 평화의 나라, 모두가 서로 사랑하고 섬기면서 더불어 살아가며 모든 사람이 행복을 누리는 대안적 사회와 세계를 이끌 메시아임을 가르쳤다. 이에 따라 예수는 필연적으로 당대 이스라엘 사회를 장악하고 있던 정치, 사회적 구조악과 종교악에 대해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예수는 그러한 사회 구조악의 정점에 있는 헤롯 안티파스를 ‘저 여우’라 하고, 종교악의 정점에 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는 ‘독사의 새끼들’[9]을 비롯하여 온갖 쌍욕을 퍼부으면서 쿼크가 되도록 깠다. 예수의 주적은 바로 이런 종교악의 정점에 있는 서기관과 바리사이파(바리새인)[10]들이었고, 이들은 예수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온갖 도발과 어그로를 끌어 대다가 그 때마다 역관광을 당하곤 했다.

죽음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서기관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를 위험 인물로 여길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그들은 예수를 스스로 메시아라 자처했다는 것을 근거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민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예수는 공생애의 마지막을 맞는 예루살렘으로 향하게 된다. 예수는 구약의 즈카르야서에서 예언한 대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였고, 군중들은 예수가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앞세워 로마 제국을 무찌르고 유대인들만의 나라를 재건해 줄 것이라 기대하면서 그를 향해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은 결코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로마를 박살내고 유대인들만의 나라를 재건할 그런 메시아가 아니라, 너무나도 무기력하고 약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그 죽음을 넘어 부활함으로써 자신을 살해한 죽음의 세력들을 무찌른 다음 천하 만민을 정의와 평화의 나라로 초대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구약성경에서 예언한 메시아의 모습과는 일치하지만, 당시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메시아상과는 거리가 안드로메다급이었다. 예수는 예루살렘에 입성한 직후, 성전에 들어가서 종교의 이름을 내세워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을 억압하고 삥뜯어 먹던 인간 쓰레기들을 향해 온갖 쌍욕을 퍼붓고,[11] 채찍을 휘둘러 쓰레기를 치운 다음 집기를 전부 뒤엎어 버렸다. 한 주간 동안 자신이 구약에서 예언한 바로 그 메시아라는 사실을 가르친 예수는 목요일에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고, 그들과 가진 마지막 만찬에서 빵을 자신의 몸으로, 포도주를 자신의 피라고 말한 후[12] 자신이 전 인류의 구원과 해방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것임을 예고하면서 성찬 예식을 제정한다. 그러면서 제자들 가운데 이스카리옷 유다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려는 세력에게 넘길 것을 예고한다. 그리고 그 다음날, 예수는 당시 유대 총독이었던 본티오 빌라도에게 끌려가 심문을 받고, 스스로 왕이라 자처한 죄, 즉 내란죄로 십자가형을 선고받는다. 군중들은 예수에게 채찍질을 가하면서[13] 서기관과 바리사이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 것을 요구하면서 저 새끼는 우리 왕 아님, 우리 왕은 오직 로마 황제뿐임, 이렇게 말하면서 스스로가 사회 구조악과 결탁하고 있음을 인증했다. 이렇게 로마 제국이라는 정치, 사회적 구조악과 예루살렘 성전의 서기관 및 바리새인들이라는 종교악에 의하여 예수는 다른 두 명의 반체제 인사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당했다.

죽음 이후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이틀 후인 일요일에 예수를 따르던 여자들이 그를 안장한 돌무덤을 찾아가 보니, 무덤은 텅 비어 있었고 예수의 시신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이런 일이 발생한 것으로도 모자라서 갈릴리 일대에서 이미 죽었던 예수가 500명이 넘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 그것도 동시가 아니라 수시로 출현했다는 목격담이 빗발친다. 그러자 사람들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던 예수가 죽음을 이기고 부활했다고 믿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죽은 예수를 마지막으로 목격했다는 제자들은 주장하기를 그가 죽음을 넘어 부활함으로써 자신을 살해한 사회 구조악과 종교악에 대해 승리를 거두었고 하늘로 올라가서 신의 오른편에 앉았으며, 언젠가 세상에 다시 와서 자신들을 살해한 불의한 세력과 그 동조자들[14]을 처단하고 구약에서 말하는 정의와 평화의 새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서로 섬기고 사랑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과 평화의 대안 세상을 완성할 것이라고 말하며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되자 위협을 느낀 당국은 사도들을 무더기로 잡아들이는 등 입막음을 시도하였으나[15], 사도들은 협박에 굴하지 않고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해 나간다. 이렇게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제자들을 통해 교회가 성립되어 오늘날의 기독교가 시작되었다.

예수에 대한 종교별 견해

기독교의 신은 유일신이긴 하지만 서로 다른 세 위격을 갖고 있으며 이 세 위격이 하나의 신적 속성을 공유한다.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완전한 사람인 동시에, 삼위일체론에 따라 신의 세 위격 가운데 하나라고 가르친다. 동시에 예수는 신으로부터 신의 말씀과 계시를 전달하며 개인과 사회의 타락과 부조리를 규탄하는 예언자, 신의 뜻을 무시하고 멋대로 살아가는 인간을 신에게로 인도하여 신과 인간을 화해시키는 제사장, 신의 뜻에 따라서 정의와 평화를 행하는 왕, 이렇게 세 직분을 감당하도록 기름 부음을 받은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기름 부음을 받은 이’라는 뜻의 메시아(히브리어 משיח, 메시아흐) 또는 그리스도(헬라어 Χριστός, 크리스토스)로 지칭한다.

이에 따르면 예수는 원래 서로 섬기고 사랑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며 더불어 살아가면서 신이 내려 준 생명과 행복을 마음껏 누리도록 창조되었으나, 자기 욕망과 이기심에 빠져서 신을 배반하고 스스로가 신이 되어 자신을 완성하기 위하여 타자를 억압하고 지배하려는 본성(이것을 죄라고 한다)에 사로잡혀 그 결과로 신의 저주를 받아 비참한 실존 가운데 있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를 죄와 저주(그리고 그 결과로 인한 죽음)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신이 약속했고 거기에 따라서 지상에 보낸 메시아로서 그 자신이 신이며, 동시에 로마 제국 치하의 갈릴레아라는 역사와 시대 속에서 살과 뼈를 가지고 구체적인 시대 현실 속에 현존했던 완전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를 <평화의 아침을 여는 이>(백창우 작사, 작곡/안치환 노래)라는 CCM에서는 “당신은 하늘의 아들, 당신은 땅의 사람”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리스도교에서 묘사하는 예수의 경우, 그리스 철학의 형이상학적 개념과 역사적 인간으로써의 개념, 그리고 유대교에서 비롯된 유일신 신앙적인 개념이 모두 나타나는 매우 독특한 특성을 지닌다. 이러한 면모는 심지어 그가 죽은지 100년도 더 안 된 시기에 집필된 복음서들에서도 나타나는데, 요한복음 1장에서 다음과 같은 본문을 보면 그 특성을 바로 알 수 있다.

한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말씀은 한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중략)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외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광이었다. 그분에게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였다.

요한의 복음서 中

즉 예수에 대해 설명하면서, ‘ⓐ 한처음부터 존재했던 신 ⓑ 또한 사람’이라고 설명한 것. 재미있는 점은 사람을 뜻하는 단어이다. 본래 헬라어에서 인간을 뜻할 때는 ἄνθρωπος라는 말을 많이 쓴다. 반면 이 본문에서는 특이하게도 σαρξ[16]라는 말이 쓰였는데, σὰρξ는 인간이라는 뜻이면서도 ‘고기’, ‘나약한 육신’, ‘나약한 인간’, ‘언젠가는 죽을 인간’ 등의 뉘앙스를 지니는 어휘이다. 즉 ἄνθρωπος가 아닌 σὰρξ라는 말을 써서까지, 창조주가 단지 인간의 형상을 취한 게 아닌, 보통 사람과 똑같이 음식 먹고 음료수를 마시며 잠 자고 똥오줌 누고 아파하는 인간이 되었다고 강조한 것. 디아블로 시리즈티리엘이 연상될 수 있는데, 사실 티리엘 자체가 어느 정도 예수를 모티브로 캐릭터성을 정립한 것이다.

또한 기독교에서 예수의 죽음은 마마마에서 카나메 마도카의 포지션과 상당히 일치한다. 괜히 마독교라는 말이 나온 게 아니다! 마녀가 될 수밖에 없는 저주 가운데 놓여 있는 모든 마법소녀들을 저주로부터 해방하기 위하여 마도카 한 사람이 그 저주를 뒤집어쓰고 마법소녀가 됨으로써 모든 마법소녀가 저주에서 해방되었듯이, 신을 배반하고 스스로가 신이 되어 타자를 억압하고 지배하려 함에 따라 신의 저주를 받아 비참한 실존 가운데 놓인 인류를 그 저주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예수 한 사람이 그 저주를 뒤집어쓰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인류가 그 저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이다.[17] 사도 바울갈라디아서 2:20, 고린토후서 5:14-16, 골로사이서 2:12-15 등등 자신의 서신서에서 예수가 전 인류를 대신하여 신의 저주를 받아서 죽음으로써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스스로 신이 되어 타자를 억압하고 지배함으로써 자신을 완성하려고 하는 타락한 자아가 같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예수가 그 죽음을 넘어 부활함으로써 자신을 살해한 사회 구조악과 정치악을 박살냈으며, 이에 따라 그를 믿는 사람들은 과거의 타락한 자아가 죽고, 서로 섬기고 더불어 살아가며 모두를 행복하게 해 주려고 하면서 생명과 평화의 대안적 삶을 살아 나가는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다고 가르쳤다.

유대교에서는 예수를 거짓 예언자이며 자칭 메시아, 심지어는 거짓 선동을 일삼다가 딱 걸려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찌질한 선동꾼으로 간주한다. 거의 천하의 개쌍놈 취급이다. 대충 야인시대에서 김두한심영을 바라보는 태도라 생각하면 된다. 심지어 아예 매일 하는 18조 기도문에 ‘나자렛 사람의 도당들이 멸망하기를’ 하는 구절을 넣기도 했을 정도다. 현대 유대교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재평가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소수파이긴 하지만, 메시아닉 주(Messianic Jew)라고 해서 유대교 안에서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서를 주었고 그를 이어 예언자들을 오게 하였으며 마리아의 아들 예수에게 권능을 주어 성령으로 그를 보호케 하였노라

꾸란 2:87

하나님은 마리아의 아들 예수로 하여금 그 이전에 계시된 구약을 확중하면서 그들의 발자취를 따르도록 했노라 또한 하나님은 신약을 계시하여 그 이전에 계시된 구약을 확증하면서 그 안에 복음과 광명올 주었으니 이는 복음이요 정의에 사는 자들의 교훈이라

꾸란 5:46

이슬람교에서는 예수를 신이 보낸 위대한 예언자라 생각하여 의외로 존경한다. 이슬람에서 예수는 완벽한 인간이며 신의 피조물이지만, 신의 뜻을 가르치기 위하여 신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존재이다. 예수의 죽음에 대해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려고 할 때 신이 예수를 데려가서 하늘로 올라갔으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은 예수로 위장한 유다였다고 주장한다. 즉 이슬람에서 예수는 최후의 예언자인 무함마드 바로 이전의 예언자이다. 기독교와의 차이점은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완벽한 신이자 완벽한 인간의 자격으로 예언자, 제사장, 왕 역할을 모두 수행했다고 믿지만 이슬람에서는 신성은 일체 없이 예언자 역할을 수행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비종교인들 가운데도 예수를 위대한 성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여겨 존경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마르크스주의자들 가운데서도 예수를 존경하는 사람이 있고, 종교에 가장 호의적인 IS 계열에 특히 많다. 비종교인들도 현실에 존재하는 기독교의 부정적인 모습을 비판하면서도 예수와 그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존경하는 경우가 많다. 개독들은 예수를 배반한 나쁜 놈들일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놓고 기독교를 까면서 동시에 예수까지 같이 까는 하드코어 기독교 안티들도 존재한다.

기타

페루출신 일러스트레이터 Boris Vallejo가 그린 근육맨 예수(...)

예수를 표현한 미술 작품들을 보면 전형적인 장발에 수염 기른 백인 남성히피으로 묘사하고 있지만[18], 실제 예수는 유대인이었기에 유럽계 백인이 아닌, 아랍인들이나 세파라딤계 유대인 같은 모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이쪽도 엄연히 백인이긴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전형적인 유럽계 백인과는 용모가 차이가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의 시대상 키는 153cm 정도로 정말 작았을 것이라고 한다. 다만 성전정화의 일화에서 보듯, 호리호리한 선비형 인상보다는 근육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강인한 체격일 가능성이 크다.

예수의 직업은 흔히 목수였다고 하지만, 실제 예수가 탄생하고 활동했던 지역의 식생은 나무가 많지 않은 초원과 반사막 지역이다. 따라서 예수의 직업은 목수였다기보다는 석공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히브리어로 목수와 석공을 가리키는 단어는 같다. 아님 둘 다 겸업했거나... 전설에 따르면 멍에(소나 말의 목에 씌우는 것)를 잘 만들었다고 한다.

예수가 사용한 언어는 바빌론 포로기 이후 귀환한 유대인들이 사용했던 구어인 아람어였으며, 그 가운데서도 갈릴레아 사투리를 사용하였다.

사실 예수는 이스라엘의 마피아 대부였다고 카더라
기독교인이 봐도 웃기다는게 함정

실제로 예수는 당대의 로마 제국과 예루살렘 성전 세력에겐 마피아 대부 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더 악질적인 범죄 조직, 구체적으로는 현 체제를 위협하는 반체제 조직의 수괴로 비춰졌다. 그러니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이다. 애초에 십자가형이라는 형벌은 아무리 흉악범이라도 선고하지 않으며, 반드시 체제에 위협적인 정치범에게만 선고하는 형벌이었다. 물론 그 판결이 정당하냐에 대해서는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

각주

  1. 구한말 시절 음역은 현대와 기준이 많이 다르다. 한 가지 보이는 특징적인 요소는 당시 조선인들이 발음하기 힘들거나 잘 안 들리는 발음은 과감히 무시하기다. 그래서 s로 끝나는 고유명사의 마지막 s는 아예 음역하지 않고 넘어갔다. 이런 특징이 극명하게 나타난 음역이 개역성경에서 나타난 ‘아데미’란 음역이다. 아르테미스(Artemis)에서 조선인 귀에 잘 안 들리는 r과 s를 무시했다. ‘예수스’가 ‘예수’로 음역됨도 비슷한 사례이다. 한편 한역으로는 이를 음차하여 야소(耶蘇, 푸통화 발음으로는 yēsū, 예쑤)라고 하였다.
  2. 한국인에게는 생소한 개념이지만, 서양 문화권에서는 매우 자주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이다. 즉 출신지역이 성씨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일례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는 ‘빈치 마을의 레오나르도’라는 뜻이다.
  3. 엄밀한 의미에서,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예수는 절대로 AD 1세기경에 탄생한 게 아니다. 왜냐하면 한처음부터 존재한 ‘창조주’이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는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인간으로서의 탄생을 다룬다. 신학적으로 말하자면 ‘강생’
  4. 마리아가 예수를 출산한 이후 요셉과 동침을 하였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종파마다 의견이 갈린다. 가톨릭과 정교회에서는 부정론이고, 개신교에서는 긍정론이다.
  5. ‘나타나엘’이라고도 불린다.
  6. 사실 로마의 식민 정책은 시대를 감안하면 꽤 선진적인 편이었고, 헤로데 같은 현지 출신의 왕을 임명하는 등 현지인들의 권한이 생각보다 강한 편이었다. 빌라도가 현지인들 의견을 수용하여 본래 원하지도 않았던 그리스도의 처형을 허용한 것도 그 사례 중 하나이다. 따라서 로마의 식민 정책을 근대 제국주의 국가들, 특히 일제의 식민 정책과 일대일로 대응시키기는 어렵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히브리인들이 하하호호 훈훈하게 식민 정책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서기 1세기에 열혈당원(질럿)들이 독립 전쟁을 일으키는 등의 사례가 있다.
  7. 로마 제국의 십자가형은 아무리 흉악범이거나 천하의 개쌍놈이라도 해당사항이 없었고, 로마 제국의 체제에 도전하는 반체제 인사들에 대해서만 집행되었다. 이 십자가형은 정말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해서, 아예 십자가라는 말 자체가 욕일 정도였다. 해리 포터의 용서받을 수 없는 저주의 하나인 크루시아투스 저주의 발동 주문이 Crucio, 즉 “내가 십자가에 매달다” 라는 뜻의 라틴어 표현이다.
  8. 메다카 박스 6권에서 미야코노조 오도의 전자파 공격을 받아 세뇌되어 가지고, 자신의 존재 목적이 자신을 완성하는 데 있으므로 플라스크 계획에 가담하겠다고 말한 메다카 짱(개조)의 대사를 생각하면 된다.
  9. 우리말로 하면 ‘개새끼들’ 정도이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10. 기원전 2세기 중엽부터 율법에 대해 보다 엄격한 해석과 실천을 내세우던 학파에 속하던 유대교도들이다. 이들은 대다수인 유대인들과 소수인 자신들을 구별하여, 율법을 엄수하지 못하는 자들을 멸시하고 적대시하였다.
  11. 예수는 당시 부패한 종교적 기득권 세력을 독사에 비유하여 비판하였는데, 구약에서 뱀의 역할을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당시 이스라엘 문화권 최고의 쌍욕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이 정도 클래스의 욕이라면 세월호 선장 같은 놈 정도 말고는 없다!
  12. 이 말이 말 그대로의 의미인지, 단순한 비유인지에 대해서는 교파마다 의견이 갈린다. 가톨릭-정교회-오리엔트 정교회에서는 말 그대로 빵과 포도주가 ‘단지 빵과 포도주의 형상을 그대로 취하고 있을 뿐’ 예수의 몸과 피로 변했다고 해석하고, 개신교 종파들은 비유라고 해석한다.
  13. 말채찍 생각하면 안 된다. 끝에 날카로운 날이 달려 있고 끈도 다중으로 되어 있어서, 한 대만 맞아도 살이 마치 빵 뜯듯이 푹푹 뜯겨 나간다.
  14. 사도 바울은 ‘통치자와 권세’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고린토후서 15:24, 골로사이서 2:15, 에페소서 6:12에 나온다.
  15. 아무리 빌라도가 예수의 처형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엄연히 처형당한 중범죄자를 숭배하는 무리가 나타났으니 로마 제국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뒷골이 땡기는 일(...)이었다. 또한 초기 기독교에 대한 몇몇 오해들도 탄압에 이바지 하였는데, 이를테면 황제에 대한 충성거부로 오해된다거나 성체성사가 식인행위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성체성사는 가톨릭‐정교회 교리로 보자면 사람의 몸을 뜯어먹고 피를 마시는 식인행위가 맞기는 하지만(...)
  16. 문자적 의미는 그냥 ‘고기’라는 뜻이다.
  17. 어떤 인류인지는 신학적 노선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보수 개혁주의 장로교와 성공회에서는 선택을 받은 사람만 구원을 받는다고 믿지만, 나머지 종파(심지어 신정통주의 장로교까지도)에서는 모든 인류에게 구원을 받을 기회가 주어진다고 믿는다. 웨슬리안은 자유의지에 따라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기회가 열렸다고 믿으며, 신정통주의는 모든 사람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예수 안에서 신의 선택을 받았으나 그 선택이 유효하려면 예수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18.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아들인 체자레 보르자가 모델이라는 카더라가 있지만 근거는 없다. 사실 유럽계 백인에 수염이 있는 히피 스타일 예수(즉 오늘날 흔히 생각하는 예수의 외모)는 체자레가 태어나기 전의 성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